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연예

여배우들의 '낙하산'캐스팅 변천사

바람을가르다 2009. 8. 25. 14:11

 

비련의 여인이든 왕자님을 기다리는 신데렐라든 여배우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극의 여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다. 주연급 연기자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경쟁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경쟁을 최소화하고, 단기간에 브라운관의 히로인으로 낙점받는 코스가 있다. 일종의 낙하산캐스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낙하산을 타는 유형도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중견탤런트라고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연기자들은 방송국 공채라는 수순을 밟는다. 채용과정을 통해 연기력을 검증받고, 발전가능성을 염두하며 선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내부의 경쟁이 치열하며, 주연급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단역부터 시작해 결코 짧지 않은 숙성기간을 거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90년대 초반 공채가 아닌, 미인대회 출신들이 안방극장의 히로인으로 낙점받기 시작한다<선덕여왕> 미실이 고현정, <첫사랑> 이승연 외에도 오현경, 염정아, 김사랑 등이 미스코리아 출신이다. 미스춘향 출신의 박지영, 장신영, 이다해와 슈퍼모델 한예슬, 한지혜 등이 미인대회 코스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처음부터 주연을 꿰찮다고 볼 순 없다. 시작은 주로 비중있는 조연을 부여받는다. <여명의 눈동자>고현정, <사랑을 그대 품안에>이승연 등 데뷔는 대부분이 이러한 케이스를 밟았다. 첫술에 배를 불리기 보단, 최소한의 단계를 밟고 재능을 인정받은 뒤, 주연으로 발돋움했다고 볼 수 있다. 


CF모델로 눈에 띄는 배우들이 중간중간 수급되는 경우도 많았다. 초창기 튜유초콜릿과 마몽드의 이영애외에에도 김선아, 한가인 등을 꼽을 수 있다
 

90년대 중반 케이블TV시대가 도래하고 가수들은 뮤직비디오에 공을 들이기 시작한다. 특히 이승환신승훈의 경우, 주로 길거리 캐스팅이나 오디션을 통해 뉴페이스들을 자신들의 뮤직비디오에 출연시키는데 김지호, 명세빈, 김현주, 신민아, 김정화 등이 그들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세간에 얼굴을 알리게 되고 방송국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게 된다. 이들은 주로 조연을 거치지 않고 바로 주연으로 발탁되는 KTX코스를 밟는다. 그러고 보면 이승환신승훈이 여자든, 여배우든 보는 눈은 굉장히 수준급이라고 생각된다.

 

한 세기가 바뀌고, 안방극장을 점령하기 시작한 여배우들은 주로 인기 아이돌출신의 가수들 몫이 된다. <러빙유>에 히로인 SES의 유진을 신호탄으로, 핑클 성유리가 <천년지애>로 가세한다. 이어 베이비복스 윤은혜가 예능프로그램에서 보인 끼를 등에 업고 <>에 출연하였으며, 최근 종영한 <자명고>의 정려원의 경우 샤크라의 멤버였다는 사실이 언뜻 생각나지 않을 정도다. 가수이전에 연기자로 미리 얼굴을 알린 만능엔터테이너 박지윤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엔 소녀시대의 윤아, 원더걸스의 막내 소회 등도 이미 연기자로서 검증을 마친 상태이며, ‘미쳤어의 손담비는 <드림>으로 시동을 걸었다.

 

앞으로도 인기 여가수들. 특히 나이어린 걸그룹 출신 멤버들의 경우, 기존의 인기와 인지도를 바탕으로 배우로의 이탈현상은 지속될 것이라고 사료된다.

 

문제는 인기와 인지도, 그리고 막강한 기획사를 등에 업고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가수출신의 여배우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떠한 검증 절차없이 덜컥 주연이라는 자리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게 타당하다고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녀들 중 대다수가 발연기라는 꼬리표를 못뗐다는 사실은 낙하산의 병폐를 고스란히 입증한다.

 

<커피프린스 1호점>의 경우, 고은찬윤은혜가 맡지 않았다면 히트하지 않았을까? <태양을 삼켜라>성유리가 반드시 필요한가? 여배우의 컨택이 연기가 아닌 외모나 인기라는 저울로 판가름되는 이상 시청자로부터 발연기의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MBC베스트극장이나 KBS단막극이 적어도 배우들의 연기력을 검증하는 창구역할을 할 수 있음에도 이곳을 거친 주연배우들은 적으며, 단막극시장마저 안방에서 문닫은 지 오래다. 현재는 여주인공을 꿈꾸며 탤런트 공채시험을 보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으로 치부된다. 교복을 벗고 기획사를 찾아가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오히려 연기자로 가는 지름길이 되어 준다스타일리쉬하게 옷을 입고, 청담동, 신사동, 도산공원 근처를 하루종일 배회하다 방송관계자나 기획사로부터 명함을 받는 게 오히려 낫다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듣보잡 신인이 안방극장에 주연자리를 꿰차고 들어오는 경우나 CF 몇 편 찍고 신데렐라를 연기하는 여배우에게 막강한 스폰서가 있다는 식의 악성루머가 돌 수 밖에 없다. 연극이나 뮤지컬 등과 같은 또 다른 무대에서 검증을 받은 것도 아니며, 출처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그저 마스크가 신선하다는 이유로 시청자에게 벼락 인사를 시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가. 아무리 연예기획사의 입김이 커졌다지만 순수하게 받아주는 드라마제작사는 무엇이며, 편성을 허락하는 방송국의 자세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당연히 시청자로선 그들사이에 이뤄지는 뒷거래가 있음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낙하산이라고 해서 무조건 연기력이 떨어지거나 재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은 연기자가 아닌 엔터테이너를 키우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낙하산을 양산할 수 밖에 없는 현재의 시스템이 고착될수록 시청자들의 시선은 차가울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