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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올림픽 손연재-박주영-황경선, 닮은 꼴 3인방의 감동

바람을가르다 2012. 8. 11. 13:58

 

 

 

런던올림픽 2012 대회 14일째, 예선성적 5위로 아시아선수로는 유일하게 결선에 진출한 리듬체조 손연재에서 시작해서, 숙적 일본을 2:0으로 완파하고 동메달을 딴 남자축구를, 16년 만에 복싱 결승에 진출한 한순철이 이어받았고, 태권도의 황경선이 금빛발차기로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지난 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만 하루동안 이어진 우리나라 선수들의 감동릴레이는, 비단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을 또 한번 놀라게 만들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기쁨과 환희, 감동의 눈물로 들썩이게 만든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선수들을 향한 뜨거운 관심이 커다란 힘이 되곤 하지만, 때로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부담으로 다가오고, 그것이 곧 경기력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부담감을 강한 정신력으로 이겨낸 선수들이 자랑스럽고, 그중에서도 손연재-박주영-황경선의 경우, 묘하게 닮은 점이 많아 이목을 사로잡는다.

 

 

 

그렇다면 종목이 다른 런던올림픽스타 ‘손연재-박주영-황경선’의 공통점이 뭘까?

 

도마의 양학선이 대한민국 기계체조 사상 ‘최초’의 금메달리스트라는 역사를 새로 쓴 것처럼, 이들 3인방의 이름앞에도 ‘대한민국 올림픽사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뜬다. 리듬체조 사상 최초의 결선진출 손연재, 대한민국 올림픽축구 사상 최초의 동메달, 대한민국 태권도 사상 최초의 2연패. ‘최초’라는 단어만으로도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된다. 재밌는 건, 그 역사적인 사건, 드라마틱한 순간이 그들의 발끝에서 좌우됐다는 점이다.

 

손연재의 경우, 곤봉에서 한쪽 신발이 벗겨져 최대 위기에 빠졌었다. 아무리 베테랑선수라도 당황하고 실수를 연발할 수 있는 상황. 그러나 손연재는 한쪽 신발은 원래 잃어버릴 것을 각오한 신데렐라처럼 곤봉연기를 계속했고, 큰 실수없이 연기를 마무리 해 결선진출로 가는 큰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18세의 어린 소녀가 처음 접한 올림픽에서 보여준 놀라울 정도의 침착함과 집중력은 침이 마르게 칭찬해도 부족하다.

 

 

 

일본을 격파하고 한국축구에 동메달을 선사한 중심에는 박주영이 있었다. 구자철의 추가골이 쐐기를 박았지만, 실질적으로 전반전 말미 박주영의 발끝을 떠난 선제 결승골이 이 날 경기의 승부를 결정지었다. 승부처였다. 전반 초반 쥐고 있던 주도권을 일본에게 내주던 한국으로선 흐름을 바꿔놓을 반전의 계기가 필요했다. 계속된 수세에서 일본에게 선취골을 내줬다면, 우리 선수들의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질 수 있었다.

 

위기라고 생각되던 순간, 박주영은 주어진 한번의 역습 찬스에서 일본 수비수 네명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골키퍼까지 손을 쓸 수 없는 모서리로 강슛을 날렸고 상대 골문을 흔들었다. 박주영의 클래스가 느껴지는 환상적인 골이었다. 이후 흐름을 뺏어 온 한국은 구자철의 추가골과 김보경의 골대 강타 등, 일본을 완벽하게 제압하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에 비해 태권도 67kg 금메달리스트 황경선은 딱히 고비라고 말할 상황이 사실상 없었다. 준결승전에서 난적을 만나긴 했으나 그녀의 기량은 압도적이었다. 특히 점수가 필요할 때마다 상대의 머리를 가격하는 황경선의 발차기는 아름다웠다. 황경선 본인은 부담스러웠겠지만, 시청자는 그녀의 능수능란한 발기술을 즐기면 될 정도로 완벽한 실력을 자랑했고 올림픽 2연패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이렇듯 손연재-박주영-황경선의 '발끝'에서 국민들은 다양한 감정이 오가는 즐거운 드라마를 보았다. 같은 발이지만, 위기를 부르기도 했고 극복하기도 했으며,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고 통쾌함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3인방이 보여준 드라마틱한 순간들 뒤에는 아픔도 컸다. 바로 경기 전 그들을 가혹하게 비난했던 목소리다.

 

 

 

경기력 향상을 위해 지원과 격려는 못해줄 망정 CF광고와 연관시켜 손연재를 비난했고, 병역의무를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박주영이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증명해 보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논리와 비아냥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당시, 현재 손연재와 같은 나이 18세에, 올림픽에 처녀 출전해 동메달을 땄음에도, 태권도에서 금메달이 아니란 이유로 태권소녀 황경선은 마녀취급을 당해야 했다. 그러한 3인방의 공통된 아픔들이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말끔히 씻겨 나가길 기대한다.

 

왜 우리는 우리선수들을 믿지 못하고, 기다려주지 못할까. 메달과 관계없이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금메달이 아니면 관심을 거두고 외면하기 바쁠까. 여기에 대한 반성과 해답은, 바로 손연재-박주영-황경선에게서 얻을 수 있다. 욕심과 비난이 아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우리 선수들을 기다려주고 믿어줘야 한다. 그럼 이번 올림픽은 아니더라도, 다음 올림픽에서 더 멋진 경기력으로 기쁨과 감동을 선사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운동선수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피땀의 대가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