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노, 해피엔딩인 이유?
25일 <추노>는 눈물속에 작은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 드라마의 제목이 '추노-도망노비를 쫓다'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마지막회는 강렬했다. 대길(장혁)의 죽음 하나만으로도,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질 정도로 말이다.
황철웅(이종혁)패거리에 맞서, 태하(오지호)와 언년이(이다해)의 길을 터주며 어떻게든 살아서 세상을 바꾸라고 외쳤던 대길. 그래야 우리같은 사람들 안 나온다는 그의 말은, 언년이를 향해 '사랑한다'는 직접적인 표현보다, 강하게 뇌리속을 파고들며 빛났다.
<추노, 해피엔딩인 이유>
민초의 무서움을 알린 업복이(공형진)
'양반과 노비'라는 신분제도의 모순을 역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려 했던 좌의정 이경식(김응수)은, 대표 노비 업복이(공형진)에게 죽음을 맞는다. 또한 이경식의 끄나풀, 노비당의 그분(박기웅) 역시, 업복이의 총구를 피해가진 못했다.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사례가 제대로 적용된 케이스다.
그러나 누구나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꿨던 업복이의 반란도, 관군의 칼과 군화발에 제압당한다. 업복이의 장면속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세상이 있고 사람이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어지는, 우리 사회가 버리지 못한, 부조리에 대한 경고의 메세지가 담겨 있다.
비록 업복이가 사랑하는 초복이 곁을 지킬 수 없었지만, 그녀에게 희망의 빛을 남겼기에 슬프지만은 않다. 업복이는 초복이와 함께 짝귀(안길강)마을에서 행복을 꿈꿀 수 있었다. 그러나 악의 축 이경식과 그분, 변절자 조선비는 누군가에 의해 해결되어야 했다. 태하의 손을 빌릴 수도 있었지만, 뼛속까지 노비였던 업복이었기에 복수는 더욱 통쾌했다.
대길의 죽었기에 해피엔딩이다?
대길은 최장군(한정수)과 왕손이(김지석)이 평생 안돈하며 살 수 있는 집과 땅을 이천에 사두었다. 이 사실을 확인한 최장군, 그리고 왕손이는 눈물을 흘렸다. 여기에 대길이 함께 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이 많은 시청자가 바란 해피엔딩의 그림이다.
그러나 대길은 '태하-언년-석견'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 실질적으로 사랑한 언년이를 위해서가 더 어울릴 지 모르겠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을 수 있다는 건, 아무나 경험 할 수 없는, 어쩌면 가장 행복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대길이는 언년이에게 "니가 살아야 내가 산다."고 했다. 언년이가 죽으면 자신은 살 이유가 없다는 것. 정말 사랑도 무섭고 지독하게 하는 남자가 대길이다. 그렇다면 언년이가 살고, 대길이도 산다면, 그는 행복할 수 있을까. 최장군과 왕손이가 있다한들 말이다. 아무리 친구가 되었다지만, 언년이 곁에 태하를 떠올린다면 더욱 가슴이 아프지 않을까.
언년이와 행복했던 지난 날.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지금. 대길에게 선택을 부여한다면 과거도 현재도 아닌 미래일 것이다. 그 미래란, 언년이와 신분으로 인한 걸림돌이 사라진 세상. 다시 말해, 내일이 아닌 다음 세상일 것이다. 그 시간을 꿈꾸며, 미리 가서 언년이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화(김하은)의 품에 안긴 채, 눈을 감는 순간에도 대길은 웃었다. 그의 죽음은 안타깝고 슬펐지만, 편안하게 보였다. 지랄맞은 세상에 대한 증오도 없었고, 언년이에 대한 마음의 짐도 내려 놓은 듯한 모습. 대길이 더이상 아프거나 힘들어 할 필요가 없으니 다행이다 싶다. 현실이 아닌 드라마이니 더욱 말이다.
<추노>의 마지막회를 보고, 새드엔딩인가 해피엔딩인가에 대해 시청자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림은 새드인데, 인물들 저마다가 희망을 그리고 있어 해피엔딩처럼 느껴진다. 특히 대길이 죽음으로써, 오히려 긴 여운을 남겼다는 사실이, 그동안 <추노>를 보며 실망했던 장면들을 모두 지워 낸 느낌이다. 그것만으로도 해피엔딩이라고 말하고 싶다. 대길이 장혁만 생각해도 드라마의 좋은 기억만 오랫동안 이어질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