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추노' 이다해, 영리해진 노출?
바람을가르다
2010. 1. 14. 08:45
수목드라마 <추노>의 열풍이 거세다. 이제 막 3회를 마쳤건만, 전작이었던 <아이리스>를 뛰어넘고도 남을 기세다. 길거리 사극을 표방하는 <추노>의 인기비결은, 무엇보다 짜임새있는 대본과 연출, 화려한 영상미, 그리고 배우들의 호연을 꼽을 수 있다.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니, 시청자를 빠르게 흡수하는 건 당연하다.
<추노>를 보고 있으면 택견이 생각난다. 쉬어야 할 때와 덤벼야 할 때를 안다. 긴장감을 쥐고 푸는 게 굉장히 매끄럽다. 장혁이 맡고 있는 이대길이란 캐릭터가 <추노> 전체의 윤곽을 함축해서 보여준다. 싸울 때는 마초의 본능이 느껴지지만, 평소에는 개구쟁이같이 농담도 잘해 상대를 웃길 줄 안다. 그리고 슬픈 눈에 상처가 있고, 사랑이라는 목적이 있다. 이대길을 쫓다보면, <추노>라는 드라마의 스타일이 눈에 잡힌다.
추노, 영리해진 노출?
아무리 명품이라도 홍보를 해야 손님을 모으고 팔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진열해야 눈길이 가기 쉽다. 드라마도 상품이다. 상품을 효과적으로 마케팅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노출'만큼 저비용 고효율을 가진 수단도 드물다.
<추노>는 일단 남자배우들이 상의를 풀어 헤치고 복근을 드러낸 상태로 진행된다. 최장군(한정수)의 목욕신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는 극중에서 시종일관 벗고 있다. 장혁과 김지석, 오지호도 별반 차이가 없다. 꿀복근을 지켜보는 쏠쏠한 재미가 있다. 그럼에도 선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그들의 신분과 직업에 있다.
그들은 노비와 별반 다르지 않은 하층계급의 추노꾼이다. 그들이 만약 무사였다면, 상의를 벗는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조선중기의 밑바닥을 살고 있기에 옷매무새를 갖춰 입는 격식따위가 필요없다. 시청자는 그동안 봐온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속 조선시대 인물들과 같은 선상에서 놓고 보기 때문에, 그들의 노출이 자연스럽게 인식되는 것이다.
대사는 또 어떤가? 사당패출신의 설화(김하은)에 입에서 "배꼽붙인 사이..."라는 말이 서슴없이 나온다. 엇비슷한 질퍽한 농담이 인물들 사이에 종종 오가지만, 신분과 상황이 그러하니 시청에 불편함이 없다. 왕손이(김지석)의 바람행각이나, 잠못이루는 주막아낙네 조미령, 윤주희도 마찬가지다. 지난 번 논란을 불렀던 <파스타> 알렉스의 "섹스는 맛있다." 역시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그의 캐릭터나 배경을 염두에 둔다면 말이다.
아슬아슬했던 언년이(이다해)의 노출
<추노>에서 가장 영리했던 노출신 중에 하나가 바로 3회 방송된 이다해의 쇄골라인 및 가슴선이 드러난 장면이다. 잡배들사이에서 욕보기 직전, 송태하(오지호)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빠져 나오지만, 이 한컷이 준 효과는 크다. 특히 이다해에 대한 남성팬들이 급증하는 계기가 될 수 있고, 드라마도 이다해의 덕을 볼 수 있다.
언년이와 송태하를 연결시키는 수단은 많다. 언년이가 잡배들에게 노자돈만 뺏길 수도 있었고, 별 탈 없이 길을 가다 화살맞은 송태하를 구해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제작진은 언년이를 험한 위기로 몰아넣었고, 짓궂게도 옷고름이 반쯤 풀린 후에야 구출되는 극적 상황을 연출했다. 그리고 영리한 제작진은 전날 밤 이미 복선을 깔아뒀기 때문에 시청자는 이 장면을 선정적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그럴듯한 이유였다고 넘어간다.
최근 드라마들이 잇따라 수영장을 찾아간다. 장소가 꼭 수영장일 필요가 없음에도, 여배우들의 비키니와 남자배우들의 초콜릿복근으로 시선을 끌려한다. 샤워신과 베드신도 마찬가지다. 극의 흐름과 무관하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노출신을 종종 선보인다. 바로 선정이 가미된 장면을 통해 홍보효과를 누리고자 함이다. 이유없는 노출은 시청자에게 지탄을 받는다. 그러나 타당함이 담보되면 용서가 되는 것도 노출이다.
<추노>가 영리했던 건, 장혁과 한정수 등을 처음부터 벗겨놓고 시작했다는 점이다. 중간에 맛보기로 복근을 보인 것이 아니라, 초반부터 상반신 오픈으로 설정을 해버린 것이다. 시청자로선 그들의 노출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다보니 왠만한 노출이나, 야릇한 대사도 무리없이 소화가 된다. 이다해의 위험스런 장면이 별탈없이 수긍되는 것도 앞서 충분한 복선을 받췄기 때문이다. 덕분에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보너스도 챙긴다.
<추노>는 내용적으로도 탄탄하지만, 시청자를 끄는 방법에서도 탁월한 감각이 있다. 억지를 부리지 않으면서도, 다른 드라마가 노출효과로 챙겼던 건, 교묘하면서도 현명하게 챙길 줄 아는 센스를 보인다. 드라마가 선정성논란에서 자유로우면 적어도 그럴듯한 이유들이 따라줘야 한다. <추노>는 그런면에서 괜찮은 교과서라고 볼 수 있다.