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남자, '계유정난' 알면서도 속았다?
11일 방송된 수목드라마 '공주의 남자' 8회에서는, 왕위를 찬탈하려는 수양대군(김영철)이, 단종의 최측근 김종서(이순재)일가를 몰살시킨 '계유정난(癸酉靖難)'이 그려졌다. 그러나 드라마 공주의 남자는 역사의 기록과는 조금 다르게 '계유정난'의 과정을 표현했는데, 여기엔 수양대군의 딸 이세령(문채원)과 김종서의 아들 김승유(박시후)의 러브스토리가 픽션으로 가미됐기 때문이다.
수양대군이 김종서의 집을 불시에 습격해, 그와 그의 아들을 깔끔하게 죽인 계유정난이 아니었다. 드라마 공주의남자에선 수양대군이 김종서의 아들 김승유가 궁녀와 사랑에 빠졌다는 서찰을 보냈고, 그와의 만남을 은밀하게 추진했다. 그리고 김종서와 독대한 수양대군은 김승유가 사랑하는 궁녀는, 사실 자신의 여식인 세령이라고 밝혀 김종서를 놀라게 만든다.
수양대군은 김종서를 놀라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왕권을 놓고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김종서와 사돈도 맺을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시청하는 입장에서 여기서부터 헷갈렸다. 수양대군도 딸바보에 평범한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의 사랑을 이해하고, 아버지의 욕심으로 인해 그 사랑이 다치지 않도록 최소한의 도리를 할 줄 아는 아버지.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들지 않기 위해, 냉혹한 수양대군이 김종서에게 화해의 손을 내미는 줄로만 알았다. 풍전등화속에 김종서를 대하는 수양대군은 분명 그런 태도를 견지했었다.
공주의남자, '계유정난' 알면서도 속았다?
그러나 수양대군에게 완전히 속았다. 애초에 그는 자식인 세령과 승유의 사랑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김종서를 죽일 기회만 노렸다. 김종서의 아들이 수양대군의 딸과 사랑에 빠졌다는 말에 당황하는 그에게서 수양대군은 기회를 포착했던 것이다. 사실확인을 하고자 김승유를 불러오라는 김종서의 지시를 기다렸고, 김승유가 나타나는 즉시, 수양대군은 김종서일가를 싹쓸이 할 계획이었던 셈이다.
때문에 알면서도 속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드라마지만 역사적 진실 '계유정난'을 피할 수 없다. 즉 수양대군에 의해 김종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충분히 반전이 있을 수 있다. 드라마는 픽션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로서 사랑하는 딸을 위해 수양대군이 마지막으로 김종서를 회유하는 장면을 기대했다. 그러나 김종서의 거절과 함께, 결국 '계유정난'을 피하지 못하는 상황을 말이다.
'공주의 남자'도 얼핏 그렇게 흐르고 있다. 김종서의 장남 승규(허정규)이 수양대군의 가마꾼으로 변신한 권력내시 전균(김영배)일당의 칼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즉 드라마 공주의남자는 수양대군이 김종서일가를 몰살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자식들의 혼사를 김종서와 담판짓는 그림을 그리려다, 타인들에 의한 돌발상황으로 원치 않은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던 비극으로 '계유정난'을 표현하려든 게 아닐까.
게다가 몸종 여리에 의해 세령의 혈서를 건네받은 김승유가 집을 비운 것도, 오히려 '세령-승유'의 사랑을 가로막아 상황을 꼬이게 만들고 시청자를 애태우게 만들어 조바심과 아쉬움을 낳았던 시점이었다. 일이 안 되려면, 하나부터 열까지 꼬인다더니, 딱 그러한 상황이었다. 긴장과 갈등 그리고 엇갈림의 연속...
그러나 처음부터 수양대군은 김종서에게 자식의 혼담을 부탁할 사람이 아니었다. 김승유가 세령에게 썼다는 서찰대신 철퇴를 꺼내 들어 김종서를 단박에 내리쳤기 때문이다. 얼굴에 피가 튄 수양대군은 미소를 지었다. 수양대군이 거사를 도모하기 위해 김종서를 찾아간 건 사실이지만, 딸 세령을 위해 한번쯤은 김종서를 설득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예상했던 기대는 조각났다. 드라마 속에 수양대군은 지독한 악역으로 오히려 캐릭터의 입지는 굳어졌다.
'공주의남자' 8회는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제작진이 시청자를 쥐고 밀당하는 내공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계유정난'을 표현한 여타 드라마와는 확실히 달랐다. 물론 '승유-세령'의 로맨스가 더해졌기 때문이지만, 시청자입장에선 계유정난을 일으킨 수양대군의 속내를 알면서도 속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 극적 장치나 몰아간 분위기가, 반전없는(?) 반전으로 재미와 긴장감을 최고로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