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그들은 정말 노래를 몰랐을까?
10일 방송된 해피선데이 <1박2일>은 강원도 양양 하조대를 찾아, '센티멘털 로망스'란 테마로 가을음악여행을 떠났다. 특히 향수를 자극하는 8,90년대 명곡들이 미션과 맞물리면서, 시청자에게 추억을 선물해 호평을 받기에 충분했다.
다만 시청자로선 미션수행과정에서 멤버들이, '정말 노래제목과 가수를 몰랐을까?'라는 질문을 던질만 했다. 한 명도 아니고 다섯 명이 알아 맞추는 것이었다. 강호동은 차치하고라도, 본업이 가수인 이승기, 은지원, 김종민과 강변가요제 참가경력에 레크레이션 강사출신의 이수근이 버티고 있다. 최소한 그들 중에 한 명쯤은 정답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첫번째와 두번째 미션을 보자. 이문세 '시를 위한 시', 유재하 '내마음에 비친 내모습', 홍성민 '기억날 그날이 와도'가 CD플레이어를 통해 들려졌다. 3곡 중에 하나쯤은 명쾌한 정답이 나올 만도 했다. 특히 인간주크박스로 통하는 이수근은 답을 알고 있었을 거란 생각이 스칠 만큼 유명한 곡들이다. 그러나 오히려 가장 믿었던 이수근의 입에서, 유재하가 아닌 박학기가 튀어나올 정도였고, 멤버들도 어느 정도 수긍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요절한 천재 싱어송라이터 유재하의 앨범이 수십 장도 아니고 단 한장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가리워진 길'과 더불어 '내마음에 비친 내모습'은 너무나 잘 알려진 곡. 쉽게 말해 모른 척하기도 힘든 곡이다. 그러나 이수근을 비롯한 다섯 명은 유재하를 외면했다. 목소리만으로도 생각날 만한 유재하의 '유'자도 나오지 않았다.
이문세의 '시를 위한 시'도 그렇다. 물론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故이영훈과 작업했던 이문세의 곡들은, 후배가수들도 수없이 리메이크해 인기를 끌었다. '옛사랑', '사랑이 지나가면'을 놓고, 다섯명 모두가 정답이라고 확신했던 건 섭섭할 수준이다. 차라리 요즘 쏟아지는 아이돌그룹 노래를 틀어 놓고 맞추는 게, 더 힘들 법한 멤버 구성이었다. 일부러 틀린다는 느낌이 재미를 반감시킬 찰나, 닭갈비집에서 꺼낸 강호동의 한마디가 모든 걸 설명한다. "예능이잖아."
1박2일, 그들은 정말 노래를 몰랐을까?
정답이다. <1박2일>은 예능이다. 그들은 다큐가 아니라 예능을 찍고 있다. 만약 다섯 명중에 한 사람이 정답을 쉽게 맞추었다면 어땠을까. 그 순간 다큐가 된다. 예능에 어울릴 만한 분량을 뽑아낼 소재가 공중으로 사라진다.
예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다. 그 재미를 만드는 과정의 핵심은 바로 리액션에 있다. 단순히 박수치고 웃는 게 리액션의 전부가 아니다. A라는 사건을 두고,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벌어지는 일련의 모든 과정이 리액션을 통해 이뤄진다.
만약 이문세의 노래제목을 그들이 한 번에 맞췄다면, KBS로비에서 만난 직원분의 '옛사랑'이란 답변(리액션)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유재하, 홍성민의 노래제목을 한 번에 맞췄다면, 그들이 휴게소를 찾아가 시민들과 어울리고 일일이 소통하는 장면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의든 타의든 정답과 거리를 두었기에, 그들은 시민들에게 도움을 구했고, 끝내 무명가수와 박학기에게 답을 얻었다. 가장 1박2일스러운 장면과 재미가 이어졌다.
인간쥬크박스 이차르트 이수근. 그가 정답을 알고도 참았다면 잘한 것이다. 예능이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무식을 가장한 센스가 필요할 때가 있다. 특히 방송국이나 휴게소와 같이 오픈된 장소에선, 그들과 리액션을 주고받을 수많은 시민들이 있다. 멤버들이 모자란 덕분에, 시민들의 예상못한 답변(리액션)들이 쏟아졌다.
무엇으로 안면없는 시민과 소통할 것인가. 도움을 구하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물론 멤버중에는 정답을 아는 이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엔 시민과의 소통을 단절시키게 만들 정답보단, 모른 척하는 게 센스고 예능감이다.
강호동을 비롯한 멤버들은, 철저히 시민들의 답변을 나영석PD에게 정답으로 내놓았다. 답이 틀리더라도 그들은 소통을 이어 갔다. 시민들에게 멤버들의 미션결과물을 걸었고, 실질적으론 시민들이 복불복의 주인공이 된 셈이다. 그리고 멤버들은 시민들이 가르쳐 준 오답으로 네번째 주어진 소형차에 탑승해 여행을 떠났으며, 휴게소에선 시민들의 도움으로 춘천닭갈비집에서 포식할 수 있었다. 그들만의 리그속에 주인공이 되길 거부하고, 시민들과 함께 '가을음악여행'의 에피소드를 완성시켜 나갔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은 '1박2일' 멤버들의 거울인 동시에, 보호막이 돼 주었다. 멤버들도 모를 수 있겠다는 일종의 거울효과. 초반에 보여 준 시민들의 오답이 있었기에, 부활의 '사랑할수록'을 이덕진이 불렀다고 착각한 반전의 은지원까지 이어지는 힘을 담보했던 것이다.
최근 버라이어티에 '리얼'과 '진정성'이 강조되다보니, 순수 예능의 재미를 뽑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덕분에 설정과 조작이란 비판도 쉽게 불거진다. 그러나 "예능이잖아."라는 강호동의 말은 시기적으로 시청자에게 좋은 화두를 던진 셈이다. 재미를 위해선 영리할 수도 있고 때때로 무식할 수도 있다. 알면서도 모른 척, 모르면서도 아는 척. 바로 예능의 본질인 '재미'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 부분을 시청자도 이해하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1박2일 멤버들이 정답을 아는가 모르는가에 포인트를 잡은 시청자는, 의혹을 품고 재미는 떨어졌을 것이다. 반대로 그들이 정답을 어떤 방향에서 접근하고 찾아낼 것인가에 주안점을 둔 시청자라면, 기대이상의 재미를 느꼈을 것이다. 멤버들이 정답을 알고 모르고를 떠나, 시민들에게서 답을 구하고 '1박2일'의 재미안으로 끌어들인 과정은 칭찬이 아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