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진 송승헌, 매맞아도 싼 이유?
23일 방송된 주말드라마 ‘닥터 진’ 9회에서, 혹으로 고생하던 조대비의 조카딸을 치료한 진혁(송승헌)덕분에 조대비(정혜선)와 연이 닿게 된 흥선대원군 이하응(이범수)이, 홍영휘(진이한), 무명계의 일원으로 밝혀진 춘홍(이소연)과 결탁해 안동김씨가 장악한 부패한 권력을 타파하고 새로운 조선을 세우기 위한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편 홍영래(박민영)는 김경탁(김재중)에게 마음이 가질 않는다면서, 행복할 자신이 없으니 혼례를 치룰 수 없다며 눈물로 호소하고 이해를 구했다. 영래의 마음을 쉽게 돌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경탁은, 아버지인 좌상 김병희(김응수)에게 영래와 혼례를 치룰 수 없다고 밝혔다. 몰락한 홍씨 가문과 연을 맺는 것이, 좌상에게 낭패가 될 수 있다는 거짓말을 해가면서 경탁은 영래를 보호하고자 했다.
영래는 그런 경탁의 마음은 안중에 없었다. 진혁이 먼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영래는 그를 도와 의술을 배우겠다며 활인서에 나타났다. 이러한 영래의 결정을 듣게 된 진혁은 그녀를 만류하며 돌아가 경탁과 예정대로 혼례를 치루라고 말했지만, 한 남자의 아내로 살기보단 의술을 배워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며 고집을 부리는 영래에게서, 진혁은 미래에 두고 온 연인 미나(박민영)를 떠올린다. 이것 또한 어쩌면 정해진 운명이 아닐까?
어찌됐든 진혁은 매번 정혼자를 운운하며 영래와 자신을 갈라놓으려던 경탁의 까칠한 시선을 적당선에서 무마시키고, 활인서에서 좌영래-우허광(정은표)체제를 본격적으로 가동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들은 위궤양 천공으로 생사를 오가던 광대패 작두꾼의 배를 갈라 수술에 성공한다. 조대비가 평소 즐겨찾는 광대패였고 조대비앞에서 수술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덕에, 진혁은 조대비의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됐고, 덩달아 진혁을 소개한 이하응의 궐내 입지도 넓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닥터진 송승헌, 매맞아도 싼 이유?
이렇듯 닥터진 9회에서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심경과 행동에 향후 많은 변화를 일으킬 에피소드가 이어졌다. 영래와 경탁의 파혼, 무명계를 돕는 춘홍의 실체와 이유, 이하응의 야망 등이 한꺼번에 쏟아졌고, 극적 반전을 도모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 중요한 회차였다. 그럼에도 발빠른 전개와 엇박자가 느껴질 정도로 몰입도는 떨어지고 긴장감과 재미는 충분히 느껴지지 않았다. 왜 일까?
바로 가장 중요한 닥터진의 주인공 진혁(송승헌)이란 캐릭터가 영래의 마음은 훔쳤는지 모르나 시청자의 마음까진 훔쳐내지 못했기에, 그만큼 현재까지 드러난 진혁이란 캐릭터는 충분한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엔 주인공으로서 캐릭터 자체가 보여주는 매력과 스토리의 전개과정과 맞물리는 매력에서, 역동성이 떨어지며 식상하다 혹은 무난하다, 평이하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진혁이란 인물은 우리가 사는 현재에서 천재의사로 활약했다. 고집도 세고 주관도 강하게 그려졌다. 그런데 그가 조선시대로 타임슬립(시간여행)을 하더니, 그러한 개성과 매력이 반토막 나버렸다. 진혁의 고집과 매력은 소통의 부재에서 빛나야 하는데, 조선시대에 나타난 진혁은 이하응은 물론이고 조선에서 만난 사람들과 소통에 무리가 없고 심지어 그들을 이해하는 천사표가 되어있다.
아무리 드라마의 남자주인공이지만, 소통과 이해에 있어 지나치게 젠틀하게 접근한다. 그것이 오히려 진혁의 캐릭터엔 독이 되고 있다. 상대방을 이해시키기 위해 압도하지 못하고, 환자에게 조차 자신을 믿어달라고 구걸하는 인상이다. 최소한 같은 의학을 다루는 밉상 어의 유홍필(김일우)의 오진에 대해선 비꼴 줄도 알아야 시청자입장에선 통쾌하기 마련인데, 그런 장면이 전혀 없다.
진혁은 환자가 발생할 때마다 병명을 진단하고 주변에게 설명해 수술을 허락받는데 그 과정이 밋밋하다. 그리고 의학드라마에서 가장 긴장감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수술은, 너무 쉽게 금방 끝나버린다. 시청자가 땀흘리는 진혁을 보며, 수술이 과연 성공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벌써 끝났어?’가 입에서 먼저 나온다. 어떻게 수술환경이 열악한 조선에서 현대보다 빠른 수술이 무탈하게 이뤄질까.
진혁이 천재의사이고, 수술과정을 핵심만 보여줘서 그렇다라고 제작진이 이해시키려해도, 병명을 진단하고 수술동의를 받는 과정에서만이라도 진혁을 좀 더 강하게 그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진혁이 조선시대에 왔으니 조선에 맞춰야 한다면, 미래에서 온 천재의사 진혁의 캐릭터는 옅어지기 마련이다. 적어도 진혁은 미래든 과거든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얘기다. 천재의사인데 이해심도 태평양이고 조선에서 소통의 부재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으니, 긴장감을 끌어낼 요소가 줄어들 수밖에.
때문에 닥터진 9회에서 진혁에게 가장 인상적이고 캐릭터로서 좀 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건, 매맞는 장면에서 나왔다. 진혁이 개발한 페니실린 때문에 무고한 사람이 죽었다는 모함에, 진혁은 포도청에 끌려가 곤장을 맞았다. 진혁은 모함이라고 항변하지만, 경탁은 매를 들었다. 진혁과 경탁이 상대적으로 잘 어울릴 수 있는 건, 이처럼 소통이 안 되기 때문이다.
진혁이 조선에서 소통이 안될수록, 자신이 왜 과거로 왔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해답을 구하기 위해 안정이 아닌 변화를 추구하며 역동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매앞에는 장사가 없다고, 곤장을 맞은 진혁이 이하응에게, 조선은 썩었다며 비분강개하지 않던가. 정치에는 관심없던 진혁이 조대비를 만나자는 하응의 권유안에 다른 뜻이 있음을 알고 응한 것도, 모함으로 매를 맞은 덕이다. 매를 맞아보니 부당함을 피부로 느낀 셈이다.
진혁이 매맞아도 싸다고 느낀 이유는, 그동안 너무 이해심이 넓고 친절한 모습만 비춰졌기 때문이다. 멋부리는 주인공으로 보일 뿐, 정체성의 고민도 개성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근데 매맞고 나니까 진혁도 짜증을 내고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에 이를 갈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이 더 진혁의 매력있게 만든다. 아쉬운 건 곤장맞고 온 진혁이 이하응을 만나, “당신은 왜 당신이 내가 필요할 때만 나타나고, 정작 내가 억울하게 매맞을 땐 도대체 당신은 어딨었냐?”고 따지고 역정내지 않은 정도랄까.
즉 진혁이 조선에 와서 생고생중인 걸, 좀 더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표현할 때, 춘홍-진혁-영래-경탁의 평면적인 로맨스에도 갈등이 크게 나타나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따로 놀 수 있는 진혁의 의학과 이하응의 정치도 잘 섞일 수 있지 않겠나. 누가 뭐래도 가장 캐릭터의 변화가 흥미롭게 일어나고 매력을 부여할 폭이 큰 캐릭터는 닥터진의 주인공 진혁(송승헌)이다. 각시탈은 이강토(주원)가 흥해야 하듯이, 닥터진은 진혁이 흥해야 성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