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사랑'을 가르쳐 준 드라마 음악 베스트3

바람을가르다 2009. 7. 16. 16:25

 

아무리 재밌게 본 드라마라 해도, 어제가 되고, 1년이 되고, 또 시간이 그렇게 흐르고 나면 머릿속에선 희미해지고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화면을 채우던 에피소드들은 낙엽처럼 떨어지고, 뼈대를 이루던 가지만 앙상하게 남게 되죠. ‘저 장면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을 들어도, 막상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놓쳐버린 기억을 이어주는 게 있습니다.

드라마속에 흐르던 BGM. 바로 OST라고 볼 수 있겠지요.

누구에게나 그러하듯이, 저에게도 기억에 남는 드라마 속 OST 곡들이 있습니다.

 

 

1. <네멋대로 해라>현욱 멀기만 한 사랑

 

이 드라마를 참 좋아했습니다. 복수역을 맡았던 양동근씨의 보석같은 연기가 빛났던...

복수아버지 역을 맡았던 신구씨도 잊을수가 없네요.

제 기억속엔 양동근, 이나영의 청춘남녀의 멜로물이 아닌, 양동근씨와 신구씨가 보여 준 우리시대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잘 그려낸 드라마였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무뚝뚝한 아버지와 무뚝뚝한 아들의 사랑.

 

첫장면이 인상적인데요.

비가 오는 날, 교도소에서 출소한 복수(양동근)를 마중 나온 아버지 신구는 복수에게 말없이 새로 산 우산을 건네주고, 바로 발걸음을 돌려 가버립니다. 복수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뒷모습은 초라합니다. 어깨가 처진 아버지는 낡고 고장난 우산을 쓰고 걸어가거든요.

 

표현이 서툰 아버지와 아들사이는, 그렇게 따뜻한 대화가 없어도 알 수가 있습니다.

매번 아들은 틱틱거리고 아버지는 애꿎은 잔소리를 해가면서, 부자간에 놓고 싶지 않은 소통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장면
.

뇌종양말기로 죽음을 앞둔 복수는 아침마다 찾아오는 통증에, 혹여 자신의 병을 아버지가 눈치챌까 이불을 뒤집어쓰고 병마의 고통을 견딥니다. 작은 신음소리라도 아버지의 귀에 들어갈까, 그렇게... 마침 공효진씨의 친절한(?) 설명으로 복수의 아버지는 복수의 병을 알게됩니다. 미친 사람마냥 하루종일 목놓아 울던 아버지는 그날 밤 약을 먹고, 복수는 방 한 켠에 숨이 끊어진 아버지를 발견한 뒤, 부둥켜 안고 오열합니다. 차갑게 식어버린 아버지를 연신 주물러대며, 끝까지 붙들고 싶어하는 양동근씨의 몸짓에 아마 저뿐 아니라, 지켜 본 대다수의 시청자들 눈시울이 뜨거워 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들은 나이 든 아버지에게 짐이 되기 싫고.

아버지는 아들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것.

 

극단적인 설정이었지만,

그것은 바로 표현하는 방법이 서툰, 우리네 아버지와 아들의 숨겨 둔 모습이었습니다.

저 역시 살면서, 아버지가 눈물을 흘린 적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족 모르게 힘든 적도 많았을 텐데...


지금도 종종 이현욱씨의 멀기만 한 사랑을 들을 때면, 그 장면이 떠올라 마음이 짠해지곤 합니다. 저에겐 안타까운 사랑의 노래가 아니라, 부자간의 사랑이 녹아 있는 따뜻한 곡으로 남아 있습니다.

 

 

2. <미스터Q>임하영&윤사라 그대 눈빛속에

 

오지랖도 넓고, 너무나 정직하고 올곧은 신입사원 이강토역의 김민종과 디자인실 인턴사원 한해원역할을 맡은 김희선씨의 사랑을 담은 트렌디드라마 <미스터Q>.


시작하는 연인들의 사랑.
 

이 드라마가 좋았던 것은, 서로에 대한 감정표현 방식이 쿨하지 못해서였습니다.
좋아한다”, “사랑한다라는 말이 뭐가 그렇게 힘든 지, 자꾸 돌려서 표현하는 그들이 참 순수해 보여서 끌리더라구요. 쿨하지 못해서 오해를 사게 되고, 그 오해를 오해다라는 말보다, 곁에 머물면서 마음하나, 행동하나에 진정을 담은 정공법으로 연인으로 점진적으로 발전해 가는 모습들이...




그들이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과 달리 드러나는 감정이 어긋날 때마다, 임하영윤사라의 목소리를 빌린 그대 눈빛속에라는 곡이 흘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말이란 건 참 쉽습니다. 말하면 됩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사랑입니다.
눈이 말하고 있거든요. 눈을 바라봐 주길 바라는 남자와, 그런 상대의 마음을 알면서도 입을 통해 들려주길 바라는 여자의 심리가 엇갈릴 수 밖에 없는... 시작하는 연인들의 모습이 숨어 있죠.

 

 

3. <로즈마리>이승철 그냥 그렇게

 

OST에 수록된 한 곡이, 드라마 전체의 그림을 아우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김승우, 유호정 주연의 드라마 로즈마리에 수록된 이승철그냥 그렇게가 그런 경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별을 앞둔, 남편과 아내의 또 다른 사랑의 시작. 
 

행복한 가정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아내에게 시한부선고가 내려집니다. 남편은 받아들일 수 없어 어쩔 줄 모르지만, 아내는 차분하게 주변을 정리해 나갑니다. 자신이 없으면 밥한끼 때우지 못하는 남편과 어린 두아이를 위해, 자신이 가꾸웠던 자리를 이제는 다른 여자에게 건내려 합니다.
그런 그녀를 통해 남편은 지난 시간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네 현실 속 이별의 모습은 어떤가요?
영화같이 만나서 남부럽지 않게 사랑해도, 시간이 흐르면 어느 순간 무감각해지는 나를 발견하고... 서로 다른 점이 끌려서, 알아가는 게 좋아서 만났는데, 다른 게 이제는 싫어지고, 미워보이고... 우린 왜 다를까를 자꾸만 떠올리게 됩니다.

긴 사랑이 짧은 이별을 말할 땐, 정말 별 거 아닌 일로 시작해서 헤어지자는 몇 글자 안 되는 말로 매듭짓고 말죠.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고, 순간에 감정에 휩쓸려 버립니다.

 

너 아니면 안 돼.” 라서 시작했는데...

너만 아니면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마침표를 찍는 게 아닐까도 싶습니다.



지나간 드라마와 OST를 떠올리며, "사랑"에 관해 잠시 생각해봅니다.
 

사랑이라는 건, 한 폭의 그림같아요.
같은 붓으로, 같은 물감으로, 같은 그림을 그려도, 그리는 사람에 따라 다른 질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하지만, 사랑이 주는 본연의 색깔을 잃지 않는다면, 좋은 그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