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의여왕, '채정안' 얼마나 세게 맞았으면?
역전의여왕, '채정안' 얼마나 세게 맞았으면?
22일 방송된 MBC월화드라마 <역전의여왕>11회. 결혼기념일에 백여진(채정안)의 집을 찾아가 남편과의 관계를 추궁하던 황태희(김남주). 태희는 냉정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봉준수(정준호)를 좋아하면 안 되냐며 뻔뻔한 태도로 나오는 여진에게, 태희는 리얼분노싸대기를 작렬한 것.
당연히 통쾌해야 할 장면인데도 보다가 멈칫했다. '어우, 많이 아프겠네?' 뺨을 맞고 흐느끼는 채정안이 처음으로 극중에서 불쌍하게 느껴졌다. 김남주가 황태희에 너무 몰입했던 것일까. 짝소리가 아니라 퍽소리가 날 정도로 채정안의 뺨을 올려 부쳤기 때문이다. 덕분에 채정안의 얼굴은 순식간이 부어올라 멍자국이 새겨졌고 닭똥같은 눈물은 자연스럽게 흘러내렸다.
두 사람의 프로의식이 빚은 씬이긴 하나, 김남주의 손에 제대로 감겼다고 해야 할까. 몇 장면이 지난 뒤에도 채정안의 뺨에 벌겋게 오른 붓기와 멍자국이 쉽게 빠지지 않아, 때린 김남주도 불편하고 미안했을 것은 느낌마저 든다.
현재 총 20부작 중 11회를 마친 <역전의여왕>. 그렇다면 절반이 지난동안 드라마는 무슨 얘기를 해왔던 것일까. 여왕 황태희를 중심으로 보면, 골드미스의 사랑과 결혼, 워킹맘의 현실, 사내갈등 등 여러 에피소드를 다뤘다고 볼 수 있다.
기획실 팀장이었던 골드미스 황태희는 봉준수를 만나 결혼했지만, '한송이(하유미)-백여진(채정안)'의 질투와 모함이 계속되자, 결국 깨끗하게 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능력을 인정받던 원더우먼이,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집안살림에 올인한다는 건, 때때로 잘 나가던 과거를 떠올리며 상대적인 박탈감을 부른다.
남편이 정리해고대상에 오르고 나서야, 황태희는 역전의 찬스를 잡는다. 반복되는 무기력한 일상에서 벗어나, 누구 아내가 아니고 누구 엄마도 아닌, 황태희란 이름을 불러주는 곳에서 자신의 재능을 다시금 펼칠 수 있는 기회. 그러나 특별기획팀에 합류한 황태희가 실질적으로 내놓은 결과물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아이디어를 남편에게 빼앗기고도, 화를 참고 이해해야 하는 평범한 아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주인공이지만, 황태희가 모든 걸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역전을 바란다는 건 현실감과 개연성이 떨어진다.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의 열매를 따내기 위해 한송이상무나 백여진팀장이, 라이벌 혹은 위협을 줄 수 있는 존재를 궁지로 몰아넣는 게, 비록 밉상스런 행동이긴 하나 일부 공감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수단이야 어쨌든 성공한 한상무와 백팀장에겐 독기가 느껴진다. 반면 회사로 돌아온 황태희에겐, 결혼 전에 품었던 독기가 사라졌다.
한송이는 태희에게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는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척점에 놓인 주인공 황태희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아무런 계기나 위기도 없이 황태희가 짜잔하고 성공할 순 없다. 한송이는 물론, 백여진도, 구용식(박시후), 목부장(김창완) 등등, 드라마의 모든 캐릭터들이 어딘가 부족한 자질과 삶을 살고 있다. 그 부족함을 황태희가 변해가면서, 자신도 상대방도 채워줘야 한다.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하면서.
<역전의여왕>11회는 태희와 여진의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는 등, 전체적으로 들쑥날쑥하며 김빠진 듯 보였지만,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남겼다. 바로 황태희가 역전의 여왕이 되어야 할 구체적인 목적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봉준수-백여진'의 사이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결국 과거 연인사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봉준수의 백여진의 관계를 황태희가 어느 시점에 알아차리느냐는, 단편에 불과한 에피소드가 아닌 극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된다. 그리고 드라마가 절반이 지나자, 황태희는 보다 적극적으로 변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태희가 여진의 뺨을 올려 부친 건 역전의 시발점이다.
봉주수와 백여진이 다정하게 찍었던 과거의 사진을 보며, 황태희는 놀라움과 분노를 적절히 담았다. 거기엔 남편에 대한 배신과 불신이 숨어있다. 황태희는 남편에게 이미 최후의 통첩을 날렸었다. 백여진과의 사이를 솔직하게 털어 놓으라며, 차마 꺼내지 말아야 할 이혼까지 거론했다. 그러나 준수는 여진과는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고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다.
부부의 신뢰에 금이 가면서, 황태희는 아내라는 이름에서 분리된 독립체로,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행보를 걸을 것이다. 반드시 이혼이란 통로를 거치지 않는다해도, 봉준수와의 관계회복에는 꽤 시일이 걸릴 듯하다. 그러나 역전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황태희가 여왕이 될 발판은 순탄한 성공이 아닌, 가파른 위기에 화끈한 변신을 통한 역전만루홈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