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와, 엄용수 - 왜 1회용 게스트일까?
24일 방송된 유재석-김원희 <놀러와>는 '파란만장 코미디언 스페셜'이란 테마로, 왕년의 개그맨 엄용수, 황기순, 김정렬, 김학래를 게스트로 초대했다. 말그대로 파란만장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평탄한 삶을 살았다고도 볼 수 없는 네사람은, 개그맨 특유의 입담과 의연한(?) 태도로 녹슬지 않은 토크와 몸개그를 선보여 웃음을 자아냈다.
이혼과 재혼의 단골이 돼버린 엄용수는, 시종일관 '결혼'과 '부부', '연애'에 대한 조언을 끊임없이 내뱉었고, 도박의 아이콘 황기순은 스스로를 드라마 '올인'의 주인공, 법무부 소속 개그맨이란 타이틀을 내세워 웃음을 주었다. 한 때 가정불화가 잦았던 개그맨 커플 2호 김학래는 각서이야기를 리플레이했고, 신이 내린 부실한 하체 김정렬은 방송에 나올 때마다 추는 '숭구리당당' 쇼를 또 한번 작렬했다.
그들이 1회용 게스트에 불과한 이유는?
엄용수, 황기순, 김정렬, 김학래는 메인mc 유재석과 김원희의 배꼽을 잡게 할 정도로 자신의 강점을 어필했다. 개그맨들이라 에피소드를 풀어내는 방법이나 핵심을 꼬집는 솜씨도 상당히 능수능란했다. 1회용 게스트가 아니라, 여타 예능에 고정패널로 투입되도 충분히 제몫을 해낼 수준급 입담쇼를 펼쳐 보인 것이다.
문제는 웃음을 끌어낸 에피소드가 재방송을 연상시킬 정도로 식상했다는 사실이다. 도중에 황기순도 말했듯이, 그들은 사골개그를 하고 있었다. 황기순은 여전히 도박으로 웃음을 찾았고, 연하킬러(?) 엄용수는 이혼을 미끼로 자폭개그를 선보였다. 김정렬은 숭구리당당을 빼면 시체였고, 가정사로 웃기던 김학래는 임미숙이 없자 묻히고 말았다.
어찌보면 <놀러와>가 준비한 '파란만장'이란 테마에 충실한 토크를 구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예능방송에서 그들은 '파란만장'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 간다. '파란만장'이 없으면 그들은 할말을 잃는다. <놀러와>에 나온 것처럼 가끔씩 출연해 털어놓으면 재미를 줄 수 있는 소재이나, 반복되면 식상하고 거부감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버라이어티가 아닌 콩트세대인 그들은, 여전히 콩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풀어보면 같은 이야기, 유행어만 있으면 몇 달을 버틸 수 있는 콩트. 엄용수의 이혼, 황기순의 도박 등의 에피소드는, 매일같이 변화와 새로움을 추구하는 공중파에서 써먹기엔 1회용에 불과하다. 특히 잦은 돌발과 임기응변이 요구되는 버라이어티와는 상극이다.
그들이 '파란만장'이란 소재에서, 자신의 아픔을 웃음으로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예전에 콩트를 위해서 외웠던 대본처럼, 머릿속에 웃음 포인트가 박혀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대본이 없는 버라이어티에선 적응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들의 소재는 철저히 행사용이었다. 장소가 매번 바뀌는 행사장에선 신선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공중파의 전국방송을 한 번 타고 나면, 소재의 가치가 뚝 떨어진다. 행사를 위해선, 오히려 공중파 출연을 자제하는 것이 그들에게 득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날 토크신이란 추앙을 받은 엄용수는, 개그맨은 아픔이 있어야 더 큰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괴상한 논리를 내세우며, 행복한 유재석은 점차 퇴보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우스개소리처럼 말했지만, 엄용수 본인만큼은 확고한 철학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혼을 십년 넘게 웃음에 차용하는 엄용수나, 필리핀과 도박으로 어필하는 황기순 등에 비춰 보고, 갇혀 버린 논리에 불과하다. 유재석이 왜 국민MC가 되었는가는 전혀 분석이 되어있지 않다. 즉, 지금의 엄용수가 개그맨으로 버틴 힘은 '이혼'이란 사실을 스스로 인증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자신의 아픔을 소재로 삼고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회용에 불과하다. 다른 재능, 아이템이 있다면, 자신에게 상처가 있더라도 건드릴 필요가 없다. 이혼으로 몇 년째 자폭개그를 선보이는 엄용수나 도박개그를 벗어나지 못하는 황기순, 숭구리당당 김정렬을 보면서, 콩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들의 한계를 만날 수 밖에 없다.
자기 개발이 없으면 치열함속에 버틸 수가 없다. 같은 얘기를 반복하며, 과거의 도둑질을 폭로개그라고 착각하며 찾아간 <놀러와>가 아닌, 차라리 그들에겐 부담없이 예능감을 뽑낼 수 있었던 <가족오락관>이 절실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