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진 박민영, 정말 뜬금없이 변한 걸까?
3일 방송된 닥터진 4회에선, 괴질(콜레라)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도성내에 퍼진 괴질에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민초들. 뿐만 아니라, 추후 조선의 마지막 왕이 될 흥선대원군 이하응(이범수)의 아들 명복(고종)까지 위기에 처한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괴질앞에서 진혁(송승헌)만의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리고 닥터진 5회에 예고된 바와 같이 진혁마저 괴질에 걸린다.
그렇다면 괴질(콜레라)란 병으로 2회 심지어 3회까지의 분량도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이건 병명이 다른 환자 셋을 데리고 에피소드 3개를 초스피디하게 진행했던 지난 닥터진 3회와 비교하면 늘어진 전개로 비칠 수 있다. 실제로 닥터진 4회는 3회에 비해 지루했다. 재미도 덜 했다. 쓸데없이 이것저것 다루는 인상을 줘 산만해 보이기도 했다. 이런 점은 시청자로 하여금, 사건 전개의 개연성이나 주요 인물들의 행동변화에 의문점을 갖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한다.
닥터진 박민영, 정말 뜬금없이 변한 걸까?
대표적으로 여주인공인 홍영래(박민영)가 닥터진 4회에서 보여준 행동변화와 괴질이란 트라우마에 대적한 급한 각성을 어떻게 봐야 할까. 덕분에 여주인공의 캐릭터가 오락가락한 인상을 주었고, 개연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특히 링거를 만들려는 진혁을 위해 고무줄 들고 괴질환자가 넘치는 토막으로 달려간 영래의 행동은 황당하게 비칠 수 있었다.
이유는 3회 후반 영래가 괴질 환자를 발견하고 기겁하고 도망치는 장면과 4회 초반 연신 세수를 하며 집 나간 정신을 찾으려 애쓰는 영래의 행동에 기초한다. 영래의 행동에 다소 의아해 한 진혁은, 영래의 오빠 영휘(진이한)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게 된다. 5년 전 영래아버지가 괴질로 사망해, 영래가 괴질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동안 늘 진혁을 도와 간호사역할을 담당하던 영래는, 괴질을 퇴치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활인서로 떠나는 진혁에게, 당신도 괴질에 걸려 죽고 싶냐며 가지 말라고 붙잡는다. 그럼에도 진혁은 걱정말라며 오히려 영래를 안심시킨 후, 활인서로 향한다. 이번에도 뭔가 천재의사 진혁답게 쉽게 해결할 것 같은 인상을 영래뿐 아닌 시청자에게 인식시킨다.
그러나 진혁은 활인서에서 만난 허의원의 부적타령과 똥고집, 괴질에 걸린 허의원을 보고 도망치기 바쁜 다른 활인서 의원들을 보고 당황한다. 진혁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허의원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답답함을 느끼나, 그와중에도 그는 조선엔 없는 링거를 개발할 생각을 한다.
문제는 링거에 필요한 유리와 고무줄이다. 또 돈이 들어간다. 다행히 괴질걸린 아들 명복을 살리려고 이하응이 돈을 마련한다. 매점매석이란 불법을 동원해 돈을 취한 좌상의 아들 대균(김명수)에게 입막음 대가로 오백냥을 받아낸다. 여기엔 기생 춘홍(이소연)의 컸다. 그리고 고무줄은 영래에게 부탁한다. 그러자 영래모는 이하응에게 노발대발한다. 영래를 괴질환자가 득실대는 토막에 보낼 수 없다고. 그러나 이미 영래는 고무줄을 들고 진혁을 찾아 달려간 뒤였다.
영래는 무슨 연유로 괴질환자가 넘치는 토막의 진혁에게 달려간 것일까. 진혁을 벌써 죽을만큼 사랑해서? 납득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진혁이 괴질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서? 그것도 아니었다. 영래는 결코 괴질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피할 수 없다면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를 각성시킨 건, 정혼자 김경탁(김재중)이었다.
영래는 저자거리에서 괴질이 아닌 굶주림에 눈이 뒤집힌 남자들에게 위협을 당한다. 그들은 영래를 죽이겠다고 까지 말한다. 이 때 경탁이 나타나 그들을 일망타진하고 영래를 구해준다. 그리고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는 영래를 안으며 한마디. “내가 그러니 바깥 출입을 삼가라 하지 않았소?”
경탁이 영래에게 해준 말은, 영래가 활인서로 향하는 진혁에게 해준 말과 일맥상통으로 볼 수 있었다. 영래가 집으로 돌아와 진혁이 떠나는 상황을 회상하는 장면에서도 읽을 수 있다. 즉 괴질환자를 구하겠다고 떠나는 진혁에게도 걱정스런 말이 아닌 행동으로 도와줄 사람이 필요함을 영래가 깨달았던 것이다. 경탁이 행동으로 자신을 구해준 것처럼 말이다. 동시에 괴질이든 도적이든 위협에 맞서는 게, 두려워 피하는 것보다 최선일 수 있음을.
그래서 현대의학의 도움없이, 환자와 소통조차 안 돼서 절망하기 시작한 진혁에게 영래가 나타나 자신의 깨달음을 앞세워 설득할 수 있었다. 영래가 괴질 트라우마를 깬 것은 아니지만, 괴질을 무작정 피하는 게 최선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때마침 괴질에 걸렸던 허의원이 진혁의 말을 듣고 병이 나았다고 좋아하며 급하게 튀어나온 것도, 좌절하던 진혁에게 도전과 희망을 암시하는 대목이었다.
즉 상황이 급하게 돌아가다 보니, 캐릭터의 심경변화도 급하게 이뤄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뜬금없는 건 아니란 얘기다. 그러한 변화에는 개연성을 담보하는 이유가 있다. 단순히 경탁이 무술실력을 뽐내기 위해 뜬금없이 나타나, 굶주림에 영래를 위협하던 패거리를 해치운 것이 아니라, 영래의 심경에 변화를 일으키는 개연성을 확보하려는 제작진의 의도였다.
닥터진 3회에서도 환자가 좌의정(김응수)->기생 춘홍->천민 식이엄마로 동시 등장한 것은, ‘환자(인간)는 신분여하를 막론하고 모두 같다. 모두가 생명의 존엄성을 취할 권리를 갖는다. 그리고 의사는 어떤 환자라도 살리기 위해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단순한 이치를 진혁에게 깨닫게 해 준 계기가 된다. 덕분에 3회에서 진혁은 세명의 환자를 고친 후에야 미나(박민영)의 충고를 떠올렸던 것이다.
닥터진은 3회의 스피디한 진행에서나 4회의 다소 늘어진 진행에서나, 분명 캐릭터가 상황에 따라 이유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고 발전하는 개연성을 갖는다. 다만 그것이 너무 장면마다 빠르게 비춰져 시청자에게 때론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닥터진은 진혁으로 대표되는 의학뿐 아니라, 이하응의 정치 입문과정도 다루다보니 빠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스피드에 어울리는 개연성을, 시청자에게 얼마나 쉽고 명확하게 전달하느냐로 보인다. 사실 좋은 드라마는 시청자가 느끼기에 복잡하고 어렵지 않은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