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구미호 여우누이뎐, 누가 먼저 죽을까?

바람을가르다 2010. 8. 10. 09:30







9일 방송된 <구미호여우누이뎐> 11회에선, 죽은 연이(김유정)의 혼이 초옥(서신애)의 몸에 빙의가 돼, 구미호 구산댁(한은정)의 복수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복수를 매듭짓기 위해 칼을 들고 나타난 구산댁이, 눈앞의 초옥에게서 죽은 딸 연이를 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느끼는 것을 앞서기 마련이다. 반신반의하던 구산댁은, 양부인(김정난)과 초옥(연이)의 대화를 엿듣게 되고, 초옥을 죽이기로 재차 결심한다. 그리고 초옥을 꼬드겨 집안에 가둔 채 불을 지르는 구산댁. "어머니!"를 연신 외치는 연이의 목소리를 외면한다. 연이가 빙의된 초옥이 여우구이가 될 수 있는 긴박한 순간에 11회는 마침표를 찍었다.

물론 예고편과 미리보기에서 알 수 있듯이, 12회에선 초옥의 몸에 빙의된 딸 연이를 알아 본 구산댁이 초옥을 구하고, 눈물의 상봉타임을 가진다. 이어 구산댁은 복수는 접어두고 초옥(연이)과 함께 속세를 떠나려 하지만, 뜻밖에 존재를 만나게 된다고 한다.



구미호 여우누이뎐, 누가 먼저 죽을까?

뜻밖의 존재는 만신(천호진)이 아닐까. 초옥의 몸에 연이가 빙의될 것임을 짐작했던 유일한 인물. 더군다나 초옥의 몸에 연이가 빙의된 사실을 양부인이 눈치챈다. 연이의 혼을 내쫓기 위한 양부인의 방법이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고 할 때, 과연 그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이 만신외에 누가 있겠나 싶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엄청난 결과는 또 무엇일까? 가장 쉽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인간의 모습을 한 초옥이, 새끼 구미호로 또 한번 변신함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것은 구미호의 존재를 모르는 윤두수(장현성)와 양부인에게도 충격이지만, 구산댁에게도 당황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만약 초옥(연이)이 새끼 여우의 모습을 한다면, 사방의 적으로부터 초옥(연이)을 지켜내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즉 구미호의 복수는 물건너가고, 또 다시 구산댁의 눈물겨운 모성애가 필요한 시점으로 돌아간다. 초옥(연이)은 평생 어미 구산댁에게 짐일 수 밖에 없는 존재. 그렇다고 빙의된 연이가 언제까지고 초옥의 몸에 전세를 내고 살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점점 더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접어드는 형국이다.



사실 이러한 결과를 예상하는 것도, 복수극이 지닌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깔끔하게 복수가 끝나면 동시에 드라마도 끝이 난다. 복수는 타이밍이고, 최대한 길게 끌고 가야 할 메인 메뉴이다. 때문에 과정이 치밀하고 스피디하지 못하면, 쉽게 지루한 게 복수라는 아이템이다.

또한 복수의 주체인 주인공이 난관에 봉착하지 못하면, 극적 재미가 발생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발목을 잡는 사건이 끊임없이 재현되어야 한다. 특히 구미호처럼 강력한 파워를 지닌 주인공에겐, 어리고 연약해 보호가 필요한 딸만큼, 약점이 되고 갈등을 부르기 좋은 소스는 없다.

지난 10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우구슬을 품고 돌아온 구산댁이 독하게 마음만 먹었다면, 윤두수일가를 일망타진하는 데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타이밍을 놓쳤고, 12회로 접어드는 현시점에선, 오히려 구미호모녀는 약자로 돌변할 위기에 처했다.



그렇다면 구미호의 복수는 싱겁게 막을 내릴 것인가. 아니다. 명품막장드라마로 통했던 <천사의유혹>의 돌이켜 보면, 복수로 가는 과정이 상당히 스피디했다. 이유는 복잡하게 얽힌 인물들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새로운 긴장감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전신성형으로 돌아온 신현우(배수빈)의 정체, 주아란(이소연)과 그의 동생 주경란(홍수현)의 극적해후, 남주승(김태현)의 출생의 비밀, 그리고 모든 원흉은 현우모(차화란)때문에 벌어졌다는 게 밝혀지기까지, 주아란의 특별한 복수는 없었다. 극 초반에 남편 현우를 살해하려 했던 것 외에는 말이다.

복수극은 미스테리한 사건과 인물들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에 대부분을 할애한다. 실질적으로 <구미호여우누이뎐>의 복수도 마찬가지다. 연이가 죽으면 무슨 이야기가 진행될까를 걱정했던 시청자들. 그러나 구산댁의 복수시작(10회), 초옥에게 빙의된 연이(11회)로 매회 재미와 긴장감을 도출하고 있다.



현재 극중인물들은 서로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구산댁모녀가 여우라는 사실도, 서브인 천우(서준영)와 정규도령(이민호)정도가 인지하고 있을 뿐이다. 가장 충격에 빠질 윤두수와 양부인이 모른다. 최대 이슈로 떠오른 만신의 정체도 오리무중이다. 더군다나 그의 입에서 죽은 천우의 어머니 매향이 거론됐다는 것은, 윤두수일가에 또 다른 후폭풍을 예고한다. 윤두수와 대립각을 세운 조현감(윤희석)도 어떤 연유에서 비롯됐는지 풀어야 할 숙제다.  

'연이가 죽을까?'라는 단조로운 사건으로 8회를 달려왔다면, 나머지는 8회는 구산댁의 복수를 중심으로 숨겨진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하나씩 드러나는 폭발력을 기대케한다. 어차피 복수는 인물들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할 때 풀어야 할 메인요리다. 구미호의 복수가 15,16회에 집중된다고 볼 때, 현시점에 주인공 구산댁의 위기는 필수불가결하다.

다만 <추노>의 미친존재감 천지호(성동일)나 곽한섬(조진웅)의 죽음이 분위기를 환기시켰듯이, 복수극에 걸맞게 누군가의 희생도 필요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희생은 해소가 될 수도 있지만, 갈등의 파이를 키우는 데도 용이하다. 극의 비중을 볼 때, 딸을 위해 악녀가 된 양부인, 흑기사 천우, 혼례를 앞둔 정규도령 등이 유력한 희생양 1순위후보로 꼽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