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개인의 취향, 왕지혜-절대밉상 될 수 있나?

바람을가르다 2010. 4. 3. 11:38




살다보면 가깝게 지내는 친구나 동료에게 상처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나 믿었던 친구에게 뒤통수를 맞을 경우, 그 쇼크는 상당히 오래 갈 뿐 아니라, 성인군자가 아니라면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현실을 반영하는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시청자는 주인공에 자신을 이입하고 바라보기 쉽다. 당연히 주인공을 괴롭히는 주변인물들을 보면, 짜증나고 화가 난다. 그리고 주인공의 통쾌한 복수를 바란다.


개인의 취향, 왕지혜 절대밉상 될 수 있나?

KBS주말드라마 <수상한삼형제>가 시청률 40%를 오르내리는 데엔, 막장의 정석 제1장 '불륜을 이용하라.'가 먹히기 때문이다. 지긋지긋한 불륜코드는 독할수록 빛이 난다. 여주인공의 주변여건을 최대한 불쌍하게 만든 뒤, 남편마저 외도를 감행할 때 텐션은 폭발한다.

<수상한삼형제>의 일등공신 도우미(김희정). 그녀는 타이틀만 둘째며느리 일 뿐, 이름대로 반식모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돈밖에 모르는 무뚝뚝한 남편 김현찰(오대규)로 인해, 부부관계가 명절보다 적다고 토로한다. 삶 자체가 굉장히 궁핍하다. 자기 일에서 만족을 느끼는 커리어우먼 셋째며느리 주어영(오지은)을 부러워할 만하다.   

그럼에도 별다른 불평없이 현모양처의 길을 걸었던 우미에게,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친구 태연희(김애란)의 개수작이 시작됐다. 친구인 남편을 뺏겠다고 태연이 덤비는 것이다. 남편이란 작자가 태연희의 공세에 무너지고 있었다. 사람에게 육체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 행동인 지를 '현찰-연희'의 불륜커플을 통해 고스란히 안방으로 전달한다.

우미를 의부증으로 몰아간 남편 현찰뿐 아니라 연희에게, 시청자는 쌍욕을 할 수 있는 '까임허용권'을 부여받는다. 막장드라마에 쌍욕을 하면서도 도우미가 안쓰러워 보게 되는 중독성을 불러 일으킨 데엔, 절대밉상 태연희가 있다. 태연희의 존재감이 시청률로 직결된다.
 


<개인의 취향>에서 태연희를 찾으라면, 바로 김인희 역에 왕지혜다. 10년지기 친구 인희는 개인(손예진)의 애인 창렬(김지석)을 뺏어 결혼까지 감행한다. 결혼식 당일까지 그 사실을 숨긴 채로 말이다. 더군다나 개인의 집에 얹혀 살았던 인희다. 개인에게 결혼선물로 침대까지 선물받았던 친구다. 당연히 개인이 친구 인희에게 받았을 상처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럼에도 시청자는 별 감흥이 없다. 인희를 보며 쌍욕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약간의 짜증을 동반할 뿐이다. 태연희는 절대밉상으로 등극했는데, 그에 못지 않은 인희는 시청자에게 그냥 나쁜 친구정도 선에서 타협이 가능한 인물이 된다. 왜 일까?

바로 박개인이 밑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이제 시작했다. 설명이 너무 부족했다. 개인과 인희가 절친하다는 상황이 거의 드러나지 않은 채, 카메라는 배신의 결혼식장을 찾았다. 이것이 밋밋한 긴장감을 도출한다. 결혼식 장면이 지루하기까지 하다.

일단 영선(조은지)보다 인희를 개인의 옆에 바짝 붙여 놓고, 두사람이 겉보기엔 간도 빼줄 수 있는 절친사이임을 짧은 시간내에 최대한 부각시켜놓고 인희가 개인의 뒤통수를 쳤다면, 개인이 받았을 충격, 배신감, 아픔이 시청자에게 좀 더 진하게 와닿을 수 있었다. 인희를 '완전 나쁜 X'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대충 나쁜 X'으로 만든 건 실수에 가깝다.    


1,2회 안에 모두를 담기에 시간이 부족했겠지만, '개인-인희'사이에 임팩트가 적었기에, 배신감도 약하게 번질 수 밖에 없다. 앞으로 <개인의 취향>이 풀어야 할 숙제가 바로 인희다. 박개인과 전진호의 발칙한 동거속 에피소드가 큰 줄기라면, 줄기가 튼튼하게 자라도록 물을 줄 수 있는 건 개인을 괴롭혀야 할 인희다. 인희를 '절대밉상'으로 만들 수 있느냐에 따라 시청률도 탄력을 받는다.

또한 진호와 대립각을 세우고, 개인의 마음을 흔들어야 할 창렬(김지석)은, 지금보다 매력적이어야 한다. 현재 우유부단할 뿐 아니라, 너무 코믹한 설정에 빠져 2% 부족하다. 김지석에게 '추노'의 왕손이만 보인다. 개인의 마음보다 시청자의 마음을 휘젓을 수 있는 남자여야 한다. 동시에 진호의 매력만큼 수위가 올라와야, 시청자도 개인의 선택을 바라보는 재미가 산다.

선택의 폭이 좁다는 건 시청자의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창렬(김지석)의 매력이 진호(이민호)만큼 올라오지 못할 경우, 시청자는 둘 사이를 오락가락할 개인(손예진)을 보며, 짜증만 유발시킬  뿐이다. 채널 돌아가기 딱 좋은 상태로 접어든다.   


<개인의 취향>은 '손예진-이민호'카드로 일단 기대이상의 선방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찬란한유산'을 쓴 작가와 '아이리스'의 여전사에서 된장녀 여검사로 변신한 김소연이 뭉친 <검사프린세스>를 보기 좋게 따돌렸을 뿐 아니라, 국민여동생 문근영의 연기변신에 '서우-천정명'이 뒤를 받치는 <신데렐라언니>와 접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1,2회를 마친 상태라 현재 판도를 속단하긴 이르다. 그러나 <검사프린세스>의 경우, 김소연 원톱이란 사실도 불안할 뿐 아니라, 국내에서 법정드라마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전례를 돌이켜 볼 때, 쉽게 반등이 이루어지진 않을 듯 싶다. 반면 <신데렐라언니>는 문근영과 서우간에 피튀기는 대결구도로 넘어갈 경우, 보다 탄력을 받기 쉽다.  

<개인의 취향>이 성공하기 위한 키워드는, 왕지혜를 절대밉상으로 만드는 것과 김지석의 매력을 이민호 수준으로 끌어올림에 있다. 그래야 손예진과 가짜게이 이민호 동거속에, 해야 되고 풀어야 할 '긴장감'이 담보된 에피소드가 많아진다. 여기에 '동거'와 '동성애'코드를 통해 유머가 스며들면, 시청자의 감정에도 밀당이 생기고, 보는 재미도 상승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