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의 롤모델, '유재석-강호동'보단 2인자?
버라이어티에 발을 담고 능력을 보이기 시작하는 예능인들은 궁극적으로 '차세대MC'를 꿈꾼다. 그리고 그들은 저마다 목표의식이 있고, 누구와 닮길 원한다. 그들에게 롤모델은 하나같이 똑같다. 유재석선배님 혹은 강호동선배님. 마치 초등학생에게 커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냐고 물었을 때, '대통령'이라고 답하는 것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예능계가 춘추전국시대라면 모를까. 정상에 위치한 두 거물을 롤모델로 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전성기. 지지 않을 것 같은 유강시대에 가장 빛나는 별을 쫓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차세대 MC가 되기 위한, '과정의 롤모델'이 유재석, 강호동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현재와 같이 예능 MC의 T.O가 꽉찬 상황에선 더욱 그러하다.
2인자에게서, 롤모델을 찾는다?
차세대 MC를 꿈꾸는 이들에게 가장 좋은 교과서는, 바로 예능계의 2인자들이다. 대표적으로 '신정환-박명수ㅡ김구라-이수근'. 이들은 2인자의 계보를 잇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뚜렷한 개성을 바탕으로 MC타이틀을 거머쥔 사람들이다.
신정환
한 때 2인자로 최고의 주가를 달렸다. 애드립만큼은 유강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신이 내린 혀'를 가졌다. 주연 못지 않은 존재감. 영화든 드라마든 조연이 빛나면 뜨게 되있다. 그가 출연한 예능프로그램은 언제나 중박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애드립은 녹슬기 시작했고, 개인기는 마르고 있다. 여기에 각종 사고가 겹치는 악재가 뒤따랐다.
그러나 <일밤> '단비'에서 하차한 몰락한 예능 귀족 탁재훈과 달리, 신정환의 포지션은 메인보단 서브에 가깝기에 여전히 매력적인 카드다. 애드립뿐 아니라 몸드립이 가능한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지금 그에겐 탁재훈보다 강한 고양이가 필요하다. '제리'로 빛날 수 있는 신정환은, 강호동과 같은 '톰'을 만난다면 언제든 치고 올라갈 수 있다.
박명수
<무한도전>과 <해피투게더>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유재석과 함께 일 때 빛난다. 동시에 유재석이 없으면 빛을 잃는 반쪽짜리 2인자. '예능의 2인자'보단 '유재석의 2인자'에 가까워, 스펙트럼이 넓은 신정환과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에겐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호통개그의 라이센스를 인정받고 있는 것. '동안클럽'에 이어, '에코하우스'에서 이휘재와 호흡을 맞추는 박명수. 메인인 둘사이는 여전히 어색하게 삐걱거리고, 프로그램은 포장할 게 없다. 차라리 이휘재없이 박명수로 끌어가는 게 그림은 어수선해도 재미는 살지 않을까. 이휘재의 정리는 예능보다 교양에 가까워, 박명수는 물론 <개콘>멤버들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거성쇼>를 진행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케이블이기 때문이다. 그가 부담을 떨쳐 내기 적당하다. 정작 그에게 필요한 건 유재석이 아니라, 자신감이다.
김구라
<세바퀴>나 <일밤> '우리아버지'의 김구라는 얼핏 메인MC로 보이나, 이휘재와 박미선, 신동엽의 서브에 가까운 역할을 담당한다. 공중파 입성 후 갈고 닦은 것에 비해, 인터넷의 업보가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절친노트>를 통해 메인의 역량을 보이기도 했으나, 그가 간판 역할을 하기엔 '아직'이란 단어가 붙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김구라의 장점은 무리를 하지 않음에 있다. 애써 메인을 고집하기보단, 프로그램에 맞게 변신할 줄 아는 유연함을 보인다, 메인과 서브의 경계선을 차분하게 지워내고 있다. 그가 메인MC의 자리를 꿰차도 어색하지 않게끔, 대중이 인식하는 '김구라'에 대한 경계선을 허물고 있다.
막말과 독설의 아이콘으로, 예능이 독해지는 데엔 그의 공로(?)도 무시할 수 없다. 드라마에도 좋은 남자, 나쁜 남자가 있다. 리얼버라이어티는 드라마의 공식을 쫓고 있다. 예능에도 악역이 필요할 때, 그는 블루오션을 뚫었다.
이수근
새롭게 부각된 2인자가 바로 <1박2일>의 이수근이다. 기본적인 애드립은 물론, 앞잡이 캐릭터를 통해 리얼버라이어티에 2인자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1박2일>에서 그는, 메인MC 강호동이 앞에서 끌 때, 뒤에서 미는 실질적인 보조MC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시청자뿐 아니라, 예능계의 대부 이경규로부터 '차세대 MC'로 지목되는 등, 내외적으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호의적인 것도 '앞잡이'의 미래를 밝게 한다.
프로그램 전체를 맡기엔 이르지만, 센스나 성장속도를 볼 때 가장 주목되는 차세대 MC임은 틀림없다. 다만 모든 급하면 체하기 마련. 현재는 2인자가 어울린다. <상상플러스>와 같은 집단 MC체제에서, 서브로 보다 많은 내공을 쌓아야 한다. '최고의 2인자=메인MC'는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시간이 필요하다.
예능은 과거와 달리, 굉장히 세분화되고 있다. 대세가 돼버린 리얼버라이어티 <무한도전>과 <1박2일>만 보더라도, 각자의 역할이 나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본적인 외모에 애드립만 적당하게 구사할 수 있으면, MC타이틀을 꿰찮던 시절은 갔다. 신동엽, 이휘재, 김용만 등을 배출했던 2세대들과 닮을수록 MC로의 진입은 힘들어졌다.
유재석, 강호동을 닮겠다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현재 예능계는 똑같은 물건이 필요한 게 아니라, 새로운 충격, 다양성을 추구한다. 바로 개성이 중요해진 상황이다. 김제동의 케이스에서 알 수 있듯이,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 똑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MC가 필요하다. 차세대MC의 롤모델은 완성된 '유재석-강호동'이 아닌, 개성이 넘치는 2인자들에서 찾는 것이 현명한 시점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