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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의약속, ‘친절한 수애씨’ 의도한 코디였다?

바람을가르다 2011. 12. 20. 09:09






19일 방송된 월화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선,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는 이서연(수애)이 아이를 출산하고, 7개월이 지난 시점이 그려졌다. 확실히 서연은 좀 더 바보틱해졌고, 치매의 동반자 우울증을 버리지 못해 매우 위태로워 보였다. 그래서일까. 서연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불안했고, 때로는 섬뜩한 장면을 끌어냈다. 서연을 통해, 알츠하미어란 질병의 무서움을 구체적으로 그려 넣었다.

우선적으로 서연이 자살을 시도한 장면을 꼽을 수 있다. 오밤중에 서연은 아파트 베란다로 가서, 의자를 놓고 뛰어내리려 했다. 그러나 그녀도 자살이 두려웠는지 순간 뒷걸음질 쳤고, 다행히 의자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방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러나 동생 문권(박유환)은 베란다에 남겨진 누나의 슬리퍼를 보곤 자살했다는 오판을 했고, 펑펑 울며 자고 있는 매형 박지형(김래원)을 불러냈다. 그렇게 서연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자살시도만으로, 함께 사는 두 남자는 두려움과 침통함을 느껴야 했다.



천일의약속, ‘친절한 수애씨’ 의도한 코디였다?

서연의 자살시도는 시청자입장에서도 적잖은 충격이었고 싸늘한 기운을 동반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은 불과했다. 서연의 엽기적인 행각은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일의약속 19회만 놓고 보면, 멜로드라마보단 엽기 호러나 스릴러에 더 가깝게 보일 정도였다. 그렇다면 장르조차 무색하게 만든 장면에는 어떤 게 있었을까.

1. 서연을 괴물로 만들 연출!

서연은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가 없다. 아이를 따뜻하게 안을 수 조차 없는 엄마였다. 울고 있는 아이를 놓고, 동생 문권과 나눈 대화속에 잘 나타나 있다. 서연은 실수로 아이를 바닥에 떨어뜨릴까봐 두려웠다. 차매로 인한 환각증상이 나타나 아이가 괴물로 보이고, 집어 던질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 서연은 더욱 속상해했다.

그런 서연을 달래주고 안정을 찾아주기 위해, 남편 지형은 음악을 틀어주었다. 바흐의 ‘G선상에 아리아’. 남편 지형의 품에 안긴 서연의 겉모습은 천상 여자였다. 그러나 이미 그녀의 속은 치매로 인해 괴물아닌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를 반대편에 비치는 거울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거울에 비친 멀쩡한 지형의 얼굴과 대조적으로 서연의 얼굴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거울씬은 인상적인 연출이었지만 섬뜩한 느낌을 동반했다.



2. ‘친절한 수애씨’ 의도한 코디였다?

제작진은 19회에서 확실히 장르의 파괴를 꾀하는 듯 보였다. 멜로분위기를 살짝 벗기고, 엽기와 호러느낌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에 발을 맞추듯, 지형이 노향기(정유미)를 집으로 초대한 장면에서, 수애도 머리와 의상에 신경을 썼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를 패러디한 듯, 수애는 헤어스타일과 의상을 금자씨화 시켰고 ‘친절한 수애씨’로 탈바꿈했다.

친절한 수애씨는 무섭다기보단, 재미있는 발상으로 보였다. ‘친절한 금자씨’를 생각해내고 의도한 코디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급작스럽게 헤어스타일까지 바꾸며 노향기에게 친절해 보이고 싶었던 이서연. 서연은 향기에게 약혼자 뺏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여전히 지형을 사랑하고 그를 기다려줄 수 있다면, 자신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달라고 부탁하며 오열했다.



3. 인도 카레는 손으로 먹어야 제맛?

분명 서연은 향기에게 친절했다. 그러나 죽기보다 하기 싫은 말을 해야 했다. 바로 사랑하는 남편을 다른 여자에게 보내주는 일. 자신이 없는 세상을 이야기해야 하는 현실. 마음이 아팠지만, 그 아픔을 억지로 참아내며 서연은 향기에게 남편을 부탁했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을 끝내자마자 머리가 아프다며 괴로워했다.

향기가 돌아간 후, 서연은 갑작스럽게 돌변했다. 옷을 입은 채로 욕조에 들어갔고, 물이 넘치는데도 잠그지 않았다. 그 모습에 동생 문권은 또 한번 경악했다. 뿐만 아니라 서연은 물에 흠뻑 젖은 채 침실로 가 누웠다. 향기에게 눈물로 남편을 부탁했지만,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화가 무지하게 나는 일이다. 서연은 그렇게라도 몸과 마음을 식히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천일의약속 수애판 ‘엽기적인 그녀’의 결정타. 냉장고 안에 카레를 데우지도 않고, 손으로 퍼 먹기. 인도 카레는 손으로 먹어야 제 맛? 서연이 카레를 제대로 먹을 줄 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카레 먹는 수애의 포스가 엽기에 광기까지 느껴졌다.

욕조에서 카레까지, 이서연이 그렇게 급격하게 무너진 이유는, 아마도 노향기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향기를 만나서 꼭 하고 싶었던 말을 다했기에, 서연은 그동안 힘겹게 붙잡았던 정신줄을 한꺼번에 놔버린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이제 자신이 해야 할 건 다 끝냈다는 생각. 이제 모든 걸 놔버린 서연을, 마지막회에 고이 보내주는 일만 남았음을 암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