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복불복을 고집하는 이유
해피선데이 <1박2일>하면, 가장 떠오르는 것이 '복불복'이다. 크게 '저녁식사 복불복-잠자리 복불복-기상 미션'이란 정형화된 패턴이 있다. 모든 미션과 게임, 벌칙 등에 '복불복'이란 아이템을 적용한다. 그리고 '복불복'이란 단순한 룰을 가지고, '1박2일'은 4년이 넘게 국민예능으로 롱런하고 있다.
1박2일의 상징이며, 효자아이템인 '복불복'을 두고, 최근 들어 식상하다는 비판이 다시금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시청률이 40%에 육박한다고 해서, 제작진과 출연진이 너무 안이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다. 1박2일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박2일, 복불복을 고집하는 이유
예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함'이다. 그것이 미션이든 도전이든, 토크든 '복잡하면' 몰입도가 떨어진다. 단순한 패턴속에서 식상함을 탈피하는 것이, 모든 예능이 매회 가질 수 밖에 없는 첫번째 고민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무한도전'과 '남자의자격'은 도전과제에 변화를 주고, '패밀리가떴다'와 '청춘불패'는 출연진과 게스트에 변화를 준다. 반면 '1박2일'은 여행지라는 장소가 바뀔 뿐, 멤버는 그대로고, 복불복도 마찬가지다.
복불복에 사용되는 게임도 정형화됐다. '가족오락관'포맷이나, 가위바위보, 탁구와 같은 스포츠종목이다. 대중이 잘 알고 있는 단순한 게임만을 고집한다. 단지 복불복의 결과로 멤버들의 희비가 상황마다 엇갈리고, 시청자는 거기에서 재미를 찾는다. '복불복'의 특성상 윈윈이 아니라, 불균형. 승자와 패자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과정의 몰입도가 높아진다.
아무리 아이템이 새로워도, 뼈대가 없고 어수선하면 채널은 돌아간다. 억지에 과장이 섞고 막말이 오가면, 아무리 재밌어도 웃음은 반감된다. 일밤을 몰락시킨 원흉 '대망'이나 날개없이 추락하는 '패밀리가떴다'만 돌아봐도 알 수 있다.
예능은 집중해서 문제를 푸는 시간이 아니다. 예능은 쉬워야 한다. 예능이 복잡하고 어려우면 불편하다. 재미의 시작은 시청의 편안함에서 출발한다. 편안해야 웃을 준비가 된다. 친구를 만나도 마찬가지다. 자주 만나고 통화하는 친구가 편안하다. 특별하거나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쉽게 공감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식상한 '복불복'이 오히려, 작은 재미를 크게 키우는 역할을 한다.
복불복이란 익숙한 패턴이 있기 때문에, '1박2일'은 접근이 쉽고 호응도가 높다. 남녀노소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1박2일'이다. 10대뿐 아니라. 장년층까지 고루 포섭할 수 있는 건 '복불복'과 같은 단순한 룰의 공로가 크다. 내가 재미없거나 식상하다고 해서 변화를 바라는 건, 나이 어린 아이들이나 노년층에 대한 배려차원에서도 생각해 볼 문제다.
지난 시청자투어에서, 참가자들이 '1박2일'을 통해 가장 경험 싶은 것으로, 대부분 '복불복'을 꼽았다. '1박2일'의 상징과도 같은 복불복을 버린다? 그것은 1박2일의 존폐와도 직결된다. 1박2일에서 '복불복'을 좋아했던 시청자들에게 배신을 때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복불복이 식상하다는 이유로, 떨어져 나가는 시청자까지 제작진이 잡으려 할까.
40%의 시청률을 지키고자, 성공여부가 불투명한 새로운 아이템으로 '복불복'을 대체한다면, 오히려 가파르게 추락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제작진으로선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복불복'을 통해 재미를 찾는 다수의 시청자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복불복은 식상하지만, 매회 뽑아냈던 재미는 식상하지 않았다. 그것을 간과하면 곤란하다. 야구에서 3할타자는 톱클래스다. 4할을 치면 야구의 신 취급을 한다. 다시 말해 복불복의 변화는, 4할에 육박했던 해태 이종범이나 두산의 김현수에게, 타격 폼을 바꾸라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관중은 타자의 폼을 볼 게 아니라, 안타를 봐줘야 한다. 복불복이란 패턴을 볼 것이 아니라, 복불복이 뽑아냈던 재미를 떠올린다면, 식상하다는 말이 쉽게 나올까.
시청률 40%도 대단하지만, '1박2일'은 열번 복불복을 하면 최소 4번 이상은 큰 재미를 가져다 주었다. 열번 나와서 열번 다 홈런을 쳐야 한다고 압박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잘 치고 있는 타자 망치는 꼴이다. 선수가 슬럼프에 빠져 기존의 폼을 바꿔야 할 때는, 주변보다 본인이 더 잘 알기 마련이다. '복불복'이란 아이템에 대한 판단도, 아직은 제작진에게 맡겨 둬야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