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추노, 대길이가 민폐가 된 이유?

바람을가르다 2010. 2. 26. 13:25




<추노>의 전개가 더디다는 시청자들의 지적이 잇따르는 요즘이다. 분명 드라마는 앞을 보고 뛰어가는데, 제자리걸음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극의 짜임새를 떠나, 이상하게(?) 맥 빠진 듯, 분위기가 처지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이 이러한 현상을 빚는 걸까?

25일 방송된 16회를 돌아보자. 사랑하는 언년이(이다해)를 두고 이대길(장혁)과 송태하(오지호)의 칼부림이 있었다. 두 사람의 칼날사이로, 목숨을 두려워 않는 언년이의 적극적 개입도  있었다. 언년이의 만류에도, 대길과 태하는 칼을 놓지 않았고 승부를 겨뤘다. 굉장히 드라마틱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긴장감은 생각만큼 따라 주지 못한다. 

대길은 태하에게서 최장군(한정수)과 왕손이(김지석)를 찾았고, 태하는 자신의 부하를 죽인 인물로 대길을 지목했다. 그들은 서로를 오해하면서도 답을 얻지 못한다. 두 사람이 유일하게 아는 것은, 같은 사람(언년이)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서로의 목을 베지 못하는 이유를 만들었다는 정도다.

태하는 대길에게 순순히 잡혀갔다. 이 부분은 납득하기 힘들다. 사실상 두 사람간에 승부는 나지 않았다. 대길이 태하를 잡아갈 염치도 없고, 태하가 잡힌 채 따라가 줄 이유도 없다. 단지 두 사람을 어떻게든 엮고자하는 제작진의 바램이 초래한 결과일 뿐. 대길을 혁명에 동참시키기 위한 계기랄까. 덕분에 조선비에게서 원손을 되찾은 언년이는 그간의 민폐를 벗고, 독립적인 행보를 걸을 수 있게 됐다.

한편 원손을 찾던 황철웅(이종혁)의 칼도 쉬지 않았다. 그는 조선비를 체포해 한양에 입성한다. 이후 포청에 잡혀 온, 대길과 태하를 만나는 행운(?)도 잡는다. 이 삼자대면은 앞으로 세사람간에 펼쳐질 본격적인 구도를 수면위로 끌어올린다. 엔딩신으로 적절한 그림이다.   

그 뿐인가? 노비패의 당수 그분(박기웅)의 실체가 드러났다. 당장이라도 업복이(공형진)를 비롯, 노비들의 손에 연장 들 준비를 마쳤다고 볼 수 있다. 또한 17회에는 천지호(성동일)가 감옥에서 만난 대길을 구해주겠다고 큰소리치고, 동생들을 죽인 황철웅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미친 존재감의 생사가 또 다시 황철웅의 칼끝에 달렸다.     

16회를 보면,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앞으로 추노가 달려 갈 사전작업의 대부분이 이뤄졌다. 그럼에도 시청자의 기대치가 반감된다. 이유가 뭘까?


혁명의 걸림돌은 대길?

<추노>는 12회까지만 해도 굉장히 스피디하고 박진감이 넘쳤다. 그 중심에는 대길의 추노패가 있었다. 이들은 태하를 잡기 위해, 여러 루트를 거치며 그의 숨통을 조여갔다. 그리고 그들은 몰랐지만, 시청자는 알고 있었다. 대길이 태하를 잡는 것은, 곧 언년이와 재회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추노패의 존재는, 사실상 대길이가 언년이를 찾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리고 12회에 이르러, 그는 언년이를 찾았다. 13회에는 태하와 언년이의 첫날밤마저 지켜봤다. 이것은 대길에게 사형선고와 같다. 사랑했던 언년이를 찾았지만, 그녀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기 때문이다. 이에 대길은 추노꾼이길 포기한다. 제목이 '추노'이고, 주인공이 '대길'이라면 드라마는 여기서 끝났어야 했다.

그러나 그 시점은 <추노>의 반환점에 불과했다. 극은 이후 '추노'가 아닌 '혁명(반정)'이 중심이 된다. 그렇다면 제작진은 대길을 어떤식으로든 혁명속에 끌어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유가 빈약하다. 물론 대길이 여종 언년이에게 말했었다. 과거에 급제하여 세상을 바꿀 것이란 얘기를 했었다. 그리고 그녀와 평생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허나 대길의 목적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닌, 신분차이로 언년이와 떨어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세상을 바꾸는 게 목적이라면, 큰손이가 불을 지르기 전에 벼슬에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대길은 언년이에 대한 사랑때문에 공부에 소홀했고, 시험에 합격하겠다는 의지보단 언년이와 평생 살 방법을 궁리하던 캐릭터다.  

대길이가 세상 돌아가는 것 따윈 관심없이, 피눈물없는 추노꾼이 된 것도 언년이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이제와 그가 혁명에 참여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 부분에 대한 개연성을 찾지 못한다면, 극에 대한 몰입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제작진이 택한 방법은, 왕손이와 최장군의 생사를 담보로 시작됐다. 대길이를 언년이남편 태하와 싸움을 붙이고 정들게 한 뒤, 철웅에 대한 반감을 심는 형태로 그를 혁명에 직간접으로 가담케 하려는 듯 하다. 그러나 이 장치는 대길이가 언년이를 찾기 위해, 추노를 해왔던 임팩트보다 떨어진다. 한 여자를 찾기 위해 모든 걸었던 남자가, 갑자기 혁명군이 된다?

대길이란 캐릭터 속엔 '언년이=혁명'이 같은 무게감을 가질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 언년이의 가치가 훨씬 무겁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언년이가 태하의 품에 안착한 후, 대길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현재 붕떠버린 대길의 캐릭터를 장혁의 눈부신 연기로 커버하는 실정이다. 

최근 제작진은 대길이가 태하와 함께 혁명의 중심이 되게끔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때문에 극의 전개가 더딜 수 밖에 없다. 언년이에게 빠져 있던 대길에게, 혁명에 참여할 명분을 심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혁명을 꿈꾸는 태하와 그 부하들이 미리 선수를 쳐 버리면, 대길이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덕분에, 황철웅이 칼에 쉴새없이 피를 묻혀가며 개고생 중이다. 바로 대길이를 위해서다. 졸지에 대길이가 드라마 전개를 더디기 한,  민폐끼친 상황이 된 것이다.

황철웅이 칼날을 세워, 혁명이 정체된 것이 아니다. 언년이에 빠져 있던 대길이가 각성할 시간을 철웅이 벌고 있는 것이다. 단지 안타까운 건, 시청자가 제작진의 작업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시에 대길이가 태하를 도와 혁명에 참여한다해도, 언년이를 찾기 위해 추노꾼으로 살았던 대길이를 시청자가 지워내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말 그럴듯한 이유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더욱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