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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 최대 피해자는 이다해?

바람을가르다 2010. 3. 27. 15:15

 

기존의 틀을 깨고, 민초가 중심이 되어 사극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추노>. 숱한 화제를 뿌리며, 인기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두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했다고 평할 수 있다. 여기에는 특히, 주인공 대길 역에 장혁을 비롯한, 주조연들의 명연기가 뒷받침되면서 이뤄진 결과물이었다.

시청자는 매회 호연을 펼쳤던 연기자를 중심으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조연이었으나, 미친 존재감 천지호(성동일), 곽한섬(조진웅) 그리고 반전 카드였던 그분 박기웅 등, 캐릭터마다 매력이 있었고, 연기자들은 이에 부응했다. 드라마에 출연했던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할 만큼, 저마다의 캐릭터엔 존재감이 느껴졌고, 까메오 출연만으로도 이슈가 됐다.


추노, 최대 피해자는 이다해?

'추노'의 일등공신은 누가 뭐라해도, 주인공이었던 대길역의 장혁과 언년이 이다해라고 할 수 있다. 완벽하게 대길속으로 강림한 장혁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드라마는 노비가 아닌, 대길을 좇았다. '추노'가 아닌, '추대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의 밸런스가 무너졌을 때도, 대길만은 흔들리지 않았고 중심을 잡아주었다.

반면 언년이 이다해는, 극초반의 존재감을 끝까지 이어 가지 못했다. 매회 어긋났던 대길과 만나는 순간까지만 해도 언년이는 극의 중심에 있었다. 언년이의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에 올랐고, 그녀와 대길의 재회를 위해 '추노'는 달렸다.

그러나 태하(오지호)와 결혼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삐끗하기 시작한 언년이. '대길-언년-태하'의 러브라인은 급격하게 바람이 빠져 버렸고, 대길은 붕 떠버렸다. '결혼'이란 설정으로 돌이키기 힘든 관계를 맺음으로써, 언년이를 바라보는 기대감이 떨어졌다. 제작진조차 태하와 언년이의 결혼은 실수였다고 밝혔을 정도다.


그 시점이 극의 반환점이었다. 그리고 미약해진 언년이를 대체한 카드가 황철웅(이종혁)이다. 살인귀가 된 철웅이 없었다면 '추노'는 버틸 수 없었다. '대길-언년-태하'에서 '대길-철웅-태하'로 무게중심이, 무리없이 옮겨 간 덕분에 '추노'는 시청자를 붙들 수 있었다.

주연으로 급부상한 황철웅 이종혁은 추노의 최대 수혜자중에 한사람이 되었다. 태하의 부하들이 허무하게 죽어나갔을 때, 황철웅은 빛났고 송태하의 스타일은 구겨졌다. 덕분에 대길이 장혁과 한 배를 탄, 송태하 오지호는 선방했다. 반면 언년이 이다해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대길과 태하사이에서 적절한 포지션을 잡지 못한 채 겉돌았을 뿐이다. 원손마저 없었다면, 그녀는 '민폐' 그 자체로 여주인공이라는 존재감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회의 언년이는 분명 빛났다. 그러나 그 마지막을 위한 언년이의 희생은 너무 컸다. 중간에 거의 그림자모드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언년이 이다해의 연기나 캐릭터 논란은 줄어들었지만, 상대적으로 황철웅, 천지호, 곽한섬, 업복이(공형진) 등에게 묻혀 버렸다. 극후반에 언년이는 여주인공이란 느낌이 살지 못했다.
 
설화(김하은)의 포스가 나와 주었다면 언년이와 윈윈할 수 있었지만, 설화 역시 민페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노래만 불렀다. 언년이와 설화사이에 어떠한 긴장감도 연출되지 못했다는 게 뼈아팠다. 오히려 극후반으로 갈수록, 기생 찬(송지은)과 제니(고주희)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 지에 관심이 쏠렸다.


이다해는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제몫을 했다. 발연기도 없었을 뿐 더러, 한복이 잘 어울려 사극에서 튀는 느낌도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추노'의 초반을 돌풍은 그녀가 담당했었다는 데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여러 차례 노출로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모자이크라는 황당한 설정까지 야기한다. 또한 노비임에도 뽀샤시한 화장과 깨끗한 소복으로 네티즌의 질타도 잇따랐다. 올해의 민폐녀로 등극할 정도로, 캐릭터 논란도 뜨거웠다. 넷상에 언년이 민폐리스트가 돌 정도였다. 이것이 노이즈마케팅 효과를 불렀다. '추노'를 화제속으로 끌어들인 이다해는, 분명 '추노'를 인기드라마로 만든 공신임이 틀림없다.

단지 극중반 이후, 현격하게 줄어 든 입지. 끝까지 수동적일 수 밖에 없었던 언년이는 여주인공으로써 2% 부족했다. 차라리 '민폐 언년'일 때가 시청자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존재감을 과시했다는 사실이 이다해로선 아쉬울 것이다. '추노'만큼 거의 모든 배우가 존재감속에 사랑받았던 적은 드물다. 최대수혜자로 누구를 꼽아야 할 지 헷갈릴 정도다. 그러나 피해자를 꼽으라면, 여주인공으로서 생각만큼 빛나지 못했던 언년이 이다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