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여행스케치의 노래속에 들켜버린 일기장

바람을가르다 2009. 5. 26. 13:28

 

요사이 즐겨 듣는 노래가 있다.

우리들에겐 <별이 진다네>로 잘 알려진 여행스케치.

그들의 노래를 듣다보면 지난날의 일기장을 들춰보는 느낌이다.

죽어버린 감성을 깨우는, 내 마음속 구석에 낯뜨거운 낙서를.

여러 개로 조각나고 어디론가 흩어져 버린 나의 지난 날을 떠올리게 한다.

 

소리없이 내 안에 쌓여가던 질문들.

지금은 한없이 무디게만 느껴지는 뭉툭해진 가시조차,

손끝에만 닿아도 몇 날 며칠을 아파할 수 밖에 없는 여린 날의 청춘.

패기와 열정, 희망 못지않게 좌절과 방황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던 시절에,

서툴렀지만 고맙게도 상처를 닦아주던 따뜻한 내 친구들.

그리고 늘 곁을 지켜 준 노래들.

 

별이 지는 곳에 음악을 심던 여행스케치를 말하다.

 

<산다는 것은 다 그런 게 아니겠니?>

며칠 전, 호프집에서 이 노래를 오랜만에 듣게 됐다.

친구들과 한참 줌마식(?) 수다를 남발하느라, 맥주 거품속에 흘려 버린 노래.

이상한 건, 다음 날 머릿속에 자꾸 머무는 가사 말을 떨칠 수가 없다.

그리고 아직까지.

 

너는 어떻게 살고 있니, 아기 엄마가 되었다면서

밤하늘에 별빛을 닮은 너의 눈빛, 수줍던 소녀로 널 기억하는데.

....
아직도 마음은 그대로 인데
...

 

이 노래는 분명 빠르고 신나는 그런 노래인 줄로만 알았다, 오래 전엔.

근데 참...

시간이라는 거. 환경이라는 거.

그런 것들이 같은 것을 다르게 받아드리게 한다는 걸, 새삼 느끼고 만다.

 

<별이 진다네>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을 정도로

여행스케치의 대표곡이라 부를 수 있다.

언제, 어디서 들어도 가슴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 노래.

별이 쏟아지는 언덕아래 홀로 추억을 벗삼아 얘기하는 한편의 시.

만일 세상에 모든 음악이 사라진해도, 이 노래만큼은 남아주길 바란다.

이 노래만큼은...

 

<난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어>

개인적으로 여행스케치 노래중에 가장 좋아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 참 조심스럽게 다뤄줘서 고맙다.

품으면 녹을까, 들고 있으면 깨질까봐.

그렇게나 마음 졸이는 서툰 사랑에 대한 자기고백.

사람이 만약 누군가를 진실로, 진실로 사랑하게 된다면,

이런 마음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싶다.

 

<눈을 감으면>

사랑을 하게 되면, 눈을 감아도 감지 않아도 그 사람만 생각한다.

그 사람이 앞에 있어도, 옆에 있어도, 보이지 않아도.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 못한 채, 자기 안에서 사랑이라는 두 글자를 지우고 태운다.

짝사랑으로 멈출 수 밖에 없는.

긴 시간이 흘러도 사랑했었노라고 말하지 않겠다는 순진한 노래.

그래서 좋다.

바보같이 순진하고, 안타깝도록 애절해서.

 

<옛친구에게>

여행스케치의 노래속엔 참 비가 많이 내린다.

비가 내리는 밤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참 행복한 일인 거 같다.

살면서 때로 누군가를 추억할 시간이 있다면,

난 화창한 오후의 햇살이 아니라, 모질게 내리는 빗속에 담고 싶다.

잘 해줬다면 내곁에 남았겠지만, 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서툴러서 그랬다고 생각해 줘.

그 땐 내가 잘 몰라서...

 

주옥같은 그들의 음악속에

내멋대로, 내가 좋아하는 그들의 음악을 꼽아본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요즘 학생들은 어떤 음악을 들을까?

<빅뱅>, <원더걸스>, <소녀시대> 등으로 대표되는 또래음악.

접근성이 뛰어난 아이돌의 음악에 둘러싸인 그들에게 또다른 길을 터주는 음악은 없을까.

결코 짧지 않고, 때로는 숨가쁘게 뛰어갈 수밖에 없는 그들의 길에,

따뜻해서 나른하고 그래서, 나무 그늘아래 벤치에 앉아 조용히 그렇게 잠시 쉬었다가.

다시 한걸음 내딛을 땐, <여행스케치>와 같은 친구들이 함께 걸어줘도 좋을텐데.

예전에 내가 그 자리에 그랬던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