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악인(惡人)은 만들어진다?

바람을가르다 2010. 9. 25. 09:52






보험설계사를 하며, 부잣집 도련님을 짝사랑했던 젊은 여자가 살해당했다.
겉으론 당당한 척 했지만, 허영이 가득했고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요시노는, 소위 말하는 된장녀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돈을 받고 몸을 파는 행위도 마다하지 않았다.

요시다 슈이치 - 악인(惡人)

1. 그녀를 살해한 자는 누구인가.
2. 왜 살해를 했는가.

이 두 가지를 쫓는 과정에, '누가'가 아니라 '왜'가 궁금해지고, 그 '왜'는 어느 순간 사라진다. 그리고 책을 덮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만든다. 보이는 결말을 향해가는 주인공에 대한 안쓰러움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최선일까. 최선을 고민하는 와중에, 남아있는 책의 두께는 얇아져만 간다.  

결말에 대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식의 감정을 불어넣은 게 얼마인지 모르겠다. 특히나 시간의 공백이 존재하는 드라마와 달리, 책을 읽을 땐 결말을 예상할 틈도 없이 다음페이지로 넘어가기 때문에, 감정이 제대로 개입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런데 <악인>은 달랐다.


예감만큼 무서운 게 있을까.
아니길 바라지만, 지독하게 맞아 떨어질 때 오는 서늘함.
개운하지 않다.
뒷장에 뭔가 더 남아있길 바랬다.
이렇게 끝나면 유이치와 미쓰요가 너무 불쌍하다.

근데 책은 거기서 끝나는 게 맞다.
독자에게 전하고 픈 메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감동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근데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슬프고 아쉽고 안타깝다...
묶어서 여운이라고 해 두자.
그 여운은 제목이 왜 '악인'이어야 하는지 답을 품고 있다.

그렇다면 악인은 누구인가.
요시노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했던 마쓰오?
요시노를 살해했던 유이치?

책속에 나오는 모두가 한 여자의 살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정작 죽임을 당했던 요시노 본인까지도.



사회 안에 개인은, 결국 본인의 감정에 충실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사회와 나를 떨어뜨릴 수 없고, 내가 너를 알던 모르던, 나와 너를 타인의 시선 안에 놓고 구분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거기에 사유와 판단이라는 것들을 개입시킨다.

문제는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있을 지 모르나, 사람의 '감정'에는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자체가 모호하다. 때문에 '나'와 '너'는 때때로 답이 없는 갈등을 빚고, 진실여부를 떠나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일본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를 인상 깊게 봤었다. <악인>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의 주인공 텟베이(카세 료)는, 성추행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만원 지하철 안에서 치한이란 오해를 샀다. 진실을 밝히고자 구치소수감을 마다 않고 법정에 섰으나, 결국 유죄가 확정된다. 반면 <악인>의 주인공 유이치는 이유야 어쨌든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질렀고, 유죄를 선고받을 수 밖에 없다.



죄를 저지른 유무는 다르지만, 저자가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꽤나 닮아 있다. 주인공을 바라보는 등장인물들의 시선 속에, 엇비슷한 사건에 접근하는 평면적인 세상과 사회의 편견을 녹여 현실성있게 다뤘기 때문이다. 주체는 다르지만 객체가 닮았다고 할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주체인 '나'다. 타인에 의해, 내가 억울한 일을 겪으면 곤란하다. '정의'라는 공평한 잣대에 놓인다면, 세상 누구를 막론하고 형평성에 맞는 결과물을 얻어야 옳다. 거기에 사회적 지위라던가, 성별, 직업, 사생활 등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없는 사항들이 개입되면,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데 방해가 된다. 그럼에도 불필요한 내용물을 개별적인 사건에 포함하고, 법의 무게를 사람에 따라 가볍게 혹은 무겁게 만들기도 한다.
 
저자는 악인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내가 악인이 될 수도 있지만, 나를 바라보는 타인에 의해, 내가 악인으로 규정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 진부해서 외면하고 마는 세상의 논리를 얘기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악인>은 수작이다. '살인'과 '사랑'이란 극단적인 매개체를 하나로 묶고 인간의 심리를 조밀하게 전개시킨 것도 좋았지만, 마지막엔 서늘하고 슬픈 무언가를 독자에게 선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아닌 사회라는 틀에 갇혀 무의식적으로 감정을 앞세우는 개인의 시선에 불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