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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팍도사, 이승훈의 빛과 그림자

바람을가르다 2010. 3. 19. 14:05




2010 밴쿠버올림픽은 대한민국의 스포츠 역사를 다시 쓴, 잊을 수가 없는 대회로 기억된다.  그동안 월드컵과 하계올림픽에 비해, 국민적 관심이 비교적 낮았던 동계올림픽에 전환점을 맞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메달이 편중된 쇼트트랙에만 관심을 갖기 쉬웠고, 쇼트트랙만 보면 마치 동계올림픽을 다 본 듯 했다.

그러나 2010년 밴쿠버에선 달랐다. 그 중심에 피겨 여제 김연아가 있었다. 세계가 인정한 슈퍼스타 김연아는, 기대에 보답하듯 228.56 점이라는 전대미문의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한 여자계주등에서 아쉬움은 남겼지만, 이정수를 필두로 한 쇼트트랙은 효자종목다운 몫을 충분히 해냈다.


그리고 감히 예상하지 못했던 메달이 스피드스케이팅에서 07학번 트리오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에 의해 터져 나왔다. 스피드스케이팅의 선수층이 얇을 뿐 아니라, 그만큼 선수들에 대한 지원도 여타 빙상강국들과 비교해 낮았기 때문에 메달을 기대한다는 건, 사실상 과한 욕심에 가까웠다. 그러나 선수들의 피나는 땀과 열정이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육상 100M라고 할 수 있는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모태범과 이상화선수가 나란히 우승을 한 것은, 올림픽 역사상 500M를 같은 나라에서 석권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아시아선수는 절대 자유형에서 우승할 수 없을 거란 편견을 깨 버린 마린보이 박태환을 떠올리게 만든 선수가 있었으니, 5000M 은메달, 10000M 금메달의 주인공 이승훈이다. 덕분에 단거리와 장거리를 제패한 한국은 세계가 놀라고, 또 인정하는 빙상강국으로 우뚝 섰다.


무릎팍도사, 이승훈에 스며 든 빛과 그림자

빙상이 낳은 훈남 이승훈이 <황금어장> '무릎팍도사'를 찾았다. 그는 강호동에게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두종목을 모두 하고 싶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그가 원래 정상급 쇼트트랙 선수였으나, 대표선발전에서 넘어지는 불운속에 탈락한 아픔을 겪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바 있다. 그러나 전화위복이 되어, 이승훈은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했고, 7개월이란 짧은 시간을 무색하게 만든 금메달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빙상의 천재. 신이 내린 선수라는 표현외에는 설명이 안 된다. 꾸준히 만미터와 오천미터를 주종목으로 연습해왔던 선수는, 손으로 셀 수가 없다. 특히 이승훈이 금메달을 딴 만미터는, 단 세 번의 공식 출전만에 얻은 결실이었다. 이 정도면 기네스북에 올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아무리 쇼트트랙을 통해 기초체력을 다져 왔다지만, 종목 변경을 통해 7개월만에 세계 넘버 원이 된 것은 실로 기적에 가깝게만 보여진다.

그러나 그런 그가 있기까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땀과 노력이 없었을 리 만무하다. 특히 쇼트트랙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하고, 흘려야 했던 눈물은 그 뿐 아니라 지켜보는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좌절하고 방황할 수 있었지만, 긍정적인 마인드가 잡아 주었다. 그는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트랙을 달리고 또 달린 끝에 얻은 메달이었다.


'무릎팍도사'에서 이승훈이 인상깊었던 건, 그의 땀과 노력이 시간들만은 아니었다. 눈에 띄게 잘 생긴 외모, 자신감에 차 있는 말투였다. 단순히 금메달이 가져 온 힘이 아닌, 인간 이승훈의 매력이었다. 그리고 이제 시작임을 알리듯,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 둘 다 포기할 수 없다는, 그의 욕심과 프로정신에 또 한번 감탄했다.

이승훈 선수가 밥데용이 아닌 크라머와 함께 경쟁적인 레이스를 펼쳤다면, 실수가 없더라도 실력으로 제압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패기와 의지에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만나는 경기가 기다려진다. 승부를 떠나 짜릿한 긴장감이 담보되는 멋진 레이스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빛나는 그를 통해 어두운 그림자도 만난다. 자신의 은메달이 모태범과 이상화의 금메달에 묻혔을 때, 열흘이 십년같았다는 그의 말. 금메달에 대한 욕구를 불러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부인하고 싶지만, 금메달의 욕심은 선수이상으로 국민에게 전염되어 있다. 국민들과 매스컴의 시선은 국가대표에서 메달리스트로, 은메달보단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보다 집중되기 마련이다.

여기서 메달을 따지 못해, 일찍 귀국길에 올라야 했던 선수들을 생각케 만든다. 값진 피와 땀으로 시작된 아름다운 도전은, 스키점프에도 있었고 크로스컨트리에도 있었다. 이밖에도 우리 선수들이 출전한 모든 경기에 알게 모르게 스며 있다. 그럼에도 메달속에 가려진 선수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영화 '국가대표'가 의미있고, 봅슬레이에 도전한 '무한도전'이 아름답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와 스포츠의 만남이, 국민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하는 방법을 일깨운 좋은 사례다. 동시에 국민적 관심을 부르고, 열악한 우리 선수들의 환경과,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는 현실을 꼬집는다. 김연아선수나 이승훈선수와 같은 슈퍼스타가 배출되면, 관련종목의 저변은 확대되고 경제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에 따르는 정부차원의 지원도 마찬가지다. 

밴쿠버의 효과가, 자칫 동계스포츠의 부익부 빈인빈 현상을 심화시키는 것은 아닌 지 우려스럽다. '무릎팍도사'에서 다시 만난 이승훈을 보며 즐거우면서, 한편으론 화려한 조명이 비추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피땀 흘리고 있는 알려지지 않은 선수들을 돌아보게 한다.

이승훈 선수가 금메달을 따기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에 떨어진 후 힘겨운 순간과 새로운 목표를 향한 패기가 부딪는 시소게임을, 지금 또 다른 누군가는 겪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긍정의 힘'을 이야기 한 이승훈선수의 <무릎팍도사> 방송이,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의 메세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