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의여왕, 드라마의 공식 깬 황데렐라
17일 방송된 <역전의여왕> 27회에서는, 남자의 눈물 2종세트로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초반엔 친어머니(유혜리)를 처음 본 구용식(박시후)의 폭풍오열이 있었고. 후반엔 암에 걸려 시한부인생을 사는 기러기아빠 목부장(김창완)이 그의 생일날 황태희(김남주)에게 가족에게 남길 유언을 전하며 소나기눈물에 동참했다.
그럼에도 시청자를 가장 설레게도, 안타깝게도 만든 건 역시나 구용식-황태희 커플이었다. 게다가 남자의 눈물 2종세트를 삼켜버릴 정도로, 병원에서 흘린 황태희의 한줄기 눈물포스는 강렬했다. 용식이 엄마가 뇌종양수술을 받는 병원을 태희가 몰래 찾아갔다가, 용식과 마주쳤던 것. 순간 당황한 태희가 정신차릴 여유도 주지 않은 채, 차도남 용식은 너무나도 차갑게 말했다. ‘더 이상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겠다.’
싸늘한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진 용식이때문에 그 앞에서 강한 척 쿨한 척 온갖 척 다했던 태희는 홀로 눈물을 흘렸다. 귀찮게 해도 되는데, 정말 귀찮게 해도 되는데 표현할 방법이 없는 태희. 용식이가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겠다는 건 태희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겠다는 말. 진심을 몰라주는 용식이 때문에 황태희의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브라운관을 뚫고 나올 정도.
드라마 여주인공의 공식 깬 황데렐라
용식이는 지난 26회 마지막 장면때문에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황태희가 전남편 봉준수(정준호)에게 기대어 폭풍눈물을 흘렸던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친엄마를 혼자 만나러 가기가 두렵다며 함께 가줄 수 있겠냐고 태희에게 물었고, 태희가 차갑게 거절했기 때문에 용식은 한 대 얻어터진 듯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다시 태희를 설득하려 엘리베이터로 달려갔으나, 전남편과 눈물드라마를 찍는 태희를 보고 있자니 용식으로선 오해수준을 넘어 성난 파도처럼 분노가 치밀 수밖에 없었다.
사실 태희의 눈물은 전적으로 용식이 때문이었다. 용식이랑 병원에 함께 가고 싶었지만 자꾸 용식이랑 회사에서 사적으로 어울리다 보면, 한상무(하유미)-구용철(유태웅)의 덫에 빠지게 될 것이고, 용식이가 위기에 처할 것임을 알고 있는 태희로선 불가피한 거절이었다. 즉 작가를 욕해야지, 태희를 욕할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용식이는 태희가 여전히 봉준수를 잊지 못해 재결합할 생각중이구나라고 판단한다.
상황이 이렇게 꼬인 이상 누군가가 이 오해의 사슬을 풀어줘야 한다. 오해한 용식이든, 회사동료들이든 말이다. 목부장이 오해를 풀어줄듯이 용식에게 넌지시 황태희가 기획개발팀에 가게 된 이유를 아냐고 물었다. 왜 갔냐고 반문하는 용식에게 자기도 몰라서 묻는 거라며 얼렁뚱땅 넘어갈 정도니, 어디선가 하루종일 용식앓이중인 황태희도 답답한 지경에 이를 만하다.
결국 드라마의 금기라 할 수 있는 여주인공이 오해를 풀기 위해 직접 칼을 뽑는 대반전(?)이 이뤄졌다. 27회 마지막에서 황태희는 오해로 똘똘 뭉친 구용식에게 사랑한다는 말만 빼고 솔직하게 모든 걸 털어놨다. 내가 지금껏 보여 온 모든 행동의 시발점은 ‘다 용식이 때문이었다!’. 용식이가 상처받고 아파할까봐 지금까지 쌀쌀하게 대했던 것이니, 이별태도를 거두고 날 다시 귀찮게 해달라는 은연중에 속내를 비치고 만 것이다.
결국 황태희 본인의 자존심도, 수많은 드라마 속 신데렐라들의 자존심도 모두 팔아 해치운 황데렐라. 지금의 황태희는 온리유 구용식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깔끔하게 오해가 정리된 구용식은 그의 주특기 황태희 벽에 밀치고 키스할 각도잡기에 들어갔다. 당장 키스를 해버리겠다는 구용식의 눈빛만으로도 무장해제당한 황태희. 그러나 정작 키스는 숨죽이던 시청자를 약올리듯 다음으로 미룬 채, ‘우린 둘 다 미쳤어.’의 뭔가 부족한 2% 음료광고로 마무리지었다.
26회의 오해는 27회의 마지막에, 용식앓이를 견디지 못한 황태희가 고백하면서 해결된 셈이다. 그동안 황태희가 지켜왔던 신데렐라 포스도 집어 던지며 건진 사랑이다. 드라마 속 재벌2세 왕자에게 늘 당당하다 못해 반항하는 신데렐라를 쫓으면서도, 오해로 인해 아파하지만 왕자가 오해를 풀어줄 때까지 힘겹게 기다리는 신데렐라의 정석코스를 밟지 않은 황태희. 직접 본인이 나서서 해결하는 황데델라 코스를 뚫은 것이다.
이 수순은 27회 초반에 예고됐다고 볼 수 있다. 태희모(박정수)와 태희동생(한여운)이 구용식이 퀸즈회장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게 된 후, 태희동생이 황태희가 신데렐라가 될 수 있다고 방방 뜬다. 이에 태희모는 그런 일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하다며 미쳤다고 회장아들이 애딸린 이혼녀에게 목메냐고 핀잔을 준다. 그러나 마지막에 반전이 일어났다. 드라마에서 늘 있어 왔던 오해로 인한 위기의 신데렐라는 왕자가 손을 내밀기전엔 무조건 기다린다는 공식을, 닮고 싶지 않은 역전 신데렐라 황태희가 눈 딱 감고 깨부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