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초콜릿, 김연아가 버려야 할 것은?
겨울소녀 김연아가 무더운 한여름, 공중파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 짜릿한 시원함을 안겨 주었다. 강호동의 <무릎팍도사>이후,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그녀가, 심야 음악방송 김정은의 <초콜릿>에 깜짝 출연한 것이다.
시크해보이는 블랙의상으로 질문을 시작한 MC김정은과의 토크에서는, 여전히 솔직담백한 그녀의 모습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릎팍도사>와 겹치는 질문이 적잖았다. 음주경험에 대한 질문이 그나마 신선했던 정도랄까.
또한 뻔한 질문과는 별로도, 칭찬위주의 진행에 공을 들인 나머지, 김연아의 대답을 좀 더 길게 끌어내지 못한 김정은의 진행도 아쉬웠다. 오히려 김연아가 부담을 느끼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다. 언니가 동생대하듯이 친근하고 편안하게 이끌었다기 보단, 마치 아이스링크 관중석에 김연아의 연기를 보고난 뒤, 부랴부랴 달려온 팬처럼 들떴던 김정은. 차분함이 2% 부족했고, 지나치게 피겨여왕을 의식하고 말았다.
김연아가 버려야 할 것은?
김정은의 진행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국내는 물론 세계가 인정하는 월드스타 김연아를 초대하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쉽지도 않을 뿐더러, 국민전체가 팬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를, 너무 편한 동생처럼 대했다면 그것이 더 김정은을 곤란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김연아를 바라보는 무거운 시선이다. 김연아를 좀 더 편안하게 바라볼 순 없을까. 국민여동생이면 여동생으로 말이다. 빙판위의 피겨여제.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연아가 아닌, 방송에서 만큼은 친근한 스타 김연아.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김연아의 행보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이목을 집중했다. 김연아는 고심끝에 은퇴는 없다면서, 몸을 만들고 새프로그램을 구성하기 위해 캐나다로 출국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 그녀가 꿈꾸었던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것도 합계 228.56점이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세계신기록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기쁨을 온 국민과 나누었다.
피겨선수로는 이미 모든 걸 이뤘다 볼 수 있는 김연아. 그럼에도 올림픽 2연패라는 또 다른 목표를 위해, 같은 고생을 겪어야 한다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본인이 진정 원한다면 막을 수 없겠지만, 혹여 우리의 기대와 시선으로 다시금 신발끈을 조여야 한다면 말리고 싶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에반 라이사첵(미국)도 향후 진로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는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친구들과 인간관계 등 많은 것을 희생해 왔다면서, 지금은 행복하지만, 수년간 훈련으로 인해 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 누려야 할 때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연아도 라이사첵과 다를 바 없다.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젊은 날을, 김연아도 자유롭게 누릴 자격이 있다. 피겨여왕에 오르기까지 잃었던 것들. 하지 못했던 것들. 그와중에 피겨가 아닌 또 다른 목표를 세울 수도 있다. 이제는 그 길을 열어 줘야 하지 않을까.
김연아의 일거수일투족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네티즌을 보면서, 과연 김연아를 위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딱딱한 얼음위가 아니라면 피겨여왕 김연아가 아닌, 스무살의 김연아를 응원했으면 좋겠다.
김정은의 초콜릿에서 인상깊었던 건, 무대에서 노래하는 김연아였다. 아이유의 '기차를 타고', 나르샤의 'I'm in love', 보아의 '공중정원' 총 세곡을 라이브로 열창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김연아의 가창력은 부연설명이 필요없으나, 이번 무대는 미세한 떨림조차 느껴지지 않아 가수 뺨치고도 남았다. 무엇보다 그녀가 노래하는 동안 무척 행복하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다.
김연아는 노래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지금은 취미일 지 모르겠으나, 가수가 하고 싶다면 가수를 하고, 피겨가 하고 싶다면 피겨를, 또 다른 무언가를 꿈꾼다면 그 꿈을 쫓았으면 한다. 대신 그녀의 머릿속에서 버려야 할 것은 '국민'이다. 반대로 우리도 '피겨여왕'은 잠시 지우고, 김연아만 생각했으면 한다. 그녀가 보다 자유로운 인생을 누릴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