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강호동-엄태웅' 러브라인-제작진의 착각?
울릉도로 떠난 해피선데이 <1박2일>. 멤버들은 힘을 모아 눈사람도 만들고, 한치를 재료로 식객도 찍었다. 시작과 끝에선 아름다운 울릉도 주변경관을 보여주었다. 1박2일스러운 장면들의 연속이었음에도 재미는 신통치 않았다. 마치 아침에 억지스럽게 일어나 졸린 눈을 비벼가며 울릉도를 대표하는 오징어를 씹었을 때, 물에 불린 오징어는 아무 맛도 안 난다며 투덜거렸던 이수근의 말처럼. 왜?
멤버들이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불려 나와 물건배달레이스를 시작하고, 배멀미를 해가며 울릉도에 도착해선, 등산코스에 가까운 등대까지 달리기를 해야 했다. 힘이 들 수밖에 없다.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선 뭘 해도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 힘들어 하는 멤버들에게 '재밌게 놀아봐!'라고 한다면, 잘 놀 수 있겠나. 실질적으로 여행이 아니라 일이고 개고생에 불과하다. 덕분에 멤버들은 평소보다 의욕이 떨어져 보였고 시청자도 편하지 않았다.
어떤 장소를 찾고 어떤 게임을 준비하는 것에 앞서, 1박2일 제작진이 가장 염두해야 할 것은, 바로 멤버들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몸상태를 최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들이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홈런타자라고 매번 홈런치는 것이 아니다. 체력이 고갈되고 컨디션이 난조면 천하의 이승엽도 슬럼프를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박2일, '강호동-엄태웅' 러브라인-제작진의 착각?
리얼버라이어티에서 가장 날로 먹는 아이템 중에 하나가 아이돌을 불러다가 억지스럽게 맺어주는 러브라인이다. 얼마나 분량뽑을 게 없었으면, 1박2일에 러브라인이 다 등장했을까 싶을 정도였다. 엄태웅과 강호동이 그렇고, 이승기까지 엮을 기회를 엿보는 듯하다.
이수근은 엄코 엄태웅을 호동빠라고 놀렸다. 그러나 새멤버 엄태웅은 호동빠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제 두 번째 출연이다, 당분간은 1박2일의 리더이자 맏형 강호동을 의지하는 게 당연하다. 엄태웅이 아닌, 누구라도 새멤버는 아마도 호동빠를 자처했을 것이다.
이를 두고 제작진은 원래 이승기를 더 좋아하지 않았냐고 은근히 삼각관계를 부추겼고, 급기야 기상미션에선 가장 먼저 일어나 오징어를 굽는 엄태웅과 자고 있는 강호동을 오버랩해가며, 이성에게 프로포즈하기 좋은 노래 이적의 '다행이다'까지 BGM으로 깔아주었다. 엄태웅은 단지 전날 밤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오징어를 구웠을 뿐인데, 제작진에 의해 그는 강호동을 위해 오징어를 굽는 새댁이 되고 말았다.
엄태웅이 열렬한 호동빠라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것도 적당히 했으면 안성맞춤 재미를 줄 수 있었지만, 기상미션에서까지 두 사람을 사랑과 우정사이에 빠뜨리고 BGM까지 닭살돋게 삽입한 것은 제작진이 너무 나간 게 아닐까 싶다. 게다가 엄태웅은 순둥이 호동빠가 아닌, 앞으로 강호동과 맞설 수 있는 넘버2로 기대하는 시청자도 많기 때문이다.
물론 강호동-엄태웅의 기묘한 러브라인이 웃음을 준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바꿔 말해, 다른 재미를 주지 못했다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그 원인은 초반에 멤버들의 체력을 고갈시켰기 때문이다. 차로 배로 긴 시간을 가야 하는 울릉도로 장소를 정했으면, 달리기나 등산같은 체력이 소모되는 시합은 배제하는 게 정석이다.
1박2일의 재미는 스케일이 크고 작음에서 나오지 않는다. 멤버들이 얼마나 즐겁고 의욕적으로 참여하느냐에 있다. 거기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소소하고 지나치기 쉬운 부분에서도 웃음을 제조했던 비법이었다. 1박2일 멤버들은 예능선수들이다. 정신력으로 웃음을 뽑던 시기는 지났다. 나영석PD가 고려해야 할 것은, 그들이 즐겁게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체력적인 안배를 해주고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것이지, 옷에 맞지 않는 억지스런 러브라인을 심어가며 말장난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