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의여왕, 싸구려발언은 용식의 태희앓이?
드라마 <역전의여왕>을 보면, 피부에 와 닿는 상황이나 대사가 많이 등장한다. 그만큼 현실감을 담보로, 재기 발랄한 유머코드나 적절한 갈등과 감동이 녹아 있어, '내조의여왕'의 닮은 꼴이란 비판속에서도 시청자의 관심을 유발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8일 방송된 7회에서도 이러한 장점이 잘 살려 냈다.
7회에서 가장 웃겼던 장면을 짚어 보자. 부부사이의 대화에서는 말투가 중요하다는 부부클리닉을 본 황태희(김남주)가, '~했지?'나 '~했잖아!'식으로 상대방을 몰아 부치기보다는 '~했구나.'식으로 부드럽게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인식하고는, 남편 봉준수(정준호)에게 바로 써먹게 된다. 그러나 준수는 태희의 '~했구나'에 오히려 화를 내고 돌아섰다.
여기엔 갑자기 말투가 돌변한 아내에게 경계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남편의 심리가 작용한다. 아내 태희 또한, 말투와 억양은 부드럽게 흉내냈지만, 사실 속마음은 남편이 외박한 데에 대한 불만과 극구 반대중인 떡복이사업을 고집스럽게 추진하려는 남편을 못마땅해 하는 감정도 은연중에 포함되어 있다.
부부간에 갈등을 빚고 있는 와중에, '많이 피곤하겠구나?', '씨도 안 먹히는 구나?', '집에 들어오기 싫어서 외박했구나?'식으로 반복된 어미를 사용하다보니, 오히려 대화할 마음은 없고 비아냥대는 것처럼 들렸던 것이다. 대화에서 반복된 어미를 사용하면 잔소리 혹은 대화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는 걸 적절하게 표현했다.
'싸구려'로 황태희(여자)울린 구용식(남자)의 심리?
7회에서 가장 주목할 인물은 구용식(박시후)이었다. 그동안 용식은 태희에게 호감을 느끼긴 했으나, 그것이 사랑이란 감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7회에서는 스스로도 헷갈려 했던 태희에 대한 관심이, 마음 한켠에선 이미 사랑으로 발전하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바로 마지막 장면에서 태희에게 던졌던 "싸구려!"발언. 덕분에 눈물 뺀 태희의 손맛을 제대로 봤지만 말이다.
태희는 화장품을 팔기 위해 옛동창을 만나게 됐다. 동창남은 재고화장품 천세트를 팔아주는 대가로 태희와의 잠자리를 요구한다. 태희는 즉각 반발하고, 이를 지켜보게 된 용식이 나타나 태희를 구해준다. 그러나 태희가 왜 동창을 만나러 왔는지, 앞뒤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용식은 태희에게 'Out!'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직원 태희를 자르겠다는 것보단, 용식의 마음속에서 태희는 아웃이라는 게 더 적절할 듯 싶다.
더 이상 태희에게 관심을 주지 않겠다는 발언이다. 그러나 태희는 아웃의 의미를 회사에서 퇴출당하는 것으로 여기고 용식을 쫓아가 이유를 물었다. 태희가 동창을 만나 화장품을 팔려고 했던 이유를 조목조목 거론하자, 용식은 그래서 웃음팔고 자존심 팔았냐며 다소 엉뚱한 논리로, 태희에게 "싸구려."라는 여자에게 해선 안 될 심한 말까지 내뱉었다.
분명 용식의 오버였다. 재고품 천세트를 어떻게든 팔려고 동분서주했던 태희를, 그동안 용식은 쭉 지켜봐 왔었다.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이해와 위로는 못해줄 망정 심한 말을 했던 것이다. 바로 용식이가 태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마치 내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이유를 불문하고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는 마음의 폭발.
그러나 너 때문에 내 마음이 이렇게 요동치고 화가 난다는 걸 보이기 싫은 남자의 자존심은, 오히려 모든 잘못을 여자에게 떠 넘기려 든다. 싸구려와 같은 심한 말을 동원해 사랑하는 여자에게 상처를 주고 돌아서서 후회하게 될 남자의 모습이 있다.
만일 용식이가 태희를 여자로 느끼지 않았다면, 오히려 오해해서 미안하다며 큰일날 뻔했다고 위로해줬을 것이다. 그러나 유부녀임에도 불구하고, 태희를 사랑하게 된 용식은 자기 부정을 하고 있었다. 차라리 그렇게나마 태희에게 상처를 주고, 자꾸만 커지는 그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가장 치졸한 수법을 본인도 모르게 동원하고 만 것이다.
그것은 술에 취해 자신의 이야기를 태희에게 들려주고 위로받고 싶었던 용식. 그리고 준수가 아내를 위해 회사까지 찾아왔을 때, 용식이 카메오 김승우의 부축을 받은 상태로 '준수-태희' 커플을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던 장면들이 미리 나왔기에 알 수 있다. 덕분에 태희를 눈물나게 한 싸구려발언은, 용식이가 태희를 사랑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문근영과 장근석주연의 <매리는 외박중>에 맞춰, <역전의여왕>이 내놓은 히든카드가 용식이의 '태희앓이'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앞으로 태희에 향한 용식이의 사랑은 차곡차곡 쌓여갈 텐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은 없고. 봉준수라는 결코 무시 못할 커다란 장벽. 그리고 회장님 아들이 유부녀인 자신을 사랑할 리 없다고 판단할 태희 때문에 더욱 답답하고 가슴아플 구용식. 용식이도 할 짓은 아니지만, 그의 안쓰러운 '태희앓이'는 수면위로 떠오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