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헌터 이민호-박민영, 이별을 예고한 이유?
13일 방송된 시티헌터 15회는 가스로 시작해서 가스로 끝났다. 독가스에 질식해 죽을 뻔했던 김영주(이준혁)검사가 이윤성(이민호)으로 도움으로 살아난 뒤, 시티헌터는 이윤성이란 결론에 도달해가는 과정이 그려졌고, 혜원케미칼의 오너 천재만(최정우)의 비리를 조사중이던 이윤성이 가스에 질식해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장면으로 매듭지었다. 결국 가스왕 천재만의 처단은 5인회 서용학-김종식 등에 비해, 시티헌터 이윤성에게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사실을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강인한 시티헌터 이윤성이 가스에 질식해서 길바닥에 맥없이 앉아 다 죽어가는 모습을 보였던 건, 아무래도 골수이식 후유증이 작용한 듯싶다. 이윤성이 백혈병에 걸린 엄마 이경희(김미숙)에게 골수를 이식한 훈훈한 장면이 식기도 전에, 천재만을 처단하겠다고 현장조사에 나선 것이 무리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극중에서 이윤성의 스케줄이 너무 빡빡하다. 5인회에 복수해야지, 김나나(박민영)랑 연애해야지, 이진표(김상중)에게 사랑하면 안 된다는 잔소리 들어야지, 청와대에 출근해야지, 홈쇼핑 중독에 집나간 배식중(김상호) 달래야지, 김영주검사 따돌려야지, 골수이식해야지 등등. (아파서 사라진 엄마를 찾았더니 골수가 또 기똥차게 맞아요.) 이렇듯 이윤성의 몸이 열둘이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즉, 지금의 시티헌터는 한장면도 이윤성없이는 제대로 돌아가질 않는다. 사실상 이민호가 70분 풀타임을 소화해야 하는 스토리 전개양상을 띄고 있다. 때문에 동물원장 진세희(황선희)가 그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이윤성이 진세희까지 관계를 발전시키고 연락을 취하다보면 헌터가 녹초가 된다. 그래서 여주인공 김나나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김나나가 독립적인 무언가를 보여줘야 했지만, 여전히 이윤성에 기대어 분량을 뽑고 있다. 그 분량조차도 캐릭터의 발전이 아닌, 자신이 뱉은 말에도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오락가락하는 느낌을 동반했다.
시티헌터 이민호-박민영, 이별을 예고한 이유?
시티헌터는 20부작이다. 그렇다면 시티헌터 15회에선, 주인공인 이윤성이 뭔가 치고 나가는 인상을 줘야 했다. 그러나 이윤성은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와 골수이식 그리고 김나나와 사랑의 밀당에 매달렸다. 사랑을 할려면 제대로 하고, 김나나를 떠나보내려면 제대로 이별해야 하는데, 이도저도 아니게 질질 끄는 인상만 주었다.
이윤성이 고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양아버지 이진표의 잔소리가 하루이틀도 아니었는데, 사랑하지 말라는 매번 똑같은 말한마디에 그때그때 쉽게 흔들린다. 그렇게 약해빠질 거면, 이윤성을 대신해 총을 맞고 그의 인생에서 사라져주겠다며 돌아섰던 김나나를 백허그로 붙잡으면 안 됐다. 그녀를 안았을 땐 적어도 남자로서 그녀를 지키고 내 여자로 품어야 맞지 않나. 그러나 이윤성이 아직까지도 김나나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조차 하지 못했다. 그 명분이 김나나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겠다는 유통기한 지난 논리에 기초한다.
게다가 이윤성은 김나나가 컴퓨터옆에 나타날 때마다 몸서리치며, “끼어들지 말랬지!”를 반복한다. 제작진이 문제인 게, “끼어들지 말랬지!”가 벌써 몇 번째 이윤성의 입에서 나오는가. ‘사랑하지 말라니까.’는 이진표나 ‘끼어들지 말라니까.’에 이윤성이나 대사가 매번 똑같다. 김나나가 불쑥 등장하는 타이밍도 매번 똑같고. 그러니 지루함을 동반하는 건 둘째치고, 이윤성이 김나나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짜증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일각에선 ‘차라리 헤어져라, 헤어져.’의 분위기도 형성되는 것이다.
사실 김나나의 캐릭터는 이윤성대신 총을 맞았던 11회 이후에 진화해야 했다. 시티헌터가 이윤성이란 사실을 모르고 그와 티격태격하며 생기발랄했던 모습이 강조된 김나나에서, 좀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이윤성을 보듬어주는 여자. 그래서 대신 총맞게 만든 거 아니었나. 총맞고 ‘너도 이렇게 아팠니?’같은 애절한 대사를 날리던 김나나로 변신합니다를 시청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김나나의 캐릭터는 총을 맞기 전과 후가 똑같다. 총맞은 당시만 살짝 변했을 뿐.
초등학생 달려라 하니도 사건사고를 겪으며 성격이 변하는데, 다 큰 경호원 김나나는 여전히 달려라 김나나다. 반지는 커녕, 좋아한다고 고백하지 않는 이윤성을 보며, 처음 그에게 사랑을 고백했을 때처럼 ‘상처받지 말자.’를 되뇌는 김나나가 안타깝다. 차라리 당신 엄마가 준 내반지 내놓으라면서, 뭐가 그렇게 겁나냐고 이윤성에게 버럭 화를 냈다면 나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총을 맞은 후엔 강해졌거나 약해졌거나, 하나의 노선을 잡고 분명한 길을 걸어야 하는데, 지금의 김나나는 강한 것도 아니고 약한 것도 아니다. 그때그때 달라요.
5회를 남긴 시점에서 제작진은 이민호-박민영이란 비쥬얼커플을 나란히 놓고 분량뽑는 것을 미루고, 이윤성-김나나의 역할분담을 확실히 지정해 줄 필요가 있다. 어설프고 진전없는 사랑싸움만으로 엮을 것이 아니라, 각자가 독립적인 위치와 장소에서 위기든 사건해결방법이든 독자적으로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특히 김나나의 캐릭터가 진화해야 한다.
사랑스런 사진액자도 깨졌고, 시티헌터 16회의 예고를 보면 이윤성이 김나나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동시에 이별을 얘기한 듯, 그녀가 눈물을 펑펑 쏟는 장면이 나온다. 서로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기 위한 이별이라면 나쁠 것이 없다. 오히려 느닷없는 보신각 종소리보다 더 절실한 순간을 맞기 위한 이유있는 포석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별을 계기로 이윤성과 김나나의 캐릭터도 좀 더 발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