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노, 지루하게 만든 패턴?
18일 방송된 <추노> 22회에서는, 대길(장혁)과 태하(오지호) 콤비가 황철웅(이종혁)과 그의 일당들과 맞서는 장면이 연출됐다. 도망노비들을 쫓는 저자에 최고의 추노꾼 대길을 능가하는, 철웅의 네비게이션은 대길과 태하의 이동경로를 고스란히 읽고 있었다. 태하가 세자 봉림대군을 만나 원손의 사면을 구하려한다는 사실까지 꿰고 있는 황철웅.
봉림대군은 원손을 옹립하고자 하는 태하의 의중을 읽고는 섭섭할 수 밖에 없다. 다만 숙부로서 원손의 안위를 걱정하던 그는, 인조(김갑수)가 모르게 청나라로 가는 길을 터주겠다고 제안한다. 반정을 도모하려던 태하로서도 다른 방도가 없어졌다. 그의 충복들은 모두 황철웅과 변절한 조선비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그에게 남은 사람은 원손과 언년이(이다해)뿐이다.
이제 <추노>의 포커스는, 태하와 대길이 원손의 안위를 지켜내는 과정으로 좁혀진다. 태하가 꿈꾼 반정은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오히려 그분(박기웅)과 업복이(공형진)가 중심이 된 노비당 패거리가, 그릇된 신분제도를 타파하려 행동으로 옮긴 민초의 반란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이를 반영하듯 선혜청을 습격한 노비당 패거리는 스펙타클한 장면을 연출했다.
노비당이 선혜청을 폭파시킨 덕분에 황철웅이 부른 관군은 발길을 돌렸고, 대길과 태하는 위기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동시에 '대길-태하'와 철웅의 진검승부는 뒤로 미뤄졌고, 상대적으로 노비당에 비해 김빠지는 재미를 부르고 만다. 마지막에 대길과 태하가 날린 주먹의 훼이크는, 그들이 '잘못된 만남'에서 동료이자 '친구'로 거듭났음을 재확인 시켰을 뿐이다.
지루하게 만든 패턴?
마지막 종착역까지 단 2회만을 남겨 둔 <추노>. 드라마가 끝을 향할수록 갈등이 고조되야함에도, 이상하게 '추노'는 맥이 풀렸다. 긴장감에 고저가 없고 평이하다. 분명 맛깔난 대사와 다이내믹한 액션도 있다. 그런데도 몰입은 떨어지고 지루한 느낌마저 준다. 이유가 뭘까?
'추노'가 반복하는 패턴플레이에 있다. 추노꾼 대길은 두사람을 쫓았다. 한사람은 도망노비 태하였고, 다른 한사람은 사랑했던 언년이다. 대길과 최장군(한정수), 왕손이(김지석)가 이 두사람을 쫓았을 때는, 잡힐 듯 잡히지 않았고 만날 듯 만나지 못했다. 제작진의 낚시가 자주 등장했지만, 충분한 긴장감과 재미가 있었다. 문제는 이들이 만나서부터 발생했다.
태하와 언년이가 결혼하면서 멜로라인은 붕괴됐고, 태하와 대길도 치열한 적수에서 동지로 한배를 타 버렸다. 극적 재미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태하와 대길의 캐릭터가 '선'을 의미한다해도, 두사람이 대립할 때 더욱 짜릿함이 있었다. 지금은 '악'을 대표하는 철웅에게, 손붙잡고 함께 맞서는 두사람을 보면, '선vs악'이라해도 각을 세우는 날카로움이 현저하게 무뎌진다.
<여명의 눈동자>의 최대치(최재성)와 장하림(박상원)이 '선'을 대표하지만, 두사람은 극명하게 엇갈렸고, 윤여옥(채시라)을 두고 결코 함께일 수 없는 대립적인 구도를 형성했다. 이점이 극의 재미를 부추긴 반면, '추노'는 '대길-언년-태하'를 한 곳에 묶어 놓고, 제작진조차 어쩌지 못하고 있다. 언년이의 경우, '대길-태하'가 있을 땐 조신하다가, 두 남자가 없으면 눈에 힘을 주고 강한 여인네로 변신을 꾀한다. 언년이에겐 대길과 태하가 민폐로까지 비춰진다.
태하의 부하들이 그렇게 쉽게 죽어나지만 않았어도, 태하가 지금처럼 대길에게 의지할 이유는 없었다. 태하와 대길은 서로 다른 곳 다른 방향에서, 세상을 바꾸고자 기지를 펼쳤을 것이다. 특히 언년이가 원손마마와 홀로 길을 떠났을 때, 대길과 태하가 동시에 나타날 것이 아니라, 대길과 언년이 둘만이 재회했다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대길이는 언년이를 생각하면 눈물짓고, 바라보면 한숨만 쉬고 있다. 두사람간에 어떠한 진전도 없다.
또한 황철웅이 대길과 태하를 쫓는 것도, 이미 대길이 태하를 쫓았던 패턴과 닮아 있다. 전에 써먹은 패턴을 구사하니, 시청자에게 읽혀 버렸다. 새로운 맛이 나지 않을 뿐더러, 긴장감이 동반되질 않는다. 더군다나 황철웅은 제주에서 이미 태하에게 무릎을 꿇었다. 철웅에게 그 치욕적인 장면만 없었더라도, 시청자는 살인귀가 된 그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을 돋았을 법하다. 그러나 태하에겐 상대가 안 된다는 선입견을 심어준 터라, 22회처럼 그가 나타났다해도 위협적으로 느껴지질 않았다.
22회도 짝귀(안길강)와 용골대의 수하의 대결로 문을 열었다. 늘 그랫듯 볼거리가 될 만한 액션으로 시작했고, 마무리도 액션으로 끝맺었다. 중간중간 주막을 비추며 신세타령을 했고, 최장군과 왕손이, 설화(김하은)의 티격태격도 이어졌다.
뭔가 새로운 것을 도모할 수 있는 곽한섬(조진웅)이나 캐릭터의 반전을 꿈꿀 수 있는 천지호(성동일)와 같은 인물들이 제거되고, 전혀 다른 인물들을 등장시켜 가면서, 결국 극의 발전을 꿰하지 못했다. 등장인물들을 죽이고, 새인물 투입하며 이슈만을 쫓았을 뿐이다. 이러한 패턴들은 극을 단조롭게 만들고, 예상 가능한 전개로 인해 재미를 반감시켰다. 시청자들로선 마지막회에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을 지가, 유일한 궁금증으로 남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