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추노, 제작진의 실수

바람을가르다 2010. 2. 19. 13:57




추노 14회에서는 도망노비 태하를 잡으러 간 왕손이(김지석)가, 황철웅(이종혁)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최장군(한정수)마저 살인귀가 된 철웅의 칼에 생명을 보장받지 못했다. 이를 두고 시청자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왕손이와 최장군이 설마 죽었겠느냐?'며 제작진의 낚시로 보는 시각과, '피를 좋아하는 제작진에 의해 제거된 것이 확실하다'는 의견으로 양분된다.


왕손이는 죽은 것이 확실하다. 지붕뚫고 하이킥을 날린 황철웅이 왕손이에게 물었다. 배후에 누가 있느냐고. 그러나 왕손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철웅은 자신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은 자는 모두 죽였다. 왕손이가 예외가 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최장군의 경우는, 아직 죽었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철웅의 서슬퍼런 칼이 최장군의 심장이 아닌 어깨를 향했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최장군에게 부활의 기회를 줬다고 볼 수 있다.  


왕손이가 죽은 이유?

언년이(이다해)와 송태하(오지호)의 관계를 눈으로 직접 확인한 대길(장혁)은 좌절했다. 그리고 언년이를 찾기 위한 수단이었던 추노질을 더이상 할 필요가 없어졌다. 대길은 추노꾼으로 삶을 접겠다고 최장군에게 언질했다. 더 이상 도망노비 송태하를 쫓을 이유도 없어졌다. 더군다나 옛사랑 언년이의 남편을 잡고 싶지 않았던 것. 

'추노'에서 '반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상황이다. 대길을 반정속에 끌어 들여야 한다. 아니, 송태하속으로 끌어 들인다가 맞을 것이다. 대길은 반정에는 뜻이 없다. 단지 태하의 세상바꾸기를 방해할 수 밖에 없는 인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이것은 대길과 태하사이에서 갈등하는 언년이를 중심으로, 또 한 축의 틀을 잡는 구도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왕손이가 희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예고에서 알 수 있듯이, 대길은 왕손이와 최장군이 철웅이 아닌, 태하에게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오해'는 드라마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템이다. 그리고 대길의 오해는 극을 끝까지 달리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언년이와 태하의 혼례는 제작진의 실수?

왕손이를 죽이고, 최장군의 숨통을 끊어 놓기 직전까지 몰아간 제작진. 분명 긴장감이 극에 달해야 함에도 생각보다 미진하게 느껴진다. 이유는 이들의 희생이 있기 전, 극 전체가 이미 다운되었기 때문이다.

14회 시작과 동시에, 언년이가 대길이 살아있음을 알게 되고, 그의 등뒤에서 눈물을 쏟는 애절한 장면이 이어졌다. 그러나 생각보다 슬프지가 않다. 분명 이다해의 눈물연기는 칭찬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그럼에도 아프게 다가오지 않았다. 

제작진의 실수는, 바로 태하와 언년이의 혼례를 급하게 올린 데 있다. 일반적으로 드라마는 여성이 많이 보지만, '추노' 남성의 비율이 오히려 높을 정도다. 그만큼 남자 시청자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언년이(이다해)에 대한 로망을 키우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언년이는 대길이 아닌, 태하와 혼례를 치뤘다. 러브라인의 진행이 아닌 마침표를 찍은 격이다. 대길은 그들의 신혼 첫날밤을 목격까지 해버렸다. 대길도 허탈하지만, 시청자도 마찬가지다.

대길을 중심으로 몰입하는 시청자로선, 더이상 언년이에 대한 미련이 없어지게 되버렸다. '추노'를 보며 누구보다 대길과 언년이의 재회를 바랬던 시청자들로서는, 태하와 언년이의 결혼으로 맥빠질 수 밖에 없다. 동시에 언년이에 대한 로망도 거품처럼 사라졌다. 이것은 제작진의 명백한 실수다.

굳이 혼례가 필요했을까? 혼례라는 설정이 없더라도, 언년이는 여러차례 목숨을 구해 준 태하와 첫사랑 대길사이에서 충분히 갈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의 갈등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대길의 근처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정도다. 그들이 만나야 할 필요성이 희미해져 버렸다. 불륜코드도 아니고, 남편이 버젓이 살아있는 언년이에게, 대길이 사랑을 끝까지 품는다면 바보로 보일 지경이다. 

애달픈 언년이의 눈물이 슬프지 않은 이유다. 이다해의 잘못이 아니라, 언년이에 대한 로망을 제거해버린 제작진의 잘못이다. 민폐보다 못한 유부녀로 전락시킨 제작진의 실수가, '추노'의 러브라인을 김새게 만들었다. 최소한 태하와 언년이의 신혼 첫날밤에, 대길이 나타나는 추한(?) 모습을 연출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리 '추노'가 길거리 사극을 표방하며, 정치를 풍자하고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해도, 러브라인을 무시할 수 없다. '대길-언년이-태하'의 삼각관계 또한 인기드라마로 만든 바탕이었다. 보다 섬세하게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어야 긴장감이 높아지지 않았을까. 태하와 언년이를 바라보며 흘린 대길의 눈물이 마침표가 된 듯한 지금. 언년이가 대길에게 돌아온다해도 반갑지 않은 상황이 됐다.

러브라인에 대한 기대치를 스스로 갉아먹은 제작진. 과연 얼마나 대단한 볼거리로 시청자를 붙잡을 수 있을 지, 다소 우려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