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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탈 17회, 짜증 부른 제작진의 덜컥수

바람을가르다 2012. 7. 26. 11:06

 

 

 

 

 

 

 

 

오목단(진세연)이 과연 각시탈을 쓴 이강토(주원)의 정체를 알게 될까?

25일 방송된 수목드라마 각시탈 17회는 이 사건에 포인트를 두고 전반적인 스토리를 전개했다. 덕분에 짜증스런 장면이나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허술했던 장면이 간혹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는 궁금증을 부여잡고 마지막 순간까지 몰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제작진은 시청자의 기대에 부응하듯, 목단에게 각시탈을 벗기게끔 만들어 이강토임을 확인시켰다. 올레.

 

정말 다행이다. 만일 목단이 깊은 상처를 입고 의식을 잃은 채 말을 타고 온 각시탈과 만나지 않았더라면? 만났더라도 각시탈을 벗기지 않고 이강토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 17회가 끝이 났다면, 목단(진세연)이는 민폐의 탈을 쓴 멍청하고 둔한 여주인공의 아이콘이라며, 아마도 시청자에게 평생 잊지 못할 욕을 먹어야 했을 것이다. 때문에 부상을 입은 각시탈의 안위를 먼저 살피기보단, 시청자를 안심시키려 탈부터 벗겨 이강토임을 확인한 목단이의 대처는 차라리 현명했다. 여기에 멘붕이 제대로 된 목단이의 표정은 보너스.

 

 

 

각시탈 17회, 짜증 부른 제작진의 덜컥수

 

덕분에 각시탈 18회를 짜증이 아닌 궁금증을 품은 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아쉬운 건 런던올림픽 축구예선 ‘한국-멕시코’전 방송으로 오늘 각시탈은 결방한다. 한편으론 축구중계로 결방이 없었다면, 과연 제작진이 목단에게 강토가 쓴 각시탈을 급하게(?) 벗기는 신의 한수를 두었을까란 생각도 든다.

 

각시탈 17회의 임팩트가 목단이 각시탈 강토의 정체를 알았던 마지막 장면에 불과할 정도로 나머지 분량이 밋밋했던 것도 아쉬운 대목. 특히 충분히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장면조차, 짜증스럽거나 허술하게 표현한 제작진의 덜컥수가 아프다. 대표적으로 목단과 도련님 강토의 어릴 적 회상씬.

 

 

 

기무라슌지(박기웅)의 계략으로 아스카호텔에 목단이 감금됐다. 슌지는 강토가 담사리(전노민)를 사형시키려 서대문형무소로 데려가는 걸, 자신이 중간에 막았다면서 거짓말로 그녀를 회유하며 야비하게 사랑을 구걸했다. 그러나 제국경찰 슌지를 더 이상 믿지 못하는 목단은, “내가 네 노리개야?”라며 슌지에 얼굴에 침을 뱉었고 슌지는 목단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단호했던 목단의 태도가 좋았다. 그녀가 “내가 네 노리개야?”라고 소리친 순간엔 통쾌함까지 느껴졌다. 이 장면이 더욱 좋았던 건, 다음에 이어진 이강토와 목단의 감정을 양극단으로 내몰며 폭발시킨 밑거름이었기 때문이다.

 

 

 

목단은 아버지 담사리를 탈출시키겠다던 강토를 반은 믿었다. 아무리 독립군 잡아먹는 식인종 이강토지만, 나를 사랑한다고 고백까지 했던 남자다. 그런데 앞선 슌지의 거짓말은, 목단이 강토를 오해하고 더욱 증오하게 만든다. 악귀 이강토를 믿은 내가 미친년이라면서, 강토에게 모진 말들을 쏟아낸다. 이에 강토는 ‘내가 각시탈이야, 내가!’라고 당당하게 목단에게 말하지 못한다. 그래봤자, 목단에게 돌아올 대답은 미친놈이 될 테니까.

 

때문에 강토는 “분아~”라며 히든 카드를 꺼냈다. 분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버지와 도련님 뿐. 그런데 강토가 분이라는 이름을 알고, 단검에 얽힌 에피소드까지 줄줄이 꿰차고 있었다. 목단은 좌절했다. 도련님이 각시탈이라고 믿었는데, 독립군 잡아먹는 식인종 이강토라니, 목단은 충격속에 눈물을 흘리며 사실을 부정하려 들었다. 친일행각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다며 눈물로 호소하는 강토에게 목단은 꺼져 버리라고 독설을 뿜었다.

 

 

 

강토를 대하는 목단의 태도에 시청자로선 충분히 울화가 치밀 수 있고 짜증이 동반될 수 있다. 도련님을 입에 달고 살던 목단의 돌변에, 시청자의 입장에선 민폐도 모자라 둔하기까지 하다며 혀를 찰 노릇이다. 그러나 목단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태도였다. 강토가 말로는 일본앞잡이 생활을 반성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제복을 입고 있다. 게다가 앞서 왔다간 슌지통신에 의하면, 강토가 담사리를 탈출시키긴 커녕 사형시키려 앞장 선 개잡놈이 아니던가. 답답하긴 했어도, 정황상 목단의 태도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문제는 도련님이란 사실을 밝힌 과정이다. 두 사람의 어린 시절 회상을 또 다시 봐야 했다. 그것도 아주 길게. 그동안 각시탈에서 봤던 어린 시절 회상 장면을 몇 번째 봐야 하는 지, 시청자로선 짜증 플러스 고문에 가까웠다. 회상신이 필요했다면, 어린 강토가 목단이 칼에 베일 뻔한 순간만 짧게 보여줬어도 충분했다. 그런데 이건 애들 로맨스가 어른 로맨스를 잡아먹을 기세로 제작진은 회상신을 틀어댔다. 굳이 동굴에서 나란히 누워 잠자는 장면까지 보여줘야 했나.

 

 

 

목단이 도련님이라고 밝힌 강토에게 모진 말들을 퍼부은 건, 17회 마지막 순간에 각시탈을 벗긴 목단이 ‘각시탈=이강토-도련님’임을 알고 충격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훌륭한 사전 포석이었다. 18회에서 강토에 대한 목단의 태도가 어떤 식으로 변화할 지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키게 만든 것도, 강토를 향한 목단의 모진 말들과 사나운 태도가 선행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길었던 어린시절 회상신은 짜증과 지루함을 불렀고, 애절하지만 오해로 어긋나고 아파하는 강토와 목단에게 온전히 몰입하려는데 훼방꾼이 되고 만다. 그나마 주원과 진세연의 출중한 연기력이 동반되지 않았다면, 그 순간 채널을 돌린 시청자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시청자의 감정선을 잡아먹은 악귀같았던 회상은 17회에 등장한 제작진 최고의 덜컥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