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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여왕, 왜 막장취급하나?

바람을가르다 2010. 11. 17. 09:15






16일 방송된 <역전의여왕> 10회에서는, 아내의 기획안을 몰래 빼돌린 봉준수(정준호)가 ‘황태희(김남주)-구용식(박시후)-백여진(채정안)-한송이(하유미)’가 모인 5자대면에서 양심선언을 했다. 덕분에 황태희와 특별기획팀은 PT를 통해 만회할 기회를 얻게 됐고, 태희와 스파이 준수사이에 불거진 갈등도 일단락됐다.

결혼기념일에 레스토랑을 찾은 준수와 태희. 간만에 와인잔을 부딪히며 분위기 잡을 무렵, 여진의 방해성 전화가 쇄도해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던 준수. 이어 김샌 태희앞에 느닷없이 나타난 여진의 친구덕분에, 준수와 여진의 관계를 알아버린 태희의 분노지수가 상승했다.




기획안을 빼돌린 잘못은 용서했지만, 여진과의 관계를 속였다는 건 태희에게 충격과 공포로 다가온다. 물론 현재가 아닌 과거에 연인이었다는 점, 그리고 봉준수는 여진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지 않음을 10회에서 이미 보여주었다. 덕분에 준수에겐 가정의 행복이 먼저라는 것도 시청자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태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다시금 남편 봉준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준수가 여전히 여진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쉽고, 둘의 관계를 의심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 준수의 진심을 알게 된다하더라도, 여진이 첫사랑이었다는 사실을 숨긴 건 태희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또한 예고에서 알 수 있듯이, 준수의 진심을 입증해줘야 할 여진이, 오히려 태희에게서 준수를 뺏겠다는 적반하장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태희를 열받게 하는 건 남편의 거짓말이다. 과거에 사귀었다는 건 태희의 성격상 쿨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여진이 남도 아니고 매일같이 얼굴을 부딪힌 직장동료이자 앙숙인 걸 알면서도, 준수는 태희에게 과거를 말하지 않았다. 태희로선 지난 5,6년의 세월을 포함해, 두사람사이에 끼어 바보가 된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역전의여왕, 왜 막장취급하나?

이번만큼은 황태희도 남편 봉준수를 용서할 수 없다. 여진을 제껴 놓더라도, 무너진 부부간에 신뢰는 쉽게 회복하기 힘들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것은 태희의 자존심과도 직결된 사안이다.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봉준수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준수가 태희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지금은 여진을 사랑하지 않는다며 자기 변호에만 몰두한다면, 부부사이에 감정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후자쪽에 무게가 실리는 게 사실이다. 아무리 부부라 해도 서로의 마음까지 꿰뚫고 이해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오히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방이 야속하고 미워 보이기 마련이다. 특히 이성문제로 불거진 사안은 자기 위주로 해석하고 접근하기 쉽다.

그러나 ‘준수-태희-여진’의 갈등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역전의여왕> 시청자라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시청자로선 별 거 아닌 문제로 치부할 수 있을진 몰라도, 극중 캐릭터들은 다르다. 구용식이 봉준수에게 주먹을 날린 것도, 그가 준수와 여진이 키스한 장면만 보았기 때문이다. 준수가 여진을 뿌리치고 나무란 상황을 용식은 알지 못한다.




황태희나 봉준수의 입장에 시청자가 처했다고 가정하면, 어떤식으로 상대방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최대한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극중에선 시청자가 아닌, 황태희나 봉준수의 캐릭터에 어울리게 상황을 판단하고 접근하는 게 개연성이다.

시청자들은 드라마가 이혼 등을 불러와 막장으로 치닫지 않을까 우려한다. 그러나 설사 이혼얘기가 오간다해도 그것을 막장이라고 할 수 있나. 오히려 현실감을 떨구고 쉽게 용서함으로써 개연성을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드라마는 오해와 갈등으로 빚어진다. 이 두 가지가 빠진 드라마는 없다. 오해와 갈등이 없이는, 긴장감도 줄 수 없고 재미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최악의 상황을 부르기도 하지만, 캐릭터에 어울리는 최선의 선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역전의여왕>은 살인, 불륜, 폭력, 선정 등의 막장요소를 담고 있지 않다. 봉준수가 바람을 핀 것도 아니다. 다만 거짓말로 인해, 부부간에 오해와 갈등이 불거졌을 뿐이다.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갈등이 폭발해, 설사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해도 막장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이유다. 중요한 건 캐릭터와 상황이다. 이것을 무시한 채 막장의 잣대를 무분별하게 적용하고 바라보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