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여우누이뎐, 구미호보다 무서운 여자?
16일 방송된 <구미호여우누이뎐> 13회는, 왜 이 드라마가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웰메이드 드라마로 손꼽히는 지, 재차 확인시켰다. 구미호란 단조롭고 평면적인 소재를, 풍부한 스토리텔링으로 엮어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곳곳에 배치된 인물간에 첨예한 갈등은, 마치 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하고 스릴이 넘친다.
3회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기에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특히 예측불허의 전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도,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억지가 없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바람이 불 듯 시원하다.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제작진도 훌륭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도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앙상블. 엄지손가락이 부끄럽지 않은 드라마다.
구미호보다 무서운 여자?
13회를 다섯자로 요약하면 '빙의삼매경'. 단순히 초옥(서신애)의 몸속에 연이(김유정)가 빙의된 것만은 아니다. 또한 무당의 몸속에 초옥이 빙의된 장면이 나왔기 때문도 아니다. 바로 등장인물들이 출연하는 장면마다 설득력이 있고, 그들이 그러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존재한다. 사건과 상황에 대한 빙의다. 덕분에 배우들도 연기에 몰입하기 좋은 환경을 맞았다고 볼 수 있다.
초옥의 몸에 들어온 건 연의 혼 뿐이 아니다. 연이가 품고 있는 기억. 기억이란 무서운 것. 스스로 제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 간에, 마음먹은 대로 쓰고 지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연이는 윤두수(장현성)에게 칼을 꽂았고, 침을 뱉었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구미호(한은정)의 복수안에 '연이의 복수'도 가지를 친다. 윤두수에 대한 기억을, 증오와 복수로 분출한 연이. 특히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향해 지은, 초옥이 서신애의 썩소는 백만불짜리.
썩소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만신(천호진)이다. 미친존재감 만신은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해 극적 긴장감의 고삐를 조인다. 여전히 그의 정체는 오리무중. 그러나 갈등을 주도하고, 언제 폭발할 지 모르기 때문에, 그가 등장할 때마다 몰입도가 높아진다. 특히 호러분위기는 구미호로 변신하는 구산댁을 압도할 정도다.
사실 구미호 구산댁은 무섭다기보다 송곳니를 드러낼 때마다 귀엽다. 여우로 변신을 해도 이뻐보일 정도다. 구미호가 무서워야 하는 데, 이 드라마에서 한은정은 눈물이 마를 날 없는 모성애의 절정의 연기를 보여주고, 한복과의 싱크로율마저 상당히 높아, 풍기는 이미지만으로도 섹시함이 연출된다. 한은정이 정말 제대로 구미호에 빙의된 것 같다.
구미호를 통해 채우지 못한 공포는, 오히려 멀쩡한 인간 양부인(김정난)에게서 꾹꾹 눌러 담는다. 한은정에 가려있을 뿐, 사실 김정난의 연기포스는 상상 그 이상이다. 딸아이 초옥을 살리기 위해선, 모든 할 수 있는 또 다른 모성애의 보고 양부인. 김정난은 양부인속에 완전히 녹아있다. 김정난의 연기를 지켜보면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구나 싶을 정도다.
무엇보다 양부인은 백주대낮에도 공포를 조성할 줄 아는 데, 이 때 김정난 표정연기가 압권이다. 특히 오해를 사고 윤두수에게 쫓겨난 뒤, 반은 미친 여자로 돌아와 초옥과 구산댁의 앞에선 모습. 승리의 구산댁을 돌아보며,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는 듯 날린 미소. 드라마를 떠나, 구미호보다 무서운 여자가 양부인 역에 김정난임을 선언하는 순간이다.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은 무섭다. 극중 양부인이 점점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변신이나 특별한 메이크업이 없이도 표정만으로도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는 양부인. 살짝 섹시한 느낌도 있다. 여자가 눈꼬리를 치켜뜨고 표독스럽게 쳐다볼 땐 무섭기도 하지만, 섹시한 느낌도 동반되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은정과 김정난이 드라마에서 잘 보여주고 있는 케이스다.
어느덧 14회를 맞이하게 될 <구미호여우누이뎐>. 인물과 인물사이에 분노가 순환되고, 복수도 따라서 움직인다. 그 복수의 칼을 누구 손에 의해 본격적으로 꺼내 들지, 그리고 누구에 의해 종지부를 찍을 지, 알 수 없는 미궁속으로 빠져 들고 있다. 그것이 <구미호여우누이뎐>의 매력이고, 무서운 진짜 이유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