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예술대상, '시상식의 아이콘' 김혜수에서 고현정?
26일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47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이병헌에게 영화부문을, ‘시크릿가든’의 현빈에게 TV부문의 대상을 안겨주었다. 해병대에서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중인 현빈은 시상식에 참석하진 못했으나, 영상을 통해 건강한 모습을 보여줘 수상소감을 대체했다.
*제4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이병헌(악마를 보았다) 작품상=아저씨 감독상=이창동(시)
남자최우수연기상=하정우(황해) 여자최우수연기상=탕웨이(만추)
남자신인연기상=최승현(포화속으로) 여자신인연기상=신현빈(방가?방가!)
-TV부문
대상=현빈(시크릿가든) 작품상=시크릿가든 연출상=이정섭(제빵왕 김탁구)
남자최우수연기상=정보석(자이언트) 여자최우수연기상=한효주(동이)
남자신인연기상=박유천(성균관스캔들) 여자신인연기상=유인나(시크릿가든)
남자예능상=이수근(1박2일) 여자예능상=김원희(놀러와)
백상예술대상 주요부문 수상내역에서 알 수 있듯이, 각종영화제나 방송3사 연말 연기대상 등에서 보였던 공동수상남발이 없다는 게, 백상예술대상의 미덕이자 장점이다. 그만큼 상이 가지는 권위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존중할 줄 안다.
다만 백상예술대상도 공정성시비에선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시크릿가든 하지원이나 재빵왕김탁구 전인화를 밀어내고, 동이 한효주가 여자최우수연기자상을 받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새어나오는 현실이다.
백상예술대상도 시상식을 둘러싼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영화부문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TV부문 수상내역을 살펴보면, 방송3사가 주요부문을 고르게 배정받았음을 알 수 있다. 즉 주최측에서 방송사간의 경쟁과 자존심을 배려한 나머지, 나눠먹기로 간 게 아니냐는 시각을 피할 수 없다. 덕분에 피해는 고스란히 연기자들에게 돌아갔다는 지적이다.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의 아이콘’ 김혜수에서 고현정으로?
시상식에서 100% 공정한 결과를 기대하는 대중은 드물다. 그만큼 시상식에 대한 불신이 오래전부터 자리하고 있다. 때문에 누가 상을 받았느냐 못지않게, 어떤 여배우가 얼마나 파격적인 노출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는가. 시상식에서 어떤 내용의 수상소감을 했는가 등의 부차적인 요소들에 오히려 대중의 흥미가 옮겨가고 있다. 이 날 백상예술대상에서도 홍수아 등 여배우들의 드레스는 이슈가 됐다.
그러나 여배우의 드레스보다 인상깊었던 건, 2부 오프닝무대였다. 신인연기상 후보에 올랐던 박진영이 등장해, ‘드림하이 주제가-청혼가-허니’까지 연달아 불러 분위기를 띄웠다. 시상식의 단골손님이 된 박진영이 청혼가를 부를 땐, “선배님들 모두 일어나세요!”라며 시상식장을 콘서트장으로 바꾸려 애썼다.
박진영의 외침을 한 귀로 흘렸다면, 그는 시상식 최고의 굴욕을 맛봤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앞줄에 앉았던 고현정-하정우를 비롯한 배우들이 일어나서, 박진영의 무대에 박수를 쳐주고 얌전을 넘지 않는 리액션으로 보답했다. 이에 박진영은 객석으로 내려와 한효주-박하선, 그리고 고현정에게 차례로 다가가 쇼맨쉽을 선보였다.
특히 고현정은 손키스를 구사한 박진영에게 손내밀어주는 적극적인 호응을 보여주었다. 청룡영화제 김혜수처럼 박진영과 커플댄스까진 아니었지만, 고현정은 나름의 적극적인 리액션으로 박진영의 기를 한껏 살려주었다. 고현정의 배려가 돋보였다.
사실 김혜수나 고현정만큼 시상식을 즐기는 배우는 흔치 않다. 배우들은 저마다 분위기를 잡고 시상식에 걸맞는(?) 도도함을 유지하려 애를 쓴다. 때문에 시상식이 경직되고 지루한 게 사실이다. 그 틀을 깨기 위해 노력하는 배우가 고현정이다.
고현정은 MBC연기대상에선 이휘재에게 ‘미친 거 아냐?’로, 지난 해 SBS연기대상 수상소감에서는 표현이 경솔했다는 비판여론에 휘말려 적잖은 논란을 낳았다. 그러나 고현정이 시상식에서 보여준 논란들은, 시상식이 고집했던 천편일률적인 분위기에 대한 일종에 개선노력으로 볼 수 있었다. 고현정의 액션에 덜 익숙한 관계자나 시청자로선 불만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녀의 의도를 이해하고 볼 필요가 있다.
현재 국내시상식은 여전히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형식은 공동수상 남발과 나눠먹기로 이어진다. 때문에 매번 공정성시비를 겪고 상이 주는 권위도 그만큼 상실하고 있다. 그걸 깨기 위해선 시상식이 즐기는 분위기로 가야 한다. 누가 받더라도 이해하고 축하해주는 축제분위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심사하는 입장에서도 부담을 덜고, 보다 공정한 잣대를 취할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이 마련된다.
그동안 시상식의 아이콘은 김혜수였다. 그녀의 파격적인 노출드레스도 시선을 끌었지만, 뒷받침한 자신감과 당당함이 돋보였다. 그리고 김혜수에서 고현정으로 넘어가면서 좀 더 진화했다. 고현정은 드레스가 아니라 시상식이 갖는 경직과 무거움을 벗기고 즐길 줄 알기 때문이다. 작은 부분에서 변화는 시작된다. 고현정처럼 즐길 줄 아는 배우들이 시상식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그녀를 응원하는 대중이 늘어나야, 여전히 형식과 이해에 얽매여 납득하기 힘든 결과를 양산하며 퇴보를 거듭하는 국내시상식이 실질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