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왜 리얼 배신인가?
23일 방송된 해피선데이 <1박2일>은 강원도 홍천으로 산장여행을 떠났다. 이 과정에서 제작진은 멤버들에게 잠자리복불복과 직결되는 미션을 주었다. 각 멤버에게 주어진 위태로운 물건들을 안전하게 베이스캠프까지 옮기는 것으로, 레이스의 우승자가 영하20도에 육박하는 한겨울에 야외취침을 하게 될 2인을 뽑는 권한을 갖게 된다. 일명 '물건배달레이스'
지난 외국인근로자특집에서 거론됐던 '가학성논란' 뜨거운 커피 빨리 마시기를 의식한 듯, 제작진은 자판기커피를 빨리 마시기가 아니라 빨리 가져오는 순서대로 물건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제작진이 시청자의견을 존중하고 프로그램에 반영하겠다는 메시지로 볼 수 있었다.
커피를 가져온 순서에 따라, 이수근-흰 운동화, 이승기-퍼즐, 강호동-날달걀, 은지원-물, 김종민-불붙은 양초를 배정받았다. 이어 나영석PD는 물건배달레이스에선 서로간에 방해를 용인하겠다고 밝혔다. 덕분에 시작하자마자 이수근에 입김에 의해 김종민의 촛불은 한방에 훅 갔다. 치열한 경쟁과 방해, 그리고 차가운 배신을 예고하며 여행은 시작됐다.
1박2일, 왜 리얼배신인가?
초반부터 물건을 지키지 못해 쩌리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김종민. 때문에 맏형 강호동은 김종민에게 동맹을 제안하며 이번 미션에서 가장 중요한 키를 부여한다. 멤버들을 방해할 중심 멤버로 그를 내세운 것이다. 다른 멤버들의 물건을 합심해서 망가뜨리고 자신의 달걀만 지켜준다면, 강호동이 김종민을 실내취침하도록 배려해주겠다는 것이다. 강호동-김종민 동맹결성.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는 법.' 촛불은 꺼지고 물건은 잃었으나 덕분에 김종민은 강호동의 선택을 받았고 분량확보는 물론 이번 미션의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올라선다. 그리고 강호동의 은밀한(?) 지원속에 김종민은 종횡무진 활약하며 물건배달레이스를 망친 주범이 되었다.
레이스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장소는 휴게소였다. 각자의 차량을 타고 떠났기 때문에 그들이 모두 모이는 중간에 휴게소는 훼방을 놓기에 가장 적당하고 실질적인 레이스의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었다. 때문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휴게소. 오직 느긋한 사람은 용돈 만원을 건네주는 나영석PD뿐이었다.
이수근은 운동화의 안전(?)을 위해 테이프로 운동화를 감아버렸다. 그러나 강호동은 힘으로 그의 운동화를 벗겼고, 김종민을 불러 운동화에 라면국물 투하를 성공시켰다. 그러나 곧바로 김종민의 배신이 이어졌다. 라면에 강호동의 분신같은 달걀을 깨뜨려 넣은 것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배신이다. 어리버리한 김종민에게 눈뜨고 코베인 강호동은 분노했다. '김종민은 예능을 잘못 배웠다!'라고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강호동의 말은 틀렸다. 라면과 달걀은 궁합이 너무 좋다. 더 극적인 상황에 달걀을 깨면 좋았겠지만, 라면에 달걀이라면 강호동의 '예능의정석'에 나올법하다. 김종민이 잘못 배웠다면, 강호동에게 잘못 배운 것이다. 즉 눈에 보이긴 했지만 타이밍으로 볼 때 적절한 배신이었고 라면에 달걀상륙작전은 성공적이었다.
한편 은지원은 이승기를 속이고 동맹을 제안했다. 아무리 순진해도 강호동이라면 믿지 않았을 이승기지만 은지원이기 때문에 철썩같이 믿었다. 그러나 은지원은 이승기를 배신하고 떠났다. 그 시각 강호동은 이수근과 코미디언라인을 급개설하고, 이승기의 퍼즐을 망가뜨렸다. 이승기의 '우리즐이'가 산산조각났다. 이승기가 대단한 건 그 퍼즐조각을 또 모아서 다시 맞추는 집요할 정도의 정성에 있다.
혼자서 분량을 뽑는 이승기의 예능감을 돋보였다. 시청자에게 끝까지 안심하지 못하는 만드는 집요함. 퍼즐이 완성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에 대한 기대감을 끝까지 주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반전의 카드를 쥐게 될까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이승기의 반전이 일어났다. 퍼즐조각이 모자랐던 것. 주도면밀하게 퍼즐을 완성시켜 나갔지만 퍼즐조각을 모두 챙기지 못했고, 빈자리는 펜으로 그려 넣는 코미디. 역시나 허당 이승기스러웠고 허당스러운 결말을 낳았지만 부족함이 없는 재미를 선사했다.
무혈입성한 은지원을 막으라는 강호동의 반협박에 김종민은 끝까지 은지원을 물고 늘어졌고, 그 틈을 타 이수근은 강호동의 지극정성으로 부활한 운동화를 신고 물건배달레이스의 최종우승자가 되었다. 그리고 야외취침할 2인이 이수근의 입에서 나오기까지 배신은 계속될 것이다.
이번 레이스는 동맹과 배신이 난무했다. 그러나 1박2일에서 동맹이란 날계란처럼 깨지기 쉬운 것. 무모한 선택이란 걸 그들도 알고 시청자도 안다. 멤버들의 모토인 '나만 아니면 돼!'와 상극이기 때문이다. 멤버들에겐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즉 동맹은 깨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어느 타이밍에서 깨지느냐에 있을 뿐이다.
근데 종종 이를 놓고 누가 동맹을 깨고, 누가 방해를 했다는 식으로 안 좋게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예능에서 동맹과 배신이 없으면 실질적으로 재미를 만들 수가 없다. 훼방없이 운전만 잘 해서 1등으로 도착하는 멤버가 나오면 레이스가 재밌을까.
또한 리얼예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캐릭터다. 강호동이 본인 캐릭터대로 김종민을 협박하지 않고 은지원이 밋밋한 1등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면 어땠을까. 그것은 강호동의 캐릭터도 아닐 뿐더러, 강호동이란 캐릭터가 1박2일에 필요가 없어진다. 물론 김종민이 시간끌기가 능숙하지 못했기 때문도 있었으나 그것도 역시 그 상황에서 나오는 김종민의 리얼이다. 김종민에게 강호동이나 이수근의 예능감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오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리얼예능이 리얼하기를 바라면서, 완벽하거나 반대로 부실하면 조작 혹은 억지라고 날선 평을 한다. 완벽한 것도 부실한 것도 억지스럽고 밋밋한 것도 알고 보면 모두 리얼이다. 상황에 따라 또는 상대방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액션과 리액션이 나오는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면 답이 있다. 우리의 모습속에 완벽할 때도 억지스러울 때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방을 웃기게 하려는 우리의 말과 행동엔 더욱 말이다. 사람은 때때로 강호동같은 장난스런 협박도, 김종민처럼 눈치코치없이 어리버리한 행동도, 이승기처럼 순둥이처럼 참거나 은지원처럼 화를 내기도 이수근처럼 계산적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방송 원투데이보는 것도 아니고, 때때로 자신이 기대했던 그림과 어긋날 수는 있다. 다만 전부가 아닌 일부가 어긋났다면 이승기가 못다 맞춘 퍼즐처럼, 부족한 부분은 시청자가 그려넣고 메꿔줄 수 있는 아량도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