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노' 로맨스의 희비, 막장 반전 필요했을까?
추노 10회는 쫓고 쫓는 길 위에 복수의 씨앗들을 뿌리고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 한편의 로드무비를 연상시켰다. 여기에 수려한 절경속에 액션과 로맨스가 적절히 가미되어, 눈을 뗄 수 없는 볼거리와 긴장감을 선사했다.
로맨스의 희비
소현세자의 유일한 핏줄 석견을 자객이 되어 나타난 황철웅(이종혁)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던 곽한섬(조진웅)과 한상궁(사현진). 그동안 한섬이 배신자의 멍에를 쓸 수 밖에 없었던 건, 옥중 상관 송태하(오지호)의 명령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그는 훈남으로 거듭난다. 궁녀는 다른 남자를 품을 수 없다는 한상궁의 말에, 세상이 바뀌게 될 것이라며 프로포즈를 감행한 한섬.
김춘수의 시 <꽃>처럼 한상궁의 이름을 알고 싶고 불러주고 싶었지만, 철웅의 죽창이 한섬의 꿈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한섬은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아는 무사였다. 사랑했던 여자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채, 석견마마의 안위를 먼저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시대의 인물이자 조연의 운명. 그러나 한상궁을 보내는 한섬의 눈물만큼은 뜨거웠다.
한섬과 달리, 관군의 화살로부터 혜원(이다해)의 목숨을 구해 준 송태하(오지호). 역시 주연은 달랐다. 더이상 민폐를 끼칠 수 없다는 혜원의 손을 잡아주며, 기본 스펙이 되는 남자가 할 수 있는 가장 고난도의 프로포즈를 작렬한다. 그리고 석견을 보호하기 위해 먼저 떠난 자리에, 무사의 검을 놓고 가는 센스. 태하의 검을 자식마냥 돌보는 혜원. 그녀에게 대길(장혁)의 돌멩이따윈 잊은 지 오래.
철웅으로부터 위기의 곽한섬과 석견을 구한 송태하. 인정사정 볼 거 없이, 물방울위에 검을 적신 태하와 철웅. 주고 받은 검속에 쌓여가는 우정? 승리의 태하는 철웅을 두번 죽이듯 용서한 뒤 유유히 사라지고, 씻기 힘든 굴욕을 맛본 철웅은 관군들에게 화풀이하며, 그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알린다. 개선장군의 포스로 혜원을 데리러 온 태하. 둘은 승리의 딥키스를 나누며, 그들만의 해피엔딩 장식한다.
막장 반전 필요했을까?
대길(장혁)은 언년이(이다해)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큰놈이(조재완)의 목에 칼을 댄다. 큰놈이는 언년이의 소재대신 막장드라마가 사랑하는 '출생의 비밀'을 폭로한다. 추노의 시청자를 놀래킨 또 다른 반전카드.
큰놈이는 대길과 아버지가 같지만, 어머니가 다른 서자. 그리고 언년이와는 어머니가 같되 아버지가 다른 이복남매. 쉽게 말해, 대길은 AA, 큰놈이는 Ab, 언년이 bb의 신분 유전자를 가진 것. 다행히 대길과 언년이는 겹치는 부분이 없다. 10회에 이르러 홍길동이 되버린 큰놈이는 그동안 대길을 아우라고 부르지 못했던 한을 풀며, 대길의 칼로 자결을 감행한다. 그리고 태하와 언년이가 결혼했다는 가장 중요한 정보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양반과 노비라는 신분제의 모순이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 큰놈이를 낳았던 것이다. 큰놈이의 행한 범죄를 대길은 미워할 수 없다. 자신의 형이기도 했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대길은 아버지로 인해, 결코 언년이와의 혼인은 꿈도 꿀 수 없다. 대길과 언년이의 사랑이란 대전제를 놓고 볼 때, 큰놈이는 장애물 제거한 격이다.
문제는 큰놈이를 패륜아로 만들었어야 됐을까에 있다. 신분제의 모순이 낳은 비극을 표현하는 방법은 많다. 막장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코드를 웰메이드 드라마가 굳이 차용할 필요가 있었을까. 남편(정겨운)에 형(류진)의 씨받이(이수경)가 됐다는 설정으로, 패륜논란을 부른 <천만번사랑해>와 같은 유사한 설정도 모자라, 마치 서자인 정겨운이 아버지를 죽인 상황으로 변질되게 표현한 것이 <추노>의 큰놈이다.
이같은 장치는 큰놈이란 캐릭터가 노비에서 양반을 꿈꿀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포장했다기보단, 앞으로 언년이와의 사랑에 있어 대길에게 심적 부담을 안기는 소스라고 볼 수 있다. 노비였던 언년이를 사랑했던 결과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배다른 형을 죽인 꼴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부담속에 언년이가 태하와 혼례를 치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해도 대길은 죄책감에 갈등할 수 밖에 없다.
패륜아를 낳은 막장 반전은, 드라마상 대길의 캐릭터에 무거운 짐으로 남았다는 점에서 극적 소스로 필요할 수 있다. 다만 '반드시', '꼭'은 아니기에 생각해 볼 문제였던 것이다.
대길이 칼로 큰놈이의 눈을 자신의 눈과 같이 베어냈던 것은, 그들이 형제임을 표현한 결과가 됐다. 그리고 결국 대길이도 큰놈이와 같은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할 것이란, 암시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