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연예

이경규, 개그계의 대부아닌 졸부되나

바람을가르다 2009. 8. 6. 06:23

개그계의 대부 이경규에 대한 위기설이 작년 한 해 동안 수시로 꾸준히 제기되었다. 그러나 올 상반기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를 통해 재도약의 발판을 다진 그는 최근 <절친노트2>에 합류하며 또 다시 굳건한 건재를 과시한다. 언뜻 보면 지난해 위기설은 말그대로 설일 뿐, 이경규에게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기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진위가 가려지고 대처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분명 비가 내렸다. 예전보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이경규에겐 새우산이 필요했지만, 그는 전에 있던 우산을 버리지 못했다. 낡고 찢어진 우산을 대충 수선한 채 다시금 들고 서 있다가, 빗줄기가 약해지자 우산을 팽개친다. 



지난 주 방영된 <남자의 자격 자전거 여행 편>을 보면, 그 좋은 아이템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기 위해 페달을 밟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변덕스런 버라이어티는 처음 본다. 격주마다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경규가 있다. 방송에서 이경규가 멤버들과 합심해 의욕적으로 동참하면, 그 주에 <남자의 자격>은 시청률이 상승한다. 그러나 그가 녹화도중 지나친 짜증과 함께 언성을 높일때면, <패떴>에 짓눌린 얼마 안 되는 시청률마저 추락한다.


<남자의 자격>이란 프로그램은 중년남자들의 무한도전이 아닌, 짜증과 불만을 표방했던 것은 아닌 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어떻게 온가족이 지켜보는 일요일 저녁 예능프로그램 60분의 반 이상이 그들의 불만과 짜증으로 채워질 수 있는가? 특히나 리더라고 볼 수 있는 이경규가 앞장서서 짜증을 내면 어쩌자는 것인가? 리더라면 멤버들의 갈등을 봉합하고 조율하는 데 힘을 써도 못자람에도, 오히려 멤버들을 부추긴다. 시청자는 안중에도 없고, 제작진이 이경규의 안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동시에 이경규는 참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도 스친다. 만약 이경규 혼자 불만을 내뱉고 있었다면 난감해하는 후배들로 인해 녹화장 분위기는 다운되고, 시청자의 비난도 이경규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경규가 짜증을 내자, 후배들이 한목소리로 불만과 짜증에 동참하여 그에 대한 지원사격에 나선다. 이경규 혼자 독박을 쓰게 될까 멤버들이 십시일반으로 시청자의 비난을 감수할 듯이 이경규를 보호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인가? 여하튼 착한 후배들의 도움으로 완벽한 불만 짜증 버라이어티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제작진과 출연진은 모든 게 컨셉이고, 캐릭터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캐릭터로 바라보기엔 짜증의 강도가 세고 리얼하게, 매회 반복 재생산된다. 내가 본 최고의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리얼 짜증 버라이어티. 리얼 불만 버라이어티. 녹화가 끝난 뒤 그들끼리 모여 화기애애한 회식자리를 갖는다해도 그것은 프로그램과 별개다. 시청자는 오직 브라운관속에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기억한다.


<남자의 자격>엔 병풍이 많은가?

 

이경규는 카메라를 독점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이로 인해, 다른 멤버들은 병풍이 될 수 밖에 없. <남자의 자격>에 출연중인 멤버는 7명이다. 밥그릇은 일곱 개다. 각자 본인의 양에 맞게 밥그릇에 밥을 담으면 된다. 문제는 이경규가 숟가락을 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리더인 이경규가 일일이 숟가락을 놓아주려 든다. 멤버들이 알아서 떠먹게 미리미리 숟가락을 놓아주면 그만인 것을, 파트너가 수저질이 서툴다해서 밥상이 더러워질까봐 일일이 떠먹여주려 한다. 코흘리개가 밥상 좀 더럽히면 어떤가? 피디가 알아서 편집이란 청소를 할 텐데. 자신의 마음에 안 들면 숟가락을 줬다 뺐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멤버들간에 자연스럽게 액션과 리액션을 통해 치고 빠질 수 있는 공간을 이경규란 통로로 한정짓고, 인위적으로 이경규가 리액션의 상대를 미리 선점해 버린다. 90%를 김태원, 김성민과 나눠 먹는다. 당연히 소외되는 다른 멤버들은 병풍이 될 수 밖에 없다. 리더로서 자격 박탈이다. 멤버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진 못할망정 프로그램내에서 또 다른 규라인을 만들어버리는 그의 태도에 웃음은 뒷전이고 눈살이 찌푸려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식이라면 <남자의 자격>에 왜 일곱 명이 필요한가? 이경규, 김태원, 김성민. 단 세 명으로 꾸릴 수 있는 것 아닌가. 쓸데없는 제작비를 낭비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경쟁이 부르는 지나친 욕심은 언젠가 본인의 폐부를 향하는 창끝이 될 수 있다.

오십줄에 들어선 이경규가 후배들과 어울리며 경쟁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지만 않는 이유는, 바로 자신만 살려는 데 있다. 본인의 능력만을 부각시키려 들면 반짝 재미는 줄지 몰라도 프로그램은 묻히고, 멤버들은 기회를 잃는다. 폐지가 되도 이경규는 제몫을 했다는 평가와 함께 다른 프로그램으로 쉽게 둥지를 트지만, 다른 멤버들은 밥줄은 둘째치고, 자신감을 잃은 채 좌절을 맛볼 수 밖에 없다.


예능계의 대부이자 선배 이경규는 후배들에게 좀 더 따뜻한 관용의 미덕을 보여줄 순 없나?

프로그램에 꽂아주는 것이 선배의 몫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후배들의 재능을 이끌어 내기 위해 인내하고, 기꺼이 스펀지가 되어줄 수 있는 선배가 빛나는 것이다 


왜 멤버들속에 자신을 맞추지 못하고
, 멤버들이 자신에게 맞춰주길 바라는가. 차라리 이경규가 없었다면 <남자의 자격>은 지금보다 훨씬 더 훈훈하고 재미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도 이경규의 분량을 줄여야 프로그램이 산다. 그가 짜증을 부리지 않아야, 멤버들이 아무리 힘들고 지치는 상황이 오더라도 즐겁게 방송에 임하려 들 것이.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이경규가 스스로를 낮추고, 욕심을 버려야 함께하는 멤버들이 기를 펴고, 병풍에서 벗어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일곱 명이 서로에게 의지하고 발전을 도모하며 프로그램이 길게 가는 길을 모색해야 마땅한 시점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멤버들을 독려해 할 사람이 바로 이경규다



<남자의 자격>과 같은 리얼버라이어티에선 멤버간의 호흡이 중요하다. 인위적인 설정과 상하관계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동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동시에 경쟁보다는 조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조화를 위해 리더가 필요한 것이다. 좋은 리더는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안다. 조화를 바탕으로 선의의 경쟁을 도모할 줄 안다. 유재석과 강호동만 봐도, 형제프로인 해피선데이의 <12>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경규 본인이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경규는 방송MC외에도 영화제작자 및 치킨사업의 CEO 등 여러 명함을 가졌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가 방송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상한 건 그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방송에서 보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어떻게든 녹화시간을 줄여보려 다른 출연자들의 입을 막고, 구박하고, 녹화가 길어지면 피곤과 짜증이 얼굴에 가득하다. 정말 행복한 거 맞냐고 되묻고 싶다. 설사 본인이 행복했다고 치자, 같이 출연한 출연진들도 그와 방송을 하면서 행복했을까. 그의 독선적인 진행스타일에 얼마나 많은 시청자가 공감을 표시할까. 방송은 개인의 행복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경규는 어느 시점부터 캐릭터를 떠나, 자신의 기분에 따라 방송에 임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왔다. 방송경력 30년의 진정한 프로의 자세라고 볼 수 없다. 더군다나 지나친 자신감으로 자신의 본능을 고집하며, 자기만의 철학을 내세우기 위해 귀를 닫아 버린 듯한 모습. 지금은 그를 위해 수발을 들어줄 후배가 아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진정한 규라인이 절실해 보인다. 개그계의 대부가 아닌 졸부가 되어가는 듯한 이경규를 바라보며, 그의 오랜 팬으로서 씁쓸함을 넘어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