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남자 이민우-홍수현, 왜 개그커플로 보일까?
25일 방송된 ‘공주의 남자’ 12회에선, 수양대군(김영철)의 오른팔 한명회(이희도)가 보낸 왈패들에게 쫓겨 여러 번 죽을 위기에 처했던 김승유(박시후)가, 조석주(김뢰하)의 도움을 받아 왈패들의 눈을 속이고, 결국 섬을 빠져 나와 한양으로 재입성하는 과정이 그려졌다.
부상 입은 김승유를 위한 조석주의 애프터서비스는 계속됐다. 마포나루의 유곽 빙옥관으로 승유를 데리고 간 석주. 빙옥관엔 초희(추소영)를 비롯, 트랜스젠더 무영(최한빛), 막내 소앵(이슬비) 등, 차후 수양대군을 향한 김승유의 복수극에 동참할 아리따운 기생들이 대기중에 있었다. 특히 막내 기생 소앵의 경우, 승유와 러브라인도 기대해 볼만하다. 덕분에 김승유는 ‘공주의 남자’에서 ‘기생의 남자’로 부활했다. 앞으로 ‘김승유와 기생들’의 활약을 지켜보는 것도 쏠쏠할 듯싶다.
그러나 김승유는 여전히 원수의 딸 이세령(문채원)을 잊지 못한 듯하다. 수양대군을 찾아간 것인지 세령을 찾아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승유은 어느 새 수양대군의 집앞까지 걸어 왔고, 세령과 신면(송종호)이 포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물론 신면과 거리를 두며 승유를 잊지 못하는 세령을, 신면이 강제적으로 잡아채서 포옹을 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사랑했던 세령을 심하게 오해하지 않기 위해선, 승유가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즐겨 쓴다는 원거리 엿듣기 신공을 보유해야 한다. 만에 하나 승유가 엿듣기에 실패하고, 단지 ‘세령-신면’의 포옹만 기억한 채 돌아간다면, 지덕체를 겸비한 승유입에서 얼마나 쌍욕이 나올까.
공주의남자 이민우-홍수현, 왜 개그커플로 보일까?
한편 비극의 또 다른 커플 ‘정종(이민우)-경혜공주(홍수현)’의 상황도 여전히 순탄치 않았다. 금성대군이 수양대군을 칠 거사를 준비중에 있었지만, 왠지 모를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기 때문이다. 과연 금성대군이 잘 해낼 수 있을까. 정종은 금성대군의 거사를 두고, 계유정난을 일으켰던 수양대군의 방식으론 께름칙하다며 우회적으로 불안감을 드러냈다.
사실 정종-경혜공주도 돌파구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 지금대로면 어차피 수양대군에 의해 단종은 물론, 자신들의 목숨도 보존하기 힘들다. 때문에 금성대군의 거사제안을 거부할 수도 없었다. 다만 시청자입장에선 정종이 금성대군을 뛰어넘는 전략을 구상하진 못하더라도, 좀 더 능동적인 행보를 보여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정종은 경혜공주보다 수동적인 인물이었다. 변화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는 게 안타깝다. 그렇다고 역사를 새로고침 할 수도 없고.
현재 제작진도 정종의 캐릭터를 최대한 능동적으로 구현하려 애를 쓰고 있다. 다만 그 과정이 치밀하지 못하고, 오히려 에피소드의 무한반복을 통해, 정종-경혜공주를 개그커플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주의남자 12회에서, 단종을 만나러 간 정종-경혜공주가 호위무사들에게 문전박대 당하는 장면에서도 느낄 수 있다.
전하를 만나러 왔다는 경혜공주의 말에, 수양대군이 단종과의 접촉을 금하였다면서, 호위병들은 정종과 경혜공주의 출입을 가로막았다. 이에 정종은 호위병에게,
“공주마마에게 병기를 들이대다니 그러고도 무사하길 바라느냐? 너희가 모셔야 할 군주는 수양대군이 아니라 전하가 아니더냐!”
라며 있는 힘을 다해 버럭 화를 냈다. 그러나 힘에서 호위병에게 밀린 정종은 쉽게 포기한 채, 화병직전의 경혜공주에게,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죠.”라며 타이른다.
정종-경혜공주는 늘 이런 패턴이다. 잘못된 상황에 대해선 화를 낼 줄 알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화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채 쉽게 포기하고 상황을 종료시킨다. 물론 수양대군아래서 힘을 쓸 수 없었던 정종과 경혜공주를 사실적으로 그렸다.
문제는 같은 패턴의 에피소드가 반복된다는 데에 있다. 일개 병사나 내시들조차 정종이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꼬리를 내린다. 정종은 처음에만 반항하며 언성을 높이지만, 결국 병사대신 열받은 경혜공주를 식히는데 주력한다. 무슨 콩트도 아니고, ‘버럭->포기->민망함’으로 이어진 반복된 상황이 그들을 개그커플로 만들고 만다.
힘없는 부마 정종이 불쌍하기도 하지만, 일개 병사에게조차 수모를 겪는 정종-경혜공주를 너무 자주 비춰주는 건, 그들의 캐릭터를 뭉개는 수준밖에 되질 않는다. 그런 장면은 앞으로 가급적 배제하는 게 낫지 않을까. 정종-경혜공주는 이빨빠진 호랑이란 사실을 이미 시청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방송에서 경혜공주의 잠자리를 지켜주던 정종의 모습은 참 듬직하고 보기 좋았다. 그런 류의 에피소드가 두 사람에게 더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친구 김승유가 죽었다고 믿고 안타까움에 흘린 정종의 눈물. 얼마나 감동적이고 좋았는가를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회를 거듭할수록 평면적인 에피소드에 갇힌 정종-경혜공주를, 그나마 이민우-홍수현의 연기가 입체적으로 구현중이란 게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