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유재석vs길' 누구 명예가 훼손된 걸까?
20일 방송된 무한도전 '법정공방 죄와 길' 1편은, 상당한 호기심을 자극시킨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법정을 TV속으로 끌어들인 것은,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과 같은 드라마나, <TV로펌 솔로몬>과 같은 (교양+예능) 프로그램 등에서도 이미 다룬 바 있다. 그러나 해당 프로그램 '멤버들'간에 벌어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리얼예능'으로 풀어냈다는 점이 이채롭다.
법이라는 딱딱한 소재를 예능을 풀었을 때, 어떤 효과가 발생할 수 있는 지 <무한도전>은 제대로 보여주었다. '무도'가 가진 힘만으로, 단순히 유쾌한 재미만을 담보하지 않았다. 지난 8월에 있었던 '길의 방뇨사건'을 두고,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가 이뤄졌고, 진실공방이 뒤따랐다. 유재석과 길을 피고와 원고로 세웠고, 예능으로 풀었기 때문에 법정이라는 딱딱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지루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는, 무의식적으로 관련법을 알기 쉽게 터득한다. 어떤 사건에 대해, 누군가 '사실'을 말했다해도 상대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으며 소송을 당할 수 있다. 이에 따른 맞고소(반소)를 취한 사례도 접했다. 물질적, 정신적으로 나뉜 피해 보상의 범위라던지, 통상손해와 특별손해를 배운다. 그리고 박명수나 정형돈과 같이, 법정에서 막말이나 폭력을 행사하면, 감치(퇴정)당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시청자를 배심원으로 만든 '유재석vs길' 법정공방
"무전유죄, 유죄무전?"
길(본명 길성준)이 술에 취해 방안에 오줌을 쌌다고, 방송을 통해 폭로한 유재석에게 명예훼손으로 10억원을 요구했다. 그는 공인이자 랩퍼로서 '오줌싸개'는 치명적인 이미지 손상을 가져왔으며, 치킨 CF계약이 무산됐고, 어머니에게 혼나고, 연인 박정아가 덜 만나준다며 하소연했다. 무엇보다 자신은 절대 방안에 실례를 한 적이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한마디로 유재석이 허위사실을 유포해 본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정신적, 물질적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싼 걸 쌌다고 했을 뿐."
유재석은 길이 방뇨를 했다고 확신한다. 또한 예능에서 존재감이 나약했던 그를, 시청자에게 보다 가깝게 연결되도록 '오줌싸개'라는 캐릭터를 입혀준 것이라며 반박했다. 더군다나 현재의 길이 예능에서 빛을 보게된 것도 사실상 유재석의 도움이 상당부분 차지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만들 수 있는 소송을 제기한 길에게, 반소를 했다.
원고 길에겐 박명수, 정준하에, 미모의 여변호사 최단비가 합류했다. 반면 피고 유재석은 정형돈, 노홍철과 장진영 변호사로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그리고 이들의 첫번째 공판이 이뤄졌다. 초반 팽팽하게 진행되던 전개는, 정형돈과 장진영 변호사의 날카로운 질문속에 피고 유재석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됐다. 또한 증인으로 깜짝 출석한 김태호PD는 길의 방뇨를 봤다고 털어놨다. 그의 증언에 신빙성이 더해지며, 길의 방뇨는 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다음주에 방송될 2차 공판에서, 코너에 몰린 길의 증인으로 이효리, 김제동이 출석하는데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들이 남아있어 여전히 사건은 미궁속에 있다.
이번 코믹 가상재판을 통해 가장 주목할 점은, 진실공방 결과를 다음주로 미뤄 놓고 <무한도전>이 시청자에게 던진 질문이다. 길의 방뇨여부를 떠나 길과 유재석이 제기한 '명예훼손' 측면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줌싸개'라는 캐릭터를 통해 길이 얻은 득과 실, 그리고 과연 유재석이 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볼 수 있을까. 물론 예능에서 가상으로 꾸민 일이나,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다. 또한 비슷한 사례가 우리 주변에 일어날 수도 있다. 단순히 직장이나 학교 등만 떠올려도 접근이 쉬워진다.
무엇보다 배심원에 의해 결정되는 '국민참여재판'이 국내에도 도입된 상황이다. 현재 시청자는 상황에 따라 누구나 배심원이 될 수 있다. 간접체험의 기회를 <무한도전>이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피고와 원고가 유재석과 길이 아닌,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법정공방을 치뤘다고 가정할 때, 명예훼손의 측면을 어디까지 볼 것인가. 당사자와 별개로, 시청자가 배심원의 입장에 선다면, 상당히 재미있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일반시민에게 법이란 존재는 불편하고 멀리하고 싶은 대상이다. 그러나 룰을 만들고, 겪고, 지배하는 대상은 결국 사람이다. <무한도전>같이 국민들에게 화제가 되는 프로그램에서, 이번 '법정공방 죄와 길'편을 다룬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유쾌했던 재미와는 별도로, 귀로만 듣고 눈으로 보지 못한 '명예훼손'을 접한 시청자에겐 더욱 그렇다. 한번쯤 생각이 스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