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연예

나는가수다 옥주현 1위, 시청자의 판타지를 깨다?

바람을가르다 2011. 5. 30. 08:19






지난 주내내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를 둘러싼 루머와 스포일러가 인터넷상에 지겹도록 오르내렸다. 그리고 각종 논란에 중심에 섰던 옥주현과 JK김동욱이, 임재범과 김연우의 빈자리를 채우는 나가수의 새멤버로서 첫 경연무대를 가졌다. 결과는 놀라웠다. 쟁쟁한 나가수의 선배들을 제치고, 임재범의 '비상'을 부른 JK김동욱은 4위, 이승환의 '천일동안'을 부른 옥주현은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경연을 계기로 변화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1위를 하고 눈물을 보인 옥주현뿐 아니라, 그녀의 나가수 출연을 반대했던 많은 시청자를 울렸기(?) 때문이다. 옥주현이 인터뷰에서 밝혔던 드라마는 1위라는 결과로 깨지지 않았다. 그러나 옥주현과 나가수 제작진이 깨버린 것도 있었다. 바로 깨서는 절대 안 될, 나가수에 품고 있던 시청자의 드라마고 판타지였다.



시청자의 판타지를 깬 옥주현 1위, 나가수에 독이 되나?

나는가수다가 단기간에 시청자를 사로잡고 인기가 폭발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서바이벌 룰을 통한 탈락시스템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나가수의 가수들이 보여주었다. 나가수 경연에서 7위를 했다고 해서, 해당가수를 폄하하는 대중은 없었다. 탈락은 단지 해당가수를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인 동시에, 새로운 가수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의 교차였을 뿐이다.

서바이벌 룰은 나는가수다의 흥행을 도왔던 부차적인 수단이 되었을 뿐, 실질적인 나가수의 힘은 가수들이었고, 그들을 바라보는 대중의 ‘판타지’가 녹아들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때문에 시청자는 임재범-김범수-윤도현-박정현-이소라-김연우-BMK를 일컬어 꿈의 라인업이라며 환호했고 ‘신들의 경연’이라고 칭송했다. 그들은 가수로서 보여줄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과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대중은 감동과 희열을 느끼며 나가수를 우러러 보았다.



나가수에 힘의 원천이었던 시청자의 판타지가 옥주현 1위와 함께 깨져버린 것이다. 옥주현이 노래를 못해서 깨진 것이 아니다. 옥주현도 1위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란 사실을 시청자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옥주현이 출연하고 1위가 됨으로써, 그동안 재벌2세 훈남이 지극히 평범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드라마를 보고 감정이입을 해가며 판타지를 꿈꾸던 시청자는, TV를 끄고 현실을 돌아보는 순간과 마주했고 별 거 없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

사실 옥주현만한 신데렐라도 없다. 나는가수다의 방송직전까지 있는 욕, 없는 욕을 다 먹고, 비호감의 아이콘으로 내몰렸다. 그러나 옥주현은 무대를 통해 반전을 이루었다. 많은 네티즌이 옥주현은 나가수급이 아니라며 비판했지만, 그녀는 청중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1위로 우뚝 섰고, 실력만으로 출연의 타당성을 입증했다. 이 얼마나 극적인 드라마고 통쾌한 반전인가.

문제는 옥주현이란 캐릭터에게 대중은 판타지를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녀를 주인공인 신데렐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신데렐라 친구쯤으로 여기고 있다. 시청자가 바라던 드라마도 전개도 아니었기에 나가수가 개연성없게 비춰지고, 옥주현과 더불어 나머지 가수들에 대한 환상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나가수를 보며 신들의 향연이라고 믿었던 판타지를 뭉개버린 기폭제는 옥주현의 1위 등극이 된 셈이다.



시청자가 드라마를 볼 때엔, 가장 먼저 감정이입을 할 대상(캐릭터)을 찾는다. 바로 스토리보다 중요한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연기력에 앞서 캐릭터로서 매력이 있어야 한다. 시청자는 캐릭터에 공감을 하고 호감을 가져야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캐릭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채널은 돌아갈 수밖에 없다.

나는가수다도 마찬가지다. 임재범과 옥주현이 그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가창력의 우위를 논하기에 앞서, 그들의 캐릭터가 얼마나 시청자에 흡인력을 담보할 수 있는가에 따라 공감의 질이 달라진다. 캐릭터에 따라 평범한 이야기도 특별해지고, 특별한 이야기도 평범해질 수 있다. 시청자에게 판타지는 ‘무엇을, 어떻게’가 아닌, ‘누가’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시청자가 바라보는 나는가수다와 위대한탄생은 다르다. 누구나 오디션에 참여할 수 있는 위대한탄생이 ‘나도 할 수 있다’는 판타지를 선사한 반면, 대중이 인정하는 명품가수들이 출연한 나는가수다는 ‘저들만 할 수 있다’는 판타지를 안겨주었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옥주현의 나가수 출연을 반대했던 것이다. 옥주현의 가창력을 불신했던 게 아니라, ‘저들만’이 ‘누구나’가 되는 걸 경계했기 때문이다. 나가수에 느꼈던 판타지를 지키고픈 심리가 기저에 깔려있었다. 그걸 신정수PD가 용납하지 않았고 옥주현-JK김동욱을 투입해 시청자의 반발을 샀던 것이다.



대한민국에 노래 잘 하는 가수는 많다. 시청자가 그 사실을 몰라서 출연자들을 드림팀으로 인정하고 나가수를 신들의 경연장으로 여겼던 게 아니다. ‘나는가수다’라는 TV프로그램안에서 만큼은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해가며 판타지를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청자가 섭외과정에 개입하며 의견을 제시하고, 대중성보단 희소성을 갖춘, 노이즈가 아닌 판타지에 어울릴만한 주인공을 찾았던 것이다.

옥주현의 1위 등극과 함께 나는가수다에 판타지는 깨졌다. 감정이입을 하고 무대를 바라볼 만큼 연예인 옥주현의 호감도가 떨어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돌 걸그룹 핑클출신으로 솔로가수로선 평범한 이력에, 나가수의 기획의도 및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는 옥주현도 1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허무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경쟁했던 다른 가수들마저, 그동안 다져왔던 신의 영역에서 벗어난 인상을 주고 말았다.

임재범의 하차와 옥주현의 1위는, 결과적으로 나가수에 득보단 독이 될 전망이다. 나가수를 지탱하던 판타지가 사라지고 평범한 예능으로 도매취급당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와 맞물려 루머, 조작, 스포일러 등 노이즈마케팅도 이제는 이슈로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를 피곤하게 만들고 무관심만 재촉할 단계로 접어들었다. 내용적으로 제작진의 준비와 보완없이 서바이벌 경연만으론 힘에 부치는 시점으로 치닫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렇다면 이번 주를 고비로 상승했던 나가수의 기세는 물론 치솟던 관심과 시청률도 꺽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이승철-이승환-신승훈-김경호 등 시청자의 구미를 당길만한 가수들이 섭외됐다는 희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면 더욱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