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노, 짐승남의 눈물은 진했다
<추노>에는 눈물신이 많다. 특히 언년이 이다해는 거의 매회 한번꼴로 운다. 대길(장혁)이와 헤어져서 울고, 대길이가 생각나서 울었다. 보부상에게 겁탈당할 뻔하다 울었고, 자객(윤지민)에게 죽을 뻔해서 울었다. 원손마마 품에 안아 벅차서 울고, 태하(오지호)에게 프로포즈 받아 기뻐 운다. 그리고 대길이 만나서 또 다시 눈물샘을 터트린다. 허나 대길과 태하와 떨어지니, 신기하게도 눈물이 뚝 그쳤다. 홀로서자 강해진 언년이? 재회할 대길과 태하사이에서, 수도꼭지를 틀어놓기 전, 쉬어가는 타임이 맞을 것이다.
언년이야 드라마의 여주인공이라 눈물을 달고 산다지만, 대길이도 그녀 못지않게 울었다. 설화(김하은)이나 철웅(이종혁)의 아내 선영(하시은)보다도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 대길이는 최장군(한정수)과 왕손이(김지석)를 떠올리며 울었고, 죽어가는 천지호(성동일)의 발바닥을 케어하다 울었다. 큰놈이한테 상처받아 울었고,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어 폭발했다. 누구보다 언년이때문에, 나쁜 남자 이대길은 눈물을 쉬지 못했다.
대길이만 울었을까? 아니다. '추노'의 짐승남들은 돌아가며 눈물을 쏟았다. 물론 사람이 죽는 데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면, 짐승남이 아니라 짐승일 것이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추노'속의 남자들은 눈물을 쏟지 않을 수 없었고, 덕분에 명장면으로 꼽히는 상황도 맞이한다.
추노, 남자의 눈물은 진했다
송태하(오지호) - 아내와 자식을 잃은 슬픔
태하는 소현세자의 그리며 눈물을 흘렸고, 동료들을 잃은 슬픔을 참지 못했다. 그러나 가장 그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바로 청나라 군사들에게 아내와 자식을 잃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당시 오지호의 눈물 연기는, 시청자들의 극찬을 받았던 명장면이다. 그가 하늘을 향해 손을 내밀 때면, 신승훈이 생각난다.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아내와 아들 있을 뿐...
곽한섬(조진웅) - 사랑했던 궁녀(사현진)를 잃은 슬픔
한섬과 궁녀는 황철웅으로부터 원손마마를 지키기 위해 도망치던 중, 사랑을 이야기한다. 위기는 티격태격했던 두 사람을 하나로 묶었다. '도망치는 남녀와 쫓는 킬러.' 이것은 수많은 영화가 사랑했던 소재다. 매우 짧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주인공이 된 한섬과 궁녀. 야속하게도 철웅은 원거리에서 창을 던져 궁녀의 목숨을 앗아간다. '너흰 주인공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한섬의 눈물은, 언년이를 그리던 대길이의 눈물보다 뜨거웠다. 궁녀1, 궁녀2도 아닐텐데, 사랑했던 여자의 이름조차 모르고 돌아서야 했던 한섬. 그는 원손을 지키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그 흔한 사랑한단 말한마디 못한체 싸늘하게 식어가는 궁녀를 두고 도망쳤다. 이런 판국에, 태하와 언년이가 주인공랍시고 여유롭게 키스를 작렬했으니 시청자로선 불편할 만 했다.
천지호(성동일) - 아끼던 동생 만득이를 잃은 슬픔
미친 존재감으로 사랑받는 천지호. 그에겐 가족같은 동생들이 있었다. 동시에 동생들에게 왕대접을 받았던 변두리 추노꾼. 반전이라 해도 좋을 만큼 동생 만득이를 잃고 터트린 그의 눈물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 흔한 옷 한벌 못해주고, 엽전만 입에 물려주고만 자괴감. 그리고 그는 진정한 남자였다. 동생들의 복수를 위해, 겁없이 황철웅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었기 때문이다.
이대길(장혁) - 사랑했던 언년이를 가슴에 묻고 돌아서야 하는 슬픔
극중에서 언년이 다음으로 많이 울었던 대길. 2회부터 눈물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언년이와 태하의 커플을 목격한 후, 대성통곡했다. 최장군 앞에선 쿨한 척 하려해도, 자기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 울다가 웃는 게 아닌, 그럼 큰일(?) 난다. 미소를 머금으며 울음을 삼켜야 했던 장혁의 연기는 압권이었다. 삶은 계란먹다가 최장군(한정수)과 왕손이(김지석)를 떠올리며 울었던 장면도 시청자들의 화제를 낳았다. 마치 <미안하다사랑한다>의 소지섭이 라면먹다 울었던 것처럼...
요즘 드라마속 남자캐릭터들도 많이 변한 것 같다. 예전 같으면 남자배우의 눈물신이 거의 없거나 애써 쿨한 척 참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분위기만 잡히면 주조연 가릴 것 없이 눈물을 쏟아낸다. 더군다나 마초본능에 나쁜남자 캐릭터들이, 착한남자보다 더 많은 눈물을 보이곤 한다. 물론 눈물은, 나쁜 남자안에 착한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효율적인 방법이긴 해도 말이다.
여배우의 전유물 같았던 노출과 눈물이, 최근 들어 남자배우에게 고스란히 전염된 듯 하다. '추노'에서, 이제 감췄던 눈물을 흘려야 할 남자는 황철웅이 남아있다. 그리고 아마도 아내 선영때문에 울게 될 듯 싶다. 지은 죄는 씻어야 할 테니까. 하지만 아직은 칼에 피를 묻히기도 바쁜 남자이기에, 극 말미로 가야 흘려도 흘릴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