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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진, 매독녀 에피를 망친 건?

바람을가르다 2012. 6. 11. 10:41

 

 

 

 

 

10일 방송된 주말드라마 ‘닥터 진’ 6회에서는 매독에 걸린 기생 계향(윤주희)을 살리기 위해, 진혁(송승헌)이 귤에 핀 푸른곰팡이에 착안, 영래(박민영) 등의 도움을 받아 페니실린을 만들려는 과정이 그려졌다. 그러나 진혁은 자신이 페니실린을 만들어 조선에 널리 퍼지게 될 경우, 역사가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과연 7회에서 진혁은 이러한 내적 갈등을 딛고, 페니실린을 만들어 계향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흘러가는 역사, 죽어가는 계향을 그저 나약하게 지켜만 볼 것인가. 아무래도 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진혁이 과거로 거슬러 온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결국 닥터진은 진혁이 역사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사로서 소명의식을 깨닫는 계기를 만드는, 진혁의 성장드라마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VS역사의 구도속에서 진혁이 택해야 할 것은 사람이다. 이것은 현대 의학을 마스터한 진혁이 조선시대에 실상을 민초의 입장에서 피부로 느끼면서, 하나둘씩 깨우치는 과정과 궤를 같이 한다. 문제는 이러한 내용을 뒷받침하는 에피소드로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이다. 그것이 재미든, 감동이든 시청자의 공감을 사야 하는데, 이를 구현하는 제작진이 불친절하다.

 

 

 

닥터진, 매독녀 에피를 망친 건?

 

닥터진 6회에 매독 에피소드는, 드라마에서 다뤘다는 게 신선할 정도로 칭찬받을 만하다. 다만 그 신선함에 쓸데없는 첨가물이 잔뜩 들어가다 보니, 곰팡이가 생긴 꼴이다. 대표적인 게 이하응(이범수)과 기생 계향(윤주희)의 진부한 러브스토리다.

 

닥터진의 기생 킬러 좌상의 아들 대균(김명수)은, 춘홍(이소연)에 이어 계향에게도 손을 뻗친다. 이에 불쾌해 하는 계향을 위해 이하응이 도움을 준다. 때문에 계향은 이하응에 반해, 그의 첩실이라도 되겠다 말하지만, 하응은 마음은 계향에게 있으나 그럴 수 없다며 끝내 거절한다.

 

 

 

이후 양인과 불법적으로 밀거래를 하던 대균에게 속아, 양인과 잠자리를 하게 된 계향이 매독에 걸린 것이다. 때문에 하응은 진혁에게 어떻게든 계향을 살려달라고 부탁한다. 진혁이 역사의 뒤바뀜을 걱정할 때, 하응은 기방에서 만난 계향과의 과거 러브스토리에 목을 메고 있었던 셈이다.

 

여기서 이하응과 계향의 러브스토리가 과연 필요한가. 꼬집지 않을 수 없다. 계향은 술을 팔고 몸을 팔았던 기생이다. 직업이 그렇다보니, 매독에 걸릴 수도 있다. 굳이 하응과의 러브스토리가 없어도 계향은, 진혁에게 똑같은 환자일 뿐이고, 페니실린의 개발을 두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고민했을 것이다.

 

즉 이하응과 기생 계향의 러브스토리는, 닥터진 6회를 진부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늘어진 전개로 시청의 몰입도만 떨어뜨렸다. 만일 계향의 매독사건이 이하응으로 하여금 서양인에 대한 사적인 반감으로 작용해, 훗날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펴는 데 일조한다는 설정이라고 비친다면, 시청자에게 되레 거부감만 줄 뿐이다.

 

 

 

서로간에 열렬히 사랑했던 것도 아니고, 기방에서 잠시 눈이 맞아 애틋한 감정의 교류가 있었다 한들, 그것이 조선의 국운을 결정하는 주요정책에 반영된다는 게 넌센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닥터진이라는 드라마가 5,6회에 걸쳐 말하고픈 초점을 흐리고 있다.

 

5회 말미에 좌상(김응수)의 지시로 경탁(김재중)이 토막촌에 불을 지른다. 이 과정에서 토막촌 사람들과 식이엄마(방은희)가 식이를 구하려다 죽었다. 진혁이 링거를 개발해 괴질(콜레라)에 걸린 토막촌 사람들을 구해내지만, 결국 말짱 도루목이 된 셈이다. 말발굽에 치어 식이엄마는 이미 죽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를 자신이 살렸다. 진혁이 과거를 바꾼 것이다. 그런데 토막촌에 불이 났고, 식이엄마는 결국 죽었다. 진혁의 링거개발도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이에 진혁은 죽은 식이엄마를 보고 되뇌인다. 자신이 과거를 바꾸었지만, 결국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 식이엄마 한명의 케이스를 놓고, 진혁은 자신과 과거의 연관된 시스템을 알아차린 것이다. 자신이 누군가를 구해도, 그 사람은 죽을 운명인 것을 말이다. 진혁이 아무리 천재의사에 주인공이지만, 상황판단, 시스템 고찰, 각성까지 초스피드하게 이뤄진다.

 

 

 

덕분에 닥터진 6회에서 진혁이 페니실린을 개발 성공을 앞두고, 역사가 바뀔까를 의심하는 대목은, 5회와의 연관성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부정한다. 진혁이 페니실린을 만들고, 계향이의 목숨을 구한다해도, 계향이는 아마도 죽지 않겠는가. 식이엄마의 케이스처럼 다른 이유로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동시에 진혁이 조선에서 개발한 페니실린도 링거처럼 잊혀지는.

 

만일 그러한 코스를 밟는다면, 식이엄마의 죽음을 놓고 진혁이 과거를 바꿀 수 없음을 깨닫는 장면은, 너무 이르게 등장한 셈이다. 계향이도 식이엄마처럼 진혁이 살리지만, 다른 이유로 죽는다면 진혁이 시스템을 의심해 볼 대목이지만, 식이엄마 케이스만 놓고 ‘자신-과거-운명-역사’를 통찰해 버렸으니, 진혁이 페니실린을 놓고 한 고민은 설득력이 약화될 수 밖에.

 

물론 페니실린을 개발하면 역사가 바뀔까에 대해 진혁이 의문을 품고, 고민하는 대목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식이엄마의 죽음을 놓고 진혁이 했던 말을 떠올리면, 역사를 걱정하기 전에, 자신이 계향을 살린다 한들, 이미 죽을 운명이었던 계향이 무탈하게 살 수 있을까란 고민이 앞서 병행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역사의 뒤바뀜을 걱정하기 전에 말이다.

 

 

 

근데 진혁이 이러한 고민을 한 듯. 닥터진 7회 예고를 보면, 계향이 “하루만이라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말을 한다. ‘하루’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게, 진혁이 계향을 페니실린으로 살려도, 그녀는 식이엄마처럼 죽을 운명을 피할 수 없을 진 모르나, 하루만이라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계향의 소원은, 진혁이 역사 흐름을 배제하고 페니실린을 만들어 낼 이유를 낳는다.

 

이러한 과정을 글로 설명하기도 복잡하다. 그런데 닥터진이란 드라마가 현재 시청자에게 그런 것 같다. 한 에피소드속에 인물을 과다하게 투입해 역할을 분담하고, 상당히 복잡하게 과정을 꾸미다보니, 시청자가 맞춰야 할 초점이 흐려지고 결국 내용전달은 비효율을 낳는다. 덕분에 시청자에게 강하게 남는 건 내용보단, 5회에서 박민영이 주사바늘을 꽂은 송승헌의 사타구니 대퇴부나, 6회에 매독 걸린 기생의 얼굴 등 자극적인 장면들이 된다. 제작진의 불친절한 전개방식은, 70분 동안 환자 셋을 살려낸 닥터진 3회의 간결하고 스피디한 전개만도 못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