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연예

엄친딸 '구혜선', 네멋대로 해라!

바람을가르다 2009. 7. 25. 15:25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히로인 혜선은 이달 초 서울 인사동 모 갤러리에서 '탱고'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열었다. '탱고'는 그녀가 출간한 소설책의 제목으로,  전시된 그림들은 '탱고'에 일러스트로 삽입된 작품 50여 점이다. 연기자도 모자라 소설가에 화가라는 별칭까지 얻게된 그녀가 이번엔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를 통해 감독으로 신고식을 치뤘다. ‘유쾌한 도우미라는 단편영화를 출품한 그녀앞에 감독 구혜선이란 또 다른 수식어가 붙는 동시에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진화된 프로필을 얻은 것이다.

 

인터넷얼짱출신으로 가수를 꿈꾸며 YG엔터테인먼트에 둥지를 튼 그녀는, 어찌보면 치열한 연예계에 외모라는 무기만을 앞세워 무혈입성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가수가 아닌 MBC시트콤 <논스톱>을 통해 브라운관에 첫발을 딛은 구혜선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냉담했다. 연예인들사이에선 더 이상 얼짱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신인탤런트에 불과했으며, 연기면에서도 별다른 장점을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과 나>, <최강칠우>로 소리없는 시동을 걸고 난 뒤, KBS일일드라마 <열아홉순정>을 통해 조선족출신의 어리버리한 아가씨 역할을 무난함 이상으로 소화하면서 진일보한 연기를 선보인다. 동시에 드라마의 오프닝 곡을  맛깔나게 불렀다는 사실은, 만능엔터테이너 구혜선의 자질을 엿보게 한다. 이어 <꽃보다 남자>를 통해 다시 한번 비상한 그녀. 이 정도면 연기자
구혜선을 인정해야 한다. 적어도 또래 연기자들에 비해 한두 발짝 앞선 연기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그녀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

혹시나 그녀가 다재다능한 엄친딸이기 때문일까?

 

연기자 구혜선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그녀는, 자작곡이 가능한 싱어송라이터의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전시회를 열 정도의 회화실력과 소설책을 써 낸 작가. 그것도 모자라 영화감독으로 데뷔까지 했으니, 이쯤되면 대중들이 생각하는 그녀의 정체성에 물음표는 당연하다. 혹여, 인기연예인이란 브랜드를 이용해 이것저것 일을 벌이며 괜한 겉멋에 빠진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이내 어설픈 실력으로 학예회는 때려치고, '연기자라면 연기력이나 키울 생각이나 해라' 정도에 충고이상의 비난으로 변질된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자질을 둘러 싼 비판의 배경속엔 간과한 사실이 있다.

바로 구혜선이 젊다는 사실이다.

 

젊다는 게 뭔가?

젊다의 사전적 의미는 나이가 적고 혈기가 왕성하다이다
젊은 나이에 뿜어낼 수 있는 넘치는 기운을 발산중인 그녀를 삐딱하게 볼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해야한다. 하지 말아야 할 것도 해볼 수 있는 게 젊음의 기운이다.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면, 젊었을 땐 뭐든지 경험하는 것이 좋다. 실력과 자질이 부족하다 해서, 실패와 좌절이 두렵다고 해서 머뭇거리기 보단, 상처를 받더라도 부딪히고 뛰어들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한 청춘이다. 단순히 멋지다가 아니라, 그것은 당연한 권리이며 정당한 자기표현인 것이다.



 

내가 아니면 나의 가능성을 실제로 밝혀줄 사람은 없다.

내가 아니면 나의 꿈을 이뤄줄 사람도 없다.

내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은, 나를 통해서 구현된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해야봐야지, 물음표가 느낌표가 된다.

엄친딸이든 보통딸이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자신의 꿈을, 구혜선은 젊음을 바탕으로 하나씩 실현에 옮기고 있다. 젊음을 무작정 소비하는 것이 아닌, 적어도 자신을 위해 효율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구혜선이 감독이 되든, 노래를 하든, 그림을 그리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관심을 끄거나 지켜보거나 둘 중 하나면 된다. 그녀 걱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녀의 당찬 도전에 실력과 자질을 운운하며, 쓰잘데기 없는 꼬투리를 잡는 것은 시기와 질투가 아니라면, 이해할 수가 없다.  


그녀를 비판하던 사람들은
, 그 이전에 자신을 돌아보는 건 어떨까?
자신의 거울을 통해 '나도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너는 안 돼'라고 말하는 사람으로 나뉠 것이다. 자신이 전자가 될 수 없다해서, 후자의 시각으로 남을 비판하려 드는 촌스러움따윈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