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교형제들 최정윤, ‘혼전임신-계약결혼’ 불쌍한 허당 알파걸?
‘솔약국집아들들’, ‘수상한삼형제’에 이어 ‘오작교형제들’이 KBS주말드라마에 형제불패신화를 써내려갈 태세다. 오작교농장의 4형제를 중심으로 가족드라마를 표방하는 오작교형제들은, 현재까지 총 16회가 진행된 상황에서 시청률 30%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오작교형제들이 순항을 거듭하는 이유가 뭘까.
온가족이 볼 수 있는 저녁 8시 드라마의 특성상, 내용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중간부터 봐도 앞뒤 내용이 전부 그려질 정도로 쉽기 때문에, 새로운 시청자의 유입에 수월하다. 주요 등장인물인 4형제의 에피소드 분량도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어 전개가 급하지 않고, 어떤 한 인물에 꽂혀서 보면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도 별다른 거부감없이 흡수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회마다 극의 전면에 나서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얘깃거리를 던져주고, 재미와 갈등을 폭발시키는 주도적인 인물이 필요하다. 오작교형제들의 경우, 농장의 각서를 두고 목소리를 높였던 박복자(김자옥)와 백자은(유이)의 싸움이 초반 시청자의 시선을 붙들게 했다. 각서를 빼돌리고 적반하장으로 나온 박복자도 나쁘지만, 도끼눈으로 바락바락 대드는 유이도 얄미웠다. 그만큼 유이의 연기가 나쁘지 않았다.
현재 박복자와 백자은은 휴전에 돌입했으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각서 폭탄은 여전히 유효하고, 그 와중에 백자은-황태희(주원)의 러브라인도 슬슬 엮어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런 박복자와 백자은이 잠잠해지자, 황태범(류수영)-차수영(최정윤)커플이 사고를 쳤다. 하룻밤의 실수(?)로 수영이 혼전임신을 했고, 두 사람은 1년간 계약결혼에 합의한다.
오작교형제들 최정윤, ‘혼전임신-계약결혼’ 불쌍한 허당 알파걸?
사실 태범은 수영을 사랑하지 않는다. 태범에게 수영은 직장상사일 뿐이다. 그러나 수영은 태범에게 끌리는 마음이 있었다. 물론 실수(?)로 태범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남자 태범을 좋아했고 남편감으로서 그에 대한 믿음을 품었기 때문에, 뒷걸음질 치는 태범에게 결혼하자며 매달린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태범의 결혼관은 확실하다. 죽도록 사랑할 만큼 운명적인 여자가 나타날 때까진 결혼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태범에게 수영은 죽도록은 커녕 조금의 사랑도 느끼지 못한다. 때문에 현재의 상황을 빠져 나갈 궁리만 했다. 그러나 양가부모님이 수영의 임신사실을 알게 됐고 태범은 외통수에 몰렸다. 결국 태범이 뼛속까지 나쁜 남자는 아니기 때문에, 미혼모가 될 각오까지 했던 수영의 손을 잡아주었다.
대신 태범은 결혼에 조건을 달았다. 일단 1년 동안 살아보고, 한 사람이라도 부부관계에 회의를 갖는다면 이혼하기로 말이다. 수영은 태범의 제의에 당황하지만, 일단 소나기부터 피하겠다는 심정으로 허락한다. 태범은 여기에 한 술 더 떠, 만일 계약결혼 와중에도 운명적인 여자를 만난다면, 그녀와의 사적인 만남을 허락해 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뭐 이런 새X가 다 있어?’가 나와 줄 타이밍에, 수영은 “나 모르게 만나. 들키면 죽어.”라고 의외에 반응을 보였다.
운명적인 여자를 만난다면 바람펴도 되겠냐는 속내가 담긴 태범의 몹쓸 질문에, 수영은 쿨한 척 오케이사인을 보낸 셈이지만 속으론 얼마나 황당하고 열받았을까. 한편으론 1년 내에 태범에게 운명의 여자가 나타날 리 있겠냐며 수영이 쉽게 생각한 대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앞일은 모르는 것. 게다가 드라마는 어떻게든 사건을 만든다. 즉 계약결혼생활 와중에 태범은 운명이라고 착각(?)한 여자를 만날 테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수영은 배신감에 눈물을 쏟는 상황이 벌써부터 그려지는 이유다.
차수영은 극중에서 허당 알파걸로 묘사되고 있다. 부잣집 딸래미, 우등생 엄친녀, 초고속 승진을 한 IBC 사회부 팀장. 그러나 부하직원 태범을 만나, 혼전임신에 사랑받고 축복받아야 할 결혼에 조건이 주렁주렁 달린 황당한 계약결혼. 덕분에 남편 황태범이 언제라도 자식과 아내를 팽개치고 몰래 바람필 여지마저 허락했다. 수영이 알파걸은 맞는데, 실속 꽝, 정말 허당이고 불쌍한 여자로 비춰진다.
물론 사랑이 전제된 것이 아니라, 하룻밤의 실수(?)라고 주장하는 임신으로 결혼을 결정했기 때문에, 두 사람사이엔 계약결혼기간인 1년 안에, 서로에게 진실된 사랑을 확인하는 계기가 필요하다. 문제는 그 계기가 지극히 상투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데에 있다. 특히 일종에 트라우마로 볼 수 있는 황태범의 운명적 사랑에 대한 집착을 깨부수기 위해, 부부사이에 다른 여자가 개입되어 오해와 갈등을 부르고 차수영이 상처를 받는다면? 아무리 두사람이 극적인 화해를 하고 황태범이 아내 차수영에게 진짜 운명이고 사랑이었음을 깨닫는다고 해도, 개운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사실 하룻밤의 실수, 혼전임신, 계약결혼콤보는 드라마가 선호하는 식상한 재료다. 덕분에 사랑없는 황태범-차수영을 다소 억지스럽게 연결시키는 데에도 성공한 셈이다. 그럼에도 황태범-차수영커플은 오작교형제들에 재미와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최소한 그들의 캐릭터가 우유부단한 느낌이 덜하고, 계약결혼만 빼면 상당부분 개념이 알차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5일 방송된 16회에서, 황태범은 장인-장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을 거짓되게 포장하는 건, 우리 부모님을 무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수영에게 실망감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자존심만 내세우진 않고, 준비했던 과일바구니대신 장모가 될 남여경(박준금)이 선호한다는 와인을 사와 적당히 양보할 줄도 아는 남자가 황태범이다. 차수영은 어떤가. 그런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며, 황태범의 입장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사과할 줄 아는 개념녀다. 때문에 황태범-차수영커플속엔 비록 사랑이 전제되진 않았지만, 잘 어울리는 한 쌍으로 보이는 것이다. 여기에 황태범-차수영을 연기하는 류수영-최정윤의 캐스팅이 빛을 발하고 있다. 다만 극중 계약결혼생활은 결코 순탄치 않음을 예고하고, 현재 황태범이 쥐고 있는 주도권이 허당 알파걸 차수영에게 넘어오는 과정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