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이 있다',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지난 하반기 최고의 이슈를 불러 온 남자배우는 단연 이병헌이었다. 블록버스터 첩보드라마 <아이리스>가 대박을 쳤고, 덕분에 연말대상까지 거머쥔다. 비록 조연이었으나, 스티븐소머즈 감독의 영화 <G.I.Joe 지아이조>에 출연, 헐리우드에 성공적인 첫발을 내딛었을 뿐 아니라, 속편 출연까지 약속받았다. 월드스타로 도약할 최소한의 기반을 다졌다는 점에서 배우 이병헌에겐 의미있는 한해였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KBS는 설특집 한류기획 <이병헌이 있다>를 제작, 13일 방송했다. 그러나 정작 내용은 특집이란 말에 걸맞지 않게 졸속으로 만들어져, 시청자의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민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인간 이병헌의 모습은 볼 수 없고, 브라운관을 통해 이병헌 쇼케이스를 하듯, 스타띄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작위적인 그림이 여러차례 잡혔다.
'스톰쉐도우(이병헌)'가 헐리우드안에 한류를 이끈다?
기획의도는 한류스타 이병헌을 통해, 현재 한류가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를 짚어보려는 듯 커다란 밑그림을 내세웠다. 그러나 정작 시작은 대한민국 '식스팩 열풍'이 이병헌에서 시작됐다는 말도 안 되는 포장으로 포문을 연다.
복근은 시작에 불과했다. 흥행이란 말을 붙이기엔 그럭저럭 성공을 거둔 '지아이조'를, <트랜스포머>와 같은 선상에 올려 놓았고, 이병헌이 맡은 스톰쉐도우를 미화하기 위해, 현지 가정집을 찾아가 아이들에게 가면을 씌우고 칼싸움을 재현시키는 장면은 촌스럽기 짝이 없었다. 또한 이병헌이 성룡을 뛰어넘을 아시아스타가 될 것이란 현지인의 인터뷰는, 한국에서 건너 온 제작진을 위한 립서비스로 비춰지기 충분했다.
스티브소머즈 감독을 찾아간 장면도 매끄럽지 않았다. 형식적으로 임하는 듯한 부자연스러운 감독에게서, 특별한 에피소드를 뽑아내지도 못했다. 감독도, 이병헌도 방송을 의식한 모습에서, 제작진이 무리하게 섭외한 인터뷰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연이은 헐리우드 관계자들의 인터뷰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측 관계자들과 확연히 구분될 정도로, 제작진이 아무리 미화하려 해도 이병헌은 아시아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각인시킨다. 헐리우드 스타로 만들기엔 부족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낸 꼴이었다.
이제 막 헐리우드 발을 내딛는 신인에 가까운 이병헌에겐 칭찬도 중요하지만, 보다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봐 줄 인터뷰이가 없었다는 점에서 객관성을 잃었다. 초반에 제시했던 현재 한류의 위치를 바라볼 생각따윈 없었고, 거품이 빠지기 시작한 한류를 터지도록 부풀리는 데 한 시간을 할애했다. 낯뜨거울 정도의 미화와 어색하게 짜 맞춘 그림들의 연속.
유일한 볼거리는, 연말대상식 이후 어머니에게 감사한다, 사랑한다고 말한 이병헌의 사람냄새나는 인터뷰뿐이었다. 그동안 연기를 통해 받았던, 트로피를 닦는 그의 모습이 민망하긴 해도, 인간 이병헌을 그나마 읽을 수 있었다.
시청률 4%가 나올 만했다. 이병헌은 있었는데, 재미는 없었다. 스타는 있었지만 시청자의 공감대는 없었다. 그만큼 작위적이고, 조잡했으며, 졸속기획으로 짜여진 설특집이라 아쉬울 수 밖에 없다. 아무리 화려한 척 해도 한류는 썩고 있다. 상처는 건들지 않고, 모든 희망은 '이병헌에 있다'는 포장방송의 전파낭비를 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