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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꽃, 왜 제목이 ‘나도꽃’일까?

바람을가르다 2011. 12. 3. 11:32





이번 주 방송된 수목드라마 ‘나도, 꽃!’ 7,8회에선, 차봉선(이지아)과 서재희(윤시윤)의 본격적인 러브라인에 불이 붙었다. 덩달아 둘의 닭살 돋는 애정행각도, 속된 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오해를 풀고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은, 외진 산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비록 키스신과 베드신은 없었지만, 아쉬움을 달래줄 발바닥 스킨쉽이 있었다.

차봉선과 서재희는 손에 깍지를 끼고, 발바닥으로 키스를 하듯이, 연신 서로의 발바닥을 부비부비했다. 닭살점수 10점 만점에 9.8은 줘도 무방할 수준의 스킨쉽이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식사하던 테이블 사이로 서로의 다리를 꼬아가며 그렇게 서로 좋아 죽었다. 그럼에도 이지아와 윤시윤의 발바닥 스킨쉽은 화제가 되지 못했다. 시청률 한 자릿수 드라마에 비애랄까.



한편으론 겉으론 표현된 그들의 스킨쉽보단, 닭살돋는 애정행각속에 묻어난 대회들이 더 인상깊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릴적부터 외롭게 자란 차봉선과 서재희가 동질감을 느끼며, 눈물의 포옹까지 이어진 상황이라던가. 차봉선의 집에 초대된 서재희가, 그녀가 차려 준 소박한 밥상과 기도에 눈물을 흘렸던 장면이 그러했다.

이렇듯 나도꽃 7,8회가 특히 좋았던 것은, 닭살돋는 이지아-윤시윤의 애정행각이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감초같았던 발바닥스킨쉽도 인상적었지만, 무엇보다 내용적으로 좋았고 극전개에 있어 상당한 안정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추가할 것은, 나도꽃의 몰입도를 높여주는 밑그림의 측면이다. 왜 제목이 ‘나도꽃’일까에 대한 의문이 풀리고, 시청의 접근에 있어 폭을 다양하게 가져갈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나도꽃, 왜 제목이 ‘나도꽃’일까?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드라마 ‘나도, 꽃!’의 모티브가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대표적인 시중에 하나인,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비단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라는 구절 때문만은 아니다. 나도꽃 주인공인 차봉선-서재희-박화영(한고은)이, 이름이 불려지길 바라고 꽃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도꽃 7,8회를 돌아보면, 시속에 드러난 화자의 감정이 주인공들에게 구체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나도꽃 7회에서, 차봉선은 서재희가 어디론가 사라져 침울해한다. 그러다 길어세 우연히 그녀가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 핑크(이기광)을 발견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만, 수많은 팬들에 둘러싸여 넘어지기까지 한다. 물론 핑크는 차봉선의 존재조차 모른다. 차봉선은 핑크에게 그저 이를 모를 팬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봉선에게 서재희는 다르다. 인간관계를 불신하고 시크해진 여순경 차봉선도, 서재희앞에선 솔직해지고 기대고 싶을 만큼 천상 여자가 되고 만다. 그리고 이제 차봉선은 서재희에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1이 아닌,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전화번호도 교환하고, 키스도 하게 된 연인사이가 되었다.

나도꽃 8회에선 헤어지기 싫다면서 코맹맹이 소리로 땡깡을 부리던 차봉선을, 서재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클라크 게이블마냥 안고서 집으로 들여보낸다. 그러나 금세 집밖으로 뛰쳐나온 차봉선은 ‘서재희!’라는 이름을 부르며, 그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린다. 너무 행복하니까 눈물이 난다면서...

산장에서 발바닥스킨쉽을 나누던 차봉선은 서재희에게 말했다. ‘너랑 있으면 종이꽃에서도 향기가 날 것 같아.’ 매일같이 반복되는 외로웠던 차봉선의 일상에, 서재희란 남자가 나타나,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고 존재감와 가치를 부여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나도꽃 2회에 마지막에, 차봉선이 심리상담사 박태화(조민기)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내가 싫고 존재의 이유를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리던 시간과 배치되고, 서재희를 통해 변화된 차봉선을 읽을 수 있다.



사랑하기 시작한 서재희가 차봉선의 이름을 불러주고, 덕분에 그녀가 그의 꽃이 되었던 것처럼, 지금의 차봉선은 별 거 아닌 일에도, 혹은 그동안 외면했던 그녀의 친구나 가족 등 주변사람이나 그들이 관련된 일에도, 존재와 가치를 인식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마치 서재희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따뜻한 일인지, 그녀가 그를 만나면서 인식했기 때문이다.

서재희와 박화영도, 이러한 변화를 겪는 차봉선과 다르지 않다. 단지 나타나는 빛깔이 다르고 향기가 다를 뿐이다. 다른 건 개성이라고 볼 수도 있고, 살아온 환경과 사연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극중에 서재희와 박화영은 여전히 트라우마(화영의 남편에 교통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우울증을 앓았던 차봉선보단 깨닫는 속도가 늦을 뿐이다. 그리고 재희보단 화영이 더 그렇다. 분명한 건, 그들도 우리도 모두 꽃이 되고 싶어한다는 사실이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