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연예

황금나침반, 질문이 틀렸다

바람을가르다 2009. 5. 16. 01:06

방송전 부터 텐프로 여성출연으로 이슈를 만든
SBS 파일럿 프로 <황금나침반>에 대한 시청을 마쳤다.
프로를 보기전과 달리, 프로를 본 뒤엔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첫테이프를 끊는 게스트의 선정도 쉽게 납득할 수 없을 수 뿐 아니라,
멘토라는 패널들의 게스트에 대한 태도를 보며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왜?

프로그램의 기획의도가
방황하는 청춘의 인생문제 해결을 위해 지혜와 경륜으로 무장한
장년 독설가들이 나섰다.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20~30대 청년들과 이들의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직언과 독설을 서슴지 않을 막강 패널들과의 거침없는 토크.
라고 한다.

기획의도에는 어느정도 맞는 거 같다.
패널들의 게스트에 대한 독설이 김구라를 능가한다,
김구라의 개그를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황금나침반> 패널들이  김구라보다 나은 것은 또 무엇인가?

텐프로의 여성을 두고 벌인 설전을 보자.
한 여자를 먹잇감으로 놓고, 패널들이 돌아가며 물어뜯는다.
굉장히 공격적이고, 말끝엔 날이 서 있다.
무슨 인민재판을 보는 듯 했다.


사람이 사람안에서 바보가 되는 것도 참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녀의 직업은 사회적으로 환영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있다.
그녀는 절대 다수로부터 비판받기 아주 좋은 포지션에 있다.
그러나 그녀가 가진 직업(?)의 질을 떠나,
고민을 상담하는 태도가 아니고, 쌍방향 커뮤니케이션도 아니다.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주입식 독설.

그녀의 태도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였으나,
그녀의 비뚤어진 리액션과 대답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던지는 돌에 맞고 있으면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무리 잘못을 했다고해서, 피투성이 되게 돌을 던져야 하나?
그 돌을 던지는 남자패널들 중에서 돌을 쥘 자격이 얼마나 있다고?
여성 패널들은 무슨 피해의식을 대변하기 위해 나온 듯 보이고.
그럼에도 패널들은 자신들의 속은 철저히 감춘 채, 마치 성자인 양.

"넌 틀렸어!"

그녀가 눈물을 흘리고 나서야,
패널들은 독설을 멈추고, 장밋빛 미래를 심어준다.
상처를 주고 나서, 사탕발림같은 약을 발라준다.
현실적이고 차가운 시멘트같은 얼굴로 접근을 했던 사람들이
마치 승자의 여유를 보여주듯 이상적인, 꿈같은 답을 늘어놓으며 달래준다.

코미디다. 예능프로가 맞다.

술집 나가는 게 좋은 여자가 얼마나 될까?
돈을 잘 벌고 안 벌고 떠나서, 낯선 사람들의 접대를 받는다는 게 좋을 여자가 있을까?
좀 더 유연하고 부드러운 질문으로 접근하면 자신들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지나?
꼭 그렇게 사람을 완전한 바보로 만들고서, 다같이 술잔을 들어야 하나?

반면, 두번 째 나온 게스트 남성에 대해서는 꽤나 호의적이다.
패널들도 이번엔 굉장히 우호적이다.
스튜디오에 웃음이 넘쳐난다.
그 남자는 과연 텐프로 여성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가?
이 프로그램은 진보적인 거 같지만, 굉장히 보수적인 냄새가 강하다.

사람의 가치와 자질은 절대적인 게 아니라, 상대적인거다.
비교평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고민을 얘기할 때는 사람과 사람으로 접근해야지,
직업이나 사회적인 배경, 관습 등에 안경을 쓰고 바라보면 질문과 대답은 똑같다.

다시 말해, 이 프로의 존재는 불필요하다는 결론과 맞닿는다.

전에 컴퓨터 백신을 개발한 안철수씨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그가 말하길,
대답보다는 질문이 중요한 시대라고.
틀에 박힌 질문은 틀에 박힌 대답으로 돌아온다고 말한다.
질문을 하는 사람이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다시 말해 질문의 질이 높아야, 
인터뷰를 당하는 사람이 한번 더 생각해서 답변을 내놓기 때문에
보다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대답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카피하듯 똑같은 답변이 아닌, 다양한 얘기거리로 엮어 풀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혜와 경륜은 고사하고,
마치 마녀사냥하듯이 게스트를 몰아붙이는 패널들의 태도는
이 사회가 안고 있는 왕따문화를 방송이 고스란히 보여주는 꼴밖에 안 된다.

질문이 중요하다.
그리고 질문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이 두가지를 갖추지 못할 바엔 <황금나침반>은 파일럿에서 멈추어야 한다.
패널들의 독선에 빠진 독설을 보기 위해 토론이 필요한 게 아니다.
게스트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선행되어야 게스트의 마음도 열리는 법이다.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 위해, 상대를 이기려고 독한 말을 늘어놓는 건
멘토로 나온 패널의 태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