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자격, 리얼 함정에 빠진 이유?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이 지난 2주간 보여줬던 24시간 무인도체험 ‘살아서 돌아오라’는 시청자의 혹평을 받았다. 도대체 왜 무인도에 갔는지 알 수 없다는 평이 줄을 이었다. 불을 지필 수 있는 성냥에,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라면과 통닭에, 모닝커피까지 제공했으니, 무인도체험이 아니라 섬에서 짝퉁 1박2일 찍었다는 비판이 나올 만도 하다.
사실 24시간 동안 무인도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봐야 한다. 나이 50세에 이경규를 비롯한 중년남자들이, 일주일도 아니고 1박2일 동안 배를 만들 것인가. 토끼사냥을 할 수 있었겠나. 천막치고 버티기만해도 성공이다. 그러나 시청자는 다르다. 왜 그들이 무인도체험을 하게 됐는지 그 목적을 알고 싶은 것이다. 목적이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멤버들의 무기력과 나태함만 두드러지게 보이고 시청자는 지루함을 느낀다.
남자의자격, 리얼 함정에 빠진 이유?
시청자는 캐스트어웨이의 톰행크스를 바라는 게 아니다. 그래도 멤버들이 무인도에서 생존을 위해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아보고 무언가를 통해 새로운 걸 시도하고 애쓰는 노력을 보고 싶은 것이다. 다행히 젊은 이정진이 그나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야생토끼라도 발견했고, 새멤버 양준혁이 쓸모없다고 생각한 김국진의 봉을 냄비에 이용하는 등의 수확이 있었다.
반면 ‘살아서 돌라오라’는 주제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도, 무인도의 낭만에 빠진 김태원은 기타를 쳤고 김국진-이윤석은 노래를 따라 불렀다. 또한 유일한 여자였던 정경미를 무인도 도착과 동시에 집으로 돌려보내 ‘여자는 짐이다?’식으로 몰아간 것도 아쉬웠다. 덕분에 윤형빈은 이경규의 수발에 올인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경규는 깨달았을 것이다. 무인도에 데려가야 할 1순위는 낚시대나 핸드폰이 아닌 윤형빈이란 것을. 그러나 권위와 서열, 나태함이 부각된 리더 이경규는 시청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남자의자격에 멤버들만 놓고 보면, 무인도편에서 보였던 그들의 행동은 리얼의 끝을 달린 셈이다. 신원호PD가 강조하는 ‘꾸미지 말고 있는 그대를 보여주자.’에 충실했다. 카메라가 있건 없건, 1박2일 동안 무인도에 갇힌다면 무언가를 하려고도 할 수도 없었을 그들은, 아마도 비슷한 행동패턴을 보였을 테니까. 갈수록 리얼이란 함정에 빠진 남격의 모습이 무인도편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그럼에도 시청자는 비판을 쏟아냈다.
남자의자격 제작진이 무인도 미션에서 얘기하고 싶었던 건 시작에 있었다. 2년전 남격이 시작할 때 멤버들에게 물었다. ‘무인도에 가져가고 싶은 것 3가지는?’ 그 때 당시 이경규는 핸드폰-낚시대-일기장을, 김태원은 기타-텔레비전-술, 이윤석은 책-책갈피-도서상품권을, 윤형빈은 정경미-정경미 가방-정경미 강아지를 꼽았다. 다른 멤버들도 무인도에서의 생존과는 거리가 먼 것들을 세가지로 제시했다.
즉 이상(생각)과 현실은 다르다를 보여주고 싶었던 게 첫째고, 둘째는 그들이 꼽았던 세가지를 무인도에서 어떻게든 써먹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제작진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하고 2시간마다 소원을 들어주는 식으로 개입하면서, 멤버들의 무인도 체험은 무의미해졌다. 무인도란 자연에, 가공음식 라면과 치킨이 반입되면서 미션도 변질된 것이다. 그들이 찾았던 곳은 지하철 2호선 뚝섬역 길바닥과 다를 바 없었고 제작진은 편의점이 되었다.
제작진이 가장 염두해야 할 것은 신선한 아이템뿐이 아니다. 아이템을 고른 이유와 목적이 시청자에게 잘 드러나도록 개괄적인 단계를 제시하며, 멤버들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게끔 유도해야 한다. 그들의 행동을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말이다. 아이템만 툭 던지고 리얼을 강조하다 얻어 걸리기를 바라면 곤란하다. 시청자가 거부감을 느끼는 무기력과 나태함이 드러나면 남격의 수명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제작진뿐 아니다. 리더 이경규도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작년에 이경규는 모든 미션에서 솔선수범하며 맏형으로서 동생들을 자극하고 이끌었다. 뭘 하자가 아니라. 스스로 뭘 해보였다. 덕분에 동생들도 이경규를 따라 열심히 미션에 임했던 것이다. 올해 탭댄스편이나 라면의 달인편에서 이경규는 최선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반면 무인도편과 귀농일기에선 의욕이 떨어져 보였다. 즉 이경규가 적극적이면 동생들도 적극적이 되고, 이경규가 나태해지면 동생들도 도미노처럼 나태해진다. 때문에 남격은 누구보다 리더 이경규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남자의자격이 배낭여행을 2주간 떠난다. 유럽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배낭여행에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여행의 목적과 그 목적을 빛나게 하는 수단이 시청자에 공감을 살 수 있도록 뚜렷하게 드러나야 한다. 제작진이 강조하는 리얼보다 중요한 건, 그 리얼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구현하도록 제작진이 준비해야 할 과정의 셋팅이다. 런닝맨도 만만치 않은데, 나는 가수다라는 쓰나미까지 덮쳤다. 지금 남격에게 새멤버 전현무가 우선일까. 평이한 ‘리얼’보다는 뚜렷한 ‘목적’과 뜨거운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