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자격 합창단, 거추장스런 장려상!
평소 만화책을 보지 않는데, 네 번 정도 읽은 만화책이 있다. 바로 <슬랭덩크>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북산고교 3류농구부. 그리고 농구에 '농'도 모르면서, 오직 동급생 소연이에 대한 짝사랑만으로 농구를 시작했던 초짜 강백호. 그와 농구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개성의 멤버들이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속에, 단순한 재미를 떠나 감동마저 읽혔기 때문이다.
해피선데이 남자의자격 합창단이 그랬다. 이경규, 김국진을 비롯해 노래와는 거리가 먼 중년의 남자들. 그들에게 어느 날 찾아온 뮤지컬계의 대부 박칼린 음악감독과 수제자 최재림. 윤형빈의 말처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다."란 말이 낯설지 않은 시작. 그리고 오디션을 통해, 서두원, 배다해, 선우, 박은영, 신보라 등 노래를 좋아하지만 직업도 개성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오합지졸 남격합창단은 탄생했다.
두 달간의 피나는 연습과 노력 그리고 열정이 빚은 마지막 무대 <거제전국합창대회>. 그들은 더 이상 오합지졸 초짜 합창단이 아니었다. 박칼린의 지휘아래, 완벽한 하모니를 이뤄 낸 '넬라판타지아'와 '애니메이션메들리'로 관객과 시청자의 탄성을 자아낼 만한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어찌보면 거추장스러운 장려상을 받고 환호했다.
남자의자격 합창단, 그들이 왜 최고인가?
물론 쟁쟁한 경쟁팀들이 참가했고, 그들도 남격합창단만큼 눈물겨운 노력과 열정으로 뭉친 훌륭한 하모니를 이뤘다고 본다. 상조차 수상 못한 팀이 있으니, 남격합창단으로선 충분히 위안을 삼을 만했다. 다만 그들에게 장려상이 거추장스럽고 가볍게 보인 건, 그보다 멋진 무겁고 깊은 눈물과 감동의 크기에 있었다.
소름 돋는 하모니를 선사하고 내려 온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솔로경쟁을 벌였던 선우와 배다해를 비롯, 파이터 서두원에 남격의 맏형 이경규조차 뜨거워진 눈시울을 감추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합창단의 캡틴 박칼린선생님 그리고 악역도 마다 않던 최재림조차 눈가가 촉촉히 젖었다.
8분의 무대를 마친 그들은, 이미 수상따윈 초월한 상황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 그들에게 최고라는 수식어를 감싸고 있었다. 마치 토너먼트 2회전에서 전년도 우승팀이자 강력한 우승후보 산왕공고에 맞서, 기적같은 역전승을 일군 북산고 농구부를 보는 듯 했다. '왼손은 거들 뿐'이라는 명대사를 남겼던 강백호의 마지막 슛. 그리고 눈물과 환희로 뒤범벅된 오합지졸 농구부.
이경규, 김태원처럼 실수 투성의 강백호도 있었고, 배다해, 선우 등과 같은 테크니션 서태웅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당신들은 최고입니다."라고 말해주었던 따뜻한 안선생님이, 남격합창단에도 있었으니 박칼린 감독이다. 때문에 남자의자격 합창단은, 관객과 시청자에게 재미와 감동이란 슬램덩크를 꽂을 수 있었다.
우승후보를 꺽었던 북산고교 농구부는, 3회전에 거짓말같은 대패를 당한다. 그래서 더 인상깊게 남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목표로 하고 반드시 이기고 싶었던 경기는 분명 산왕공고와의 승부에 있었다. 부상으로 인해 경기를 포기해야 할 상황임에도,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던 강백호. 이제야 농구를 알 것 같고, 농구를 정말 사랑한다고 소연에게 당당하게 고백했던 농구 초짜. 그 모습을 합창단의 서두원의 말속에, 그리고 단원들의 눈물속에서 읽을 수 있다.
공일오비의 '이젠안녕'을 부르며, "Oh Captain, my captain!"과 함께 박칼린선생님을 눈물속에 떠나 보낸 남격합창단. 그리고 단원들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시간을 맞았다. 장려상은 아쉬울 수 있었지만, 과정을 함께 지켜 본 시청자에겐 대상을 뛰어 넘는 감동이었다. 최고라는 찬사가 부끄럽지 않은 시간. 충분히 그들은 합창대회의 주인공으로 손색없었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이다. 지금에 최선을 다하고, 지금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빛나게끔 마련이다. 보이는 건 달라도 인생의 무대는 같다. 이제 그들은 또 다른 장소에서, 또 다른 사람들과 또 다른 형태의 하모니를 이뤄 나가겠지만, 남격합창단에서 보여 줬던 열정 그리고 하모니만큼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덧붙여 <남자의자격>도 합창단을 발판 삼아, 시청자에게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유쾌하고 따뜻한 에피소드를 자주 보여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