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여우누이뎐, 발복수의 시작?
비록 '동이'와 '자이언트'에 비해 시청률은 낮았으나, 짜임새있는 전개와 풍부한 스토리텔링 그리고 배우들의 호연이 빚어 낸 웰메이드 드라마 <구미호여우누이뎐>이 24일 최종회를 그렸다. 결말은 모든 불행의 단초가 된 초옥(서신애)이만 살아남았을 뿐, 구미호 구산댁(한은정)을 비롯해 주요 등장인물들이 죽음을 맞이한 새드엔딩.
무엇보다 아쉬운 건 마지막회였다. 분명 복수는 이뤄졌건만 2%이상 부족한 밋밋함. 배우들의 고생과 연기력이 받쳐 주지 못했다면, 최악으로 치부하고 싶을 정도다. 복수라는 게 生과 死가 엇갈리고, 거기서 거기일 수 밖에 없다지만, 지난 15회 동안 찰지게 빚어 왔던 내용물이, 힘없이 풀어진 면이 없지 않다.
구미호여우누이뎐, 발복수의 시작?
구산댁 구미호와 윤두수(장현성)의 맞대결로 포문을 연 마지막회. 민폐로 전락한 천우(서준영)덕에 윤두수는 구미호를 제거할 절호의 찬스를 잡는다. 그러나 예스맨 오서방(김규철)의 반란이 윤두수의 발목을 잡는다. 조현감(윤희석)은 윤두수의 살생문서를 입수하고, 그를 패가망신의 길로 인도한다.
그러나 박수무당에서 만물상이 된 미소천사 만신(천호진)에게, 호랑이머리뼈로 만든 단검을 받고, 구미호와 재격돌에 들어간 윤두수. 단검의 위력은 놀라웠다. 보름달의 정기를 받은 구미호가 '손들어 꼼짝마.' 상태에 몰린 것. 적절한 타이밍에 구미호대신 칼을 맞아 주는 센스의 천우. 과묵한 그가 죽기 전에 날린 "연이(김유정) 아씨를 죽인 당신이 괴수로 보입니다!" 구산댁과의 로맨스는 물거품이 되었지만, 할 말은 하고 죽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광기의 윤두수로부터 구미호를 살린 건, 죽은 딸 연이었다. 연이가 나타나자 급당황에 급용서를 구하는 윤두수. 캐릭터가 오락가락하니 죽을 만도 했다. 결국 복수는 구산댁이 아닌 연이의 손에 이뤄진 것. 생각해보니, 복수와 관련되어 구산댁이 한 게 없다. 양부인(김정난)은 윤두수가, 윤두수는 연이가 해치웠다. 구산댁이 한 거라곤, 간당간당한 숨통을 마지막에 끊어 주는 시체처리반 수준.
한은정의 미모와 연기력마저 없었다면, 다른 캐릭터에 묻히고 말았을 복수안에 존재감. 그렇다면 미친존재감 만신은 어땠나. 정말 많은 미스터리를 품고 있었던 그가, 정작 품고 있었던 것은 그에게 간을 빼앗겼던 수많은 영혼이었다. 졸지에 미지근한 존재감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야무지게 윤두수의 간을 빼먹던 모습마저 처량해 보였다. 구산댁마저 상대할 가치를 못 느낀다는 듯, 만신의 트레이드 마크 썩소를 날려 주곤 돌아섰다.
막판 복수의 전개가 상당히 평이했다. 동시에 그 많았던 미스터리가 등장인물들의 설명으로 채워져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 '그런가보다...'쯤으로 해석해야 하는 찝찝함. 그동안의 긴장감이 일시에 풀어진다.
결국 예측 불허의 전개는 막판 예상 가능한 결말을 낳았고, 특히나 마지막에 초옥이 구산댁을 죽이는 깜짝 반전은, 거의 발복수에 가까웠다.
"나는 윤초옥이다! (칼을 들고) 받아라!"
복수에는 남녀노소가 없다는 듯, 구산댁의 심장에 칼을 꽂은 초옥. 윤두수를 붙잡고 보였던 서신애의 미친 연기력은 사라지고, 초옥이는 국어책을 읽고 만다. 이에 지난 여름에 나는 알고 있었다면서, 다정하게 리액션한 의리의 구산댁. 물론 화해가 있고, 용서가 있다. 그러나 굳이 '1년 후'와 발연기를 앞세워, 두 사람을 엮을 필요가 있었을까.
마지막회에서 이뤄진 복수에는 개운함이 없다. 죽은 사람은 많은 데, 슬프지도 않았고 통쾌함도 없었다. 이렇게 간단하게 해치우고 말 복수를 질질 끌어 왔다는 생각도 든다. 복수를 발로 한 것 같은 느낌. 전체적으로 봤을 땐 재밌게 잘 만든 드라마지만, 복수라는 부분만 놓고 보면 옥에 티로 남을 만큼 아쉬움이 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