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의 ‘무릎팍도사’를 해부하다
황금어장의 간판코너에서 어느 덧 토크쇼의 랜드마크가 되버린 <무릎팍도사>. 연예인을 비롯, 사회각계에 명망있는 인물들을 불러 앉혀 그들이 살아온 인생의 단면을 토크로 풀어내는 프로그램으로, 구색은 기존의 여타 토크쇼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아주 큰 차이점이 있다. 소위 스타라는 이름아래 감투를 쓴 사람들을, 단 삼십분안에 일반인으로 둔갑시키는 재주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무릎팍도사 강호동이 있다.
출연한 게스트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강호동앞에선 이상하리 만큼 솔직해진다고 말한다. 뭐에 홀린 것 마냥, 하지 말았어야 할 얘기들까지 쏟아내게 된다고.
사실 강호동이 기존 토크쇼의 진행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입담이 아니다.
바로 기선제압이다.
초반에 상대를 압도할 줄 아는 힘을 가졌다.
의례적인 듯 보이나, 출연한 게스트를 번쩍 안아서 자리에 앉히는 강호동의 퍼포먼스속에는 상대를 주눅들게 하는 기선제압의 의미가 담겨있다. 마치 힘으로 당신을 들었다놓은 것처럼, 프로그램을 통해 입심으로 게스트를 들었다 놓겠다는 복선이 깔려 있다. 상대가 스튜디오 카메라에 적응하기도 전에, 시베리아 호랑이 마냥 얼굴을 들이밀고 목소리를 높여가며 이빨을 드러내는 무릎팍도사. 일련의 우스꽝스러운 퍼스먼스에 시청자는 웃고 있지만, 우왁스럽고 낯선 강호동의 모습에 맞은 편 게스트는 긴장하게 되있다. 이어 시청자의 호기심을 불러올 만한 게스트의 이슈 거리를 살짝 잽으로 던지면, 사실상 강호동의 역할은 끝이 난다.
모든 취재가 그러하듯, 인터뷰어(Interviewer)는 하나라도 더 건져내기 위해 공격적인 성향을 보일 수 밖에 없고, 피취재자인 인터뷰이(Interviewee) 게스트는 속내를 감추기 위해 수비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초반에 이뤄지는 상대와의 기싸움은 취재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하게 된다.
강호동이 인터뷰어로서 탁월함을 보여주는 건, 초반 5분간 몰아치는 기선제압 뿐이다. 이어 상대에게 예의를 표하듯 깍듯이 무릎을 꿇고, 공격에서 수비로 전환한 뒤, 박수치고 호응하는 리액션을 통해 친(親)게스트 성향을 보인다. 초반에 바짝 기가 눌렸던 상대방은, 시청자가 지켜보고 있을 거란 생각은 뒷전이고, 강호동이 자기 편이 되어주는 느낌을 받아 꾹꾹 담아왔던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게스트 스스로가 보호막을 세우고, 뒤로 한 걸음 내빼려 할 때마다, 다시금 잽을 날릴 줄 아는 감각의 소유자 강호동이 있기에 양질의 프로그램이 완성된다.
물론 순탄해 보이는 무릎팍도사에도 위기는 있었다. 강호동의 <무릎팍도사>가 세간의 이목을 받는 인기코너로 성장하자, 상대의 폐부를 찌르던 초기 무릎팍도사의 날카로운 포스는 무뎌지고, 게스트를 포장하기 급급한 ‘면죄부도사’로 전락했다는 오명을 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아냥들은 중요한 사실을 빠뜨린 접근법에서 나온 것이다.
제 아무리 잘 나가는 인터뷰어라 할 지라도, 상대가 입을 다물면 대책이 없다. 고해성사를 하겠다며 찾아와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으면 신부님도 엉뚱한 소리에 맞는 처방을 들려 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면죄부라는 것은 무릎팍도사가 주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 면죄부는 바로 시청자가 주는 것이다. 결국 게스트가 하기 나름이다. 게스트가 진솔한 모습을 보이면 시청자가 공감을 하는 것이고, 가식적인 모습이라고 느껴지면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게스트에겐 오히려 독이 될 뿐이다.
강호동은 그저 출연한 게스트와 시청자사이를 잇는 주선자에 불과하다. 토크쇼가 갖는 자칫 딱딱하고 루즈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최대한 이완시키고자 웃음이란 감초를 넣는다. 재미를 위해 게스트와의 정면대결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건방진도사 유세윤과 올밴의 재기 넘치는 멘트를 끌어낸다. 강호동이 아니라면, 건방진도사는 지금과 같은 건방을 떨 수 없다. 강호동이란 울타리안에서 건방을 떨 수 있는 것이다. 강호동이 아닌 유재석의 울타리였다면 강도는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유세윤이 깐죽대며 게스트의 심사를 건드릴 때마다, 강호동은 박장대소하며 배꼽잡고 쓰러져 준다. 게스트의 반발을 사전에 차단하는 강호동의 처방이 돋보인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강호동은 지켜보는 시청자를 우선시 하지, 게스트를 우선시 하진 않는다.
마지막으로 꿈을 제시하는 부분도 게스트가 스스로를 포장하는 것이다. 강호동이 그의 꿈을 포장해 주진 않는다. 출연에 대한 감사와 상대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의례적인 “영원하라!”로 끝을 맺을 뿐이다.
<무릎팍도사>가 사랑받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강호동이 있었기에 <무릎팍도사>라는 프로그램이 빛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인터뷰에 있어, 촌철살인 같은 질문과 멘트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의 분위기다.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인터뷰어의 자질이다.
누구나 고민 혹은 비밀을 안고 있다. 나의 고민을 들어 줄 수 있는 친구는 많다. 그럼에도 쉽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유독 어떤 친구앞에선 나도 모르게 고민을 털어놓게 된다. 그가 대단한 달변가이기 때문이 아니다. 나의 고민을 해결줄 수 있는 해결사도 아니다. 그런데 그는 숨기고픈 고민을 말하고 싶게 만든다.
예능계에 MC는 많다. 그러나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 어울리는 MC는 한 사람 뿐이다. 바로 강호동이다. 그가 늘 외치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고자 한다.
“무릎팍도사 강호동이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