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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여왕, 욕만 할 수 없는 키스?

바람을가르다 2010. 11. 16. 08:36






15일 방송된 MBC월화드라마 <역전의여왕> 9회에서는, 눈뜨고 코를 베인 황태희(김남주)가 그려졌다. 황태희가 주도하는 특별기획팀의 기획안 컨셉을, 남편인 봉준수(정준호)가 빼돌려 백여진(채정안)팀장에게 넘긴 것. 이건 배신의 차원을 넘어섰다.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아내가 고생하며 짜낸 아이디어를, 남편이 몰래 가로채다니 이혼감으로 손색이 없다.

그것도 모자라, 워크숍에서 봉준수는 백여진에게 기습키스를 당했다. 충분히 뿌리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여진의 입술을 챙긴 봉준수. 다행이 구용식(박시후)팀장이 먼저 그 상황을 목격한터라, 뒤늦게 키스의 현장에 나타난 태희가 혹여 충격을 받을까봐 손목을 붙잡고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면 최악의 엔딩이 될 뻔 했다.

불륜의 시작을 방불케 하는 ‘봉준수-백여진’의 키스신은 시청자에게 쌍욕을 먹어도 시원치 않다. 그러나 덕분에 드라마가 얻은 반대급부는 적지 않다. 일단 시청자가 황태희의 입장과 편이 되어, 보다 몰입해서 시청할 수 있는 틀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봉준수-백여진’ 욕만 할 수 없는 키스?

9회가 진행되는 동안 워킹맘 황태희는 당할 만큼 당했다. 빈소에서 회사동료들 앞에 망신당한 남편을 이해해야 했고, 회사일로 바쁜 와중에 시댁에 찾아가 일을 도맡으며 제사를 치러 냈다. 그리고 남편이 자신의 기획안을 빼돌려 한송이(하유미)상무에게 넘겨준 줄도 모른 채, 한상무를 찾아가 남편의 기를 살려주려 애썼다. 그리고 준수와 여진의 키스는 황태희를 비참하게 만든 정점이었다.

욕을 먹어야 마땅한 키스신이지만, 오히려 시청의 포인트를 단순하게 가져가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나쁘다고 볼 순 없다. 또한 봉준수가 마지노선을 지켰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태희의 기획안을 참고만 하겠다더니 완전 베꼈다면서 여진에게 화를 내는 준수가 멍청했을 뿐, 완전 나쁜 놈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키스도 여진이 기습적으로 덮친 것으로, 준수가 빠져나갈 구멍을 조금은 열어두었다.

무엇보다 여진이 왜 태희에게 반감을 갖고, 악행을 일삼는지에 대한 이유가 처음으로 설득력있게 그려졌다. 황태희에 대한 콤플렉스였다. 직장동료로서 태희가 가진 능력치에 대한 부러움 그리고 옛 연인 준수를 빼앗겼다는 피해의식으로 비뚤어진 자화상을 바로 잡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이성을 잃고 기습키스와 같은 도발을 낳았다.




주인공 황태희를 괴롭히는 악녀 듀오 ‘한송이(하유미)-백여진(채정안)’이 드라마를 쥐고 흔들기 시작하자, 다른 캐릭터들도 역동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봉준수가 단순히 무능력한 남편에서 벗어나, 악녀들과 태희사이에 접근성을 높이고 갈등을 부추기는 회전문 역할을 하고 있다. 덕분에 구용식은 태희의 유일한 숨통이 되어, 태희의 흑기사로서 봉준수를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그녀를 보호할 구실이 만들어 진다.

그동안 악녀들의 활약이 미비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9회에서 알 수 있듯이, 악녀들이 설치기 시작하자 주인공 캐릭터들이 입체적이고 역동적으로 발전하며 방향성을 찾기 시작했다. 캐릭터마다 치열하게 추구해야 할 목적과 이유가 선명해질수록 극의 몰입도는 높아지기 마련이다. 황태희가 고저를 오가며 다양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주변캐릭터가 때때로 독하고 강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역전의여왕>이 9회에 이르러, 드디어 역전 찬스를 잡았다. 그동안 잔재미는 있었으나 뚜렷한 목표점이 보이지 않았고, 단발적으로 터지고 봉합되는 갈등으로 인해 시청의 연속성에 헐거움을 가져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캐릭터들이 정체성을 찾고 확실한 입지를 다졌다는 게 9회의 수확이다. 그리고 ‘준수-여진’의 키스는 극의 전개 폭을 넓혀 궁금증을 유발하고, 연속성을 담보한 갈등의 도화선이 됐다는 점에서, 욕만 할 수 없는 키스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